1594년 유몽인(柳夢寅)은 삼도순안어사가 되어 하삼도의 피해상황을 살피게 되는데, 진주에 머물면서 진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논개의 이야기를 듣고 정사에 실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였다. 광해군 9년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논개가 관기(官妓)로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순국 사실이 기록되지 않자 이를 안타까워하며 논개의 순국 기록을 1621년 자신이 편찬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남기게 된다. 《어우야담》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다. 계사년에 창의사 김천일이 진주성에 들어가 왜적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군사들은 패배하였고 백성들은 모두 죽었다. 논개는 몸단장을 곱게 하고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위에 서 있었는데 바위 아래는 깊은 강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