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르면 어느 작은 역의 대합실.
무덤처럼 고요한 대합실의 창밖에 거센 바람이 지나간다.
어두운 대합실 안에 한 거지같은 차림의 사내가 조각처럼 앉아있다.
여기에 노인이 등장한다. 그는 역부이다.
등이 몹시 굽은 데다가 여위고 외로움이 깃들어 있다.
등불을 들고 나오다가 사내을 발견한다.
사내는 역부에게 여기가 사곡(沙谷)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역부는 아니라고 사곡(死谷)이라고 말한다.
역부는 사내의 말에 공포와 살기, 죽음의 냄새를 느낀다.
역부는 여기를 떠나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사내는 복수의 신념으로 열차에서 내릴 누구를 기다린다.
이때 멀리 기적소리가 들린다.
살기가 어린 사내의 과거는 피아니스트였다.
사랑과 증오의 외길에서 친구에게 손가락을 잘리고 애인까지 빼앗겼다.
복수의 일념으로 여러 해 동안 칼을 갈고 닦고 그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기차가 서고 그 친구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 친구가 나타나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원수는 맹인이 되어 한손에 꽃을 들고 소녀에 이끌려
이제는 죽어버린 애인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이다.
사내는 조용히 칼을 놓는다.
이 작품은 1973년 젊은 나이에 요절한 송성한 작가의 유작이란다.
제목 "사곡(沙谷)사곡(死谷)"은 모래계곡이란 뜻의 가상의 간이역에
'죽음의 계곡'이란 느낌을 얘기하는 늙은 역부의 말처럼
2중의 의미를 가진 제목이다. 당시 이 작품을 연출한 정진씨는
생전에 작가 송성한씨가 자적적인 작품이라고 말한바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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