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와 줄리엣은 부모에게 커다란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인이다.
이들 자매는 여름을 맞이하여 바다가 있는 이곳으로 피서를 온다.
이때 그들이 부호라는 것을 알아차린 도둑의 무리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그녀들이 가진 보물을 훔치기 위해 여러 분장과 속임수를 써서
호감을 사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들의 거주 장소로 들어가기 위해 도둑 일당은
어느 몰락한 스페인 대귀족으로 둔갑하여 그녀들이 머문 저택에 손님으로 들어온다.
물건을 훔치기 위해서 줄리엣과 가깝게 지내던 젊은 청년 도둑 구스타프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에 구스타프는 자신의 신분을 그녀에게 속이는 것에
대해 갈등한다. 한편 뒤퐁 부자(父子)라는 어느 부자 또한 그녀들의 재산을 노리고
저택으로 들어온다. 뒤퐁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를 그녀에게 잘 보여 결혼을 시킨 후
그녀의 재산을 탐할 생각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실패만 거듭하고
그들에게 호감을 사지 못해 허탕만 친다. 에드가드라는 저택의 돈 관리인이
도둑일행을 의심스러워 하지만 도둑들의 신원을 밝혀내지 못한다.
뒤퐁 부자는 그녀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계속 노력하지만 되려 미움만 살 뿐이다.
줄리엣은 언니 에봐에게 구스타프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에봐는 그의 진심어린 마음에 감동하면서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줄리엣과의 갈등 때문에 이곳을 떠나려는 구스타프에게 줄리엣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정말 도둑이며 이 물건을 훔쳐 달아나려고 왔다는 것을 줄리엣에게
알리지만 줄리엣은 그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한 후 오히려 많은 물건을 훔쳐 같이 달아난다.
구스타프가 보물을 들고 달아난 사실이 밝혀지지만 도둑들을 정말로 신뢰하는 그녀들
덕택으로 엉뚱하게도 뒤퐁 부자에게 혐의가 씌워져 경찰이 붙잡아 간다.
구스타프는 진정 줄리엣을 아끼는 마음으로 다시 그녀를 집으로 데려오지만
그들의 사랑은 더욱 뜨겁게 확인될 뿐이다.
일행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로오드라는 이 저택 사람이 갑자기 구스타프가
20년 전에 잃어버렸던 자신의 아들이라고 밝히지만
사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고 혼란에 빠진 채 막이 내린다.
<도적들의 무도회>는 장 아누이 나이 22세 때의 작품으로, 그가 희곡에 손댄지 세 번째의 초기작품에 속한다.
영국의 부유한 귀족 하아프 부인은 한 밑천 잡아 보려는 스페인의 망명귀족으로 변장한 세사람의 도적들의 본성을 알면서도, 삶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별장에 초대한다. 부인의 두 질녀가운데 나이가 어린 쥬리엣은, 나이가 제일 어린 도적 귀스따브와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 사랑이 무르익게 되자, 귀스따브는 자신의 거짓 위선에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나, 남은 도적들은 기회를 엿보며 안일한 생활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느 날 무도회에 간 틈을 타서 한탕하고 자취를 감추려고 물건들을 훔치고 있는 순간, 귀스따브의 본성을 알게 된 쥬리엣이 와서, 둘만의 사랑의 도피를 설득하나, 귀스따브는 거절한다. 이 때묻지 않은 젊은이들의 사랑에 감동한 백부 애드가는, 귀스따브를 어릴 때 유괴당한 자기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쥬리엣과의 사랑의 열매를 맺어주려고 하나, 귀스따브는 이 친절한 거짓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귀스따브를 설득하려고 정원에 데리고 가는 쥬리엣의 뒷모습을 쫓고 있는 레이디 하아프 부인은 이미 흘러가 버린 자신의 젊음을 끝내 아쉬워하면서 긴 한숨을 짓는다.
「스토리가 복잡하고 재미있는 가벼운 터치의 희극」이라는 정평을 받고 있는 이 「도적들의 무도회」는 프랑스의 몰리에르, 보마르세의 전통을 잇는 대표적인 프랑스의 갈등극인데, 이 작품이 한날 관객들에게 웃음만을 안겨주는 멜로드라마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누이의 독특한 詩的인 연극대사에 있다하겠다. 관객들은 이 작품을 보고 그저 웃지 만은 않을 것이다. 밑바닥에 깔려있는 인간의 덧없는 행복이라든가, 삶 자체의 허무함 같은 어두운 일면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비극계열에 속하는 작품에 있어서 주인공의 반항, 때 묻은 지저분한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장 아누이를 가르쳐 부조리의 연극작가, 실존주의연극작가의 범주에 넣는 평론가들도 있다는 것을 부언해둔다.
극단 자유의 <도적들의 무도회>는 연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장점인 ‘즐거움’을 한껏 선사해주었다. 그 ‘즐거움’이란 것이, 희극형식이 주는 경쾌함과 유머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조화를 이룬 연기자들의 희극적 연기와 코믹 발레에 가깝게 나간 안무, 낭만적 분위기를 더해준 음악과 클라리넷 연주, 조명, 또 장면 장면을 마치 살아있는 그림처럼 안배한 연출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러므로 관객은 극장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복잡하고 짜증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장밋빛 셀로판지를 통해 환상적으로 투시한 인생을 음미해보는 기회를 가진 셈이다. 장밋빛 환상을 그려낸 이 연극은 매우 재미있고, 희극적 리듬을 잘 살린 연출과 연기의 덕분으로 희극성과 시각적 효과, 음악성이 뛰어난 스펙터클한 작품이었다. 무대장치는 양식화된 간결한 장치로, 휴양지, 레이디 하프의 응접실, 정원을 기능적으로 나타냈다. 특히 레이디 하프와 은행가 부자, 세 명의 도둑은 희극적 상황을 훌륭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희극에서는 보통 전형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외모나 신체적 동작을 통해 웃음을 유발시킨다. 그런 면에서 김금지는 뚱뚱하고 권태로운 노부인의 역할을 뚱뚱하게 과장시킨 의상과 뒤뚱거리는 동작, 독특한 억양의 대사로 경쾌하게 표현해냈다. 윤주상, 권병길의 은행가 부자는 한 쌍의 인물로 기능하는 전형적인 희극적 인물을 익살맞게 그려냈다. 특히 액자틀 속의 그림으로 가장하고 염탐하는 장면이나, 코믹한 무용적 동작은 이 희극의 백미였다. 또 이 연극에 사랑의 주제와 상류사회의 인물풍자라는 제1, 제2의 주제에 감미롭게 혹은 익살맞은 풍자적 분위기를 제공한 것은 클라리넷 악사(이희창)의 힘이 컸다. 한마디로, 이 연극은 전체적으로 낭만적 분위기를 풍기는 코믹 발레(Comic Ballet)에 가깝게 꾸며져서 처음 무도회 장면에서 마지막 무도회 장면까지 배우들의 가벼운 발걸음과 무용적 동작과 재치 있는 대사와 즐거운 음악이 곁들여진 장밋빛 세계를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시대가 불안정하고 삶이 어려울수록 희극이 번성하고 관객에게 호소력을 갖는다는 일반론이 연일 객석을 메운 관객들로 하여 입증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장밋빛 세계를 벗어나 현실로 내닫는 발걸음은 반드시 가볍지만은 않다. - 김성희 작가,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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