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천의 착한 살인'

clint 2024. 12. 8. 20:52

 

 

신들을 만난 사천의 물장수 왕이 신들이 잘 수 있는 곳을 찾아보지만 
계속되는 거절뿐이다. 드디어 생각난 매춘하는 센테. 신들에게 그녀의 직업을 
비밀로 하고 제일 착한 센테에게 지낼 곳을 부탁한다. 
무대는 센테의 담배가게로 전환되며 슈이타가 센테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는 
시점을 기점으로 하여 그 과거의 이야기를 작은 커피가게에서 부터 풀어나가고, 
마지막으로 현재의 재판과정까지 이어진다.
갈 곳이 없어 센테에게 당당히 도움을 요구하는 여덟명의 가족이 등장한다. 
그들은 안다. 센테는 이웃을 사랑한다는 걸... 공정치 못한 가구공과 집주인이 
더해지면서 그들은 착한 센테를 궁지로 몰아간다.
차가움 속으로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센테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사촌오빠인 슈이타 뿐이다. 그리고 슈이타는 문제가 되는 요소들을 냉혹하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 이용만 당하는 센테는 이제 무사할까. 
슈이타와 센테는 성격은 물론 행동 또한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사촌오빠로 인해 다소 여유가 생긴 센테는 비행사 양순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임신을 하지만 결국 배신당하고 만다.
센테의 사촌오빠인 슈이타가 가게를 차지하기 위해 센테를 살해했다고 
사람들은 말니다. 결국 슈이타는 경찰에 연행되고, 착한 사람을 찾아야만하는 
세 명의 신은 센테만을 믿었지만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다고 참담해한다.
법정가운을 입은 3명의 신들이 판사로 등장한다. 사촌동생을 살해했다는 죄를 
인정하지 않는 슈이타. 경찰은 슈이타가 원칙주의자이며 센테의 착한 행동이 
그를 더욱 엄격한 조치를 취하게 몰아갔다고 말한다. 또 존경 받을 만하고 
법을 잘 지키는 시민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이들은 반대입장이다. 
착하게 사는 것은 센테의 목을 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슈이타는 
“착한 행동은 결국 파멸을 의미할 뿐이야”라며 힘들어 한다.
모든 방청객을 물려달라고 하고 비공개로 요청하는 슈이타.

신이 묻습니다. “우리가 찾은 사천의 착한 사람을 데리고 뭘 한 거니?”
슈이타가  대답한다. 
“제가 바로 그 착한 사람입니다. 슈이타와 센테. 전 둘 다입니다.”



원작은 1938년부터 1940년 사이에 집필되어 1953년에 출판되었고, 1943년 취리히에서 초연된 희곡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접해 연극의 형식을 파괴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연극사에 의미깊은 작품들을 다수 남긴 브레히트가 서사극 이론을 실재 무대에 적용한 교훈극의 전범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브레이트의 사천의 선인은 논문에서도 다뤄지면서 휴머니즘과 인간의 갈등구조를 연구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서곡, 10개의 장면, 에필로그로 구성된 개방형식의 희곡으로 관객이 무대 위의 사건이나 극중인물에 무비판적으로 몰입하거나 공감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연극기법인 소외효과를 이용했는데, 서사극에서 즐겨 사용되고 있는 브레히트 효과로 보면 된다. 브레히트는 인간에게 내재된 선악(善惡)의 문제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들에게 착취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본연적인 인간의 가치가 과연 존재하는가의 질문을 던진다. 현 시대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천의 착한 살인>은 <사천의 선인>에서 한번 더 각색되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될까? 인간인 우리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할까? 그 해답은 '각자 생각해보라' 이다. 

 



번역및 연출의 글 - 김예나
“센테와 슈이타를 구현해내는 것에 있어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인간의 양면성, 이중인격에 있지 않고 한 사람이 다른 ‘인격’을 ‘연기해냄’에 있다. 이런 ‘역할놀이’의 과정 속에서 1927년에 처음 쓰이기 시작하여 40년대에 완성될 때까지의 시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스며든 당대 ‘성 역할’과 ‘클리셰’에 대한 지점을 현대 대한민국에서 가져오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구태의연하게 페미니즘을 들먹이지 않고도 조금 더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캐스팅에 있어서 ‘성’을 1차적으로 배제하였다. (이 부분이 이 공연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배제함으로써 드러나는 성 역할, 성 정체성이 이 작품을 말함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어느덧 브레히트 스타일의 연극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가 지향했던 ‘소외효과’를 점점 더 관객에게 빨리 들키게 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이 작품 안에서 쓰이게 되는 모든 음향과 음악, 소품, 인물의 내면화와 외면화, 영상, 스토리텔링, 동작과 춤은 다시 한 번 그 ‘소외효과’를 연구하는데 그 첫 번째 의의를 두며, 결국 어떤 교육적 연극이라도 ‘유희적’이어야 한다는 브레히트의 주장을 충실히 따르는데 그 두 번째 의의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