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지방 명문 여고 출신인 여만자는 대학교에서 미화원
일을 하며 딸 은하, 아들 은창과 함께 어렵게 가정을 꾸려 간다.
다리가 불편한 은하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고,
동생 은창은 영화감독을 꿈꾸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이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져가던 어느 날,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온 신방과 대학원생 일영이 등장하면서
만자 네는 그의 건강함과 다정함에 들뜨게 되는데...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을 각색한 작품이다.
대학교 환경미화원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만자,
고졸 학력에 영화감독을 꿈꾸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은창,
다리가 불편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고 싶어하는 은하,
현실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적절한 능력을 갖춘 대학원생 일영,
이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이 작품은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경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척박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평범하고 심심하지만 한편 복잡다단한 우리의 일상처럼,
작품의 인물들 역시 싸웠다가도 돌아서서 후회하고, 울다가도 웃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살아낸다. 극 속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작가 인터뷰 - 김은성
자본주의의 얼굴을 따라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인물을 그린<유리 동물원>이 한국의 정서를 입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자본주의가 빚어낸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아주 현실적으로, 그러나 영 씁쓸하지만은 않게 그린<달나라 연속극>은 김은성 작가의 오롯한 생각이 들어간 작품이다.
- “군대에 가기 전에<유리 동물원>을 정말 소중하게 읽었어요. 제대 후 연극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이 작품이 계속 생각났죠. 그러다가 학교에서<유리 동물원>을 새롭게 각색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지금은 뮤지컬 연출가로 활동하는 오미영 연출과 구혜미 작가, 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작업을 시작했죠.”
단숨에 써내려갔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유리 동물원>을 통해 이토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미처 몰랐다. 10년 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고전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나가는 작업은 묘한 쾌감까지 전해줬다. 윌리엄스의 인물들이 그의 손에 의해 새롭게 매만져지는 순간이었다.
- “당시 그 친구들과<유리 동물원>을 앞에 두고 이야기 했어요. 우리 이야기랑 너무 비슷한 것 같지 않아? 아만다의 이름은 뭐로 바꿀까, 시간은? 공간은?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품을 만들었죠. 인물과 상황을 바꾸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나눈 생각들을 메모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재창작을 하게 된 거죠.”
그러고 보니 어느덧 여러 작품을 ‘재창작’ 했다.<순우 삼촌>은 안톤 체홉의<바냐 아저씨>에서 모티브를 얻었고,<로풍찬 유랑극단>은 류보미르 시모비치의<쇼팔로비치 유랑극단>에서 시작했다.<뻘>역시 안톤 체홉의<갈매기>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 “명작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일 거잖아요. 그런 작품을 저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것은 색다른 재미가 있어요. 마치 짝사랑하는 여인과 연애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짝사랑을 하면 상대방의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잖아요. 말투, 기호, 행동, 버릇 등등 모든 것이요. 그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작품을 보고 또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요. 그냥, 너무 좋으니까요.”
솔직히 아주 걱정이 안 된 것은 아니었다. 연극<달나라 연속극>이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극장에서만 만났던 이 작품이 과연 큰 규모의 극장과도 어울릴까 싶었다.
- “큰 무대에서도 몇 번 올려봤어요. 장단점은 있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특히 엔딩 장면의 경우 큰 무대에서는 더 여운이 남아요. 춤을 추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잊어보고자 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세상으로부터 뚝, 떨어진 섬에 살고 있는 존재들을 보고 있는 것 같죠. 그런 점에서 큰 극장에서의 공연도 좋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참 여러 번 무대에 올랐다. 아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주인공들의 모습이 큰 공감대를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에, 이토록 오랫동안 관객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닐까.
- “여러 번 작품을 올리다보니 아무래도 좀 더 깊어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연출도, 배우들도 모두 자라면서 작품도 점점 깊어지죠. 더욱 친밀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의 연기가 아주 미세하게 들어가는 부분들이 있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매번 이런 부분들을 더 진하게 체험하죠.”
결국 사람인 것이다. 관객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들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리 누추하고 별 볼일 없어도 삶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며 이뤄가는 것임을 관객도 느낀 것일지 모른다.
- “그래서 연극이 좋아요. 결국 ‘사람 예술’ 이거든요. 연극을 잘 하는 연극인은, 사람들과 굉장히 잘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연극의 메커니즘 자체가 사람들이 모여 연습하고 호흡하는 과정이잖아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람과 함께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래서 전 연극이 좋아요.”
그래서일까. 그는 사람에 잘 매료된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이 빚어내는 매력적인 한 편의 극을 추구한다. 궁금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연극은 과연 무엇인지.
- “연극은 제게 좋은 선생님 같아요. 저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스승이요. 세상으로부터 상처도 받고 외로움도 느끼지만 연극을 통해 저는 상처가 아물고 세상을 좀 더 다정하게 보는 시선도 생겼어요. 연극을 하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거든요. 그때마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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