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상열 악극 '눈물 젖은 두만강'

clint 2024. 9. 11. 17:12

 

 

때는 1930년대, 김구선생을 중심으로 상해에서 임시정부의 과도기인 
조선애국단이 지하에서 암약하고 있었다. 
중국 상하이의 번화가 고급 살롱 '흑룡강'에서 3발의 총성과 함께 
상하이 헌병대장 시마무라의 생일 축하연에서 저격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흑룡강의 프리마돈나 왕수미, 
그녀는 무슨 이유로 그를 저격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23년 전 두만강 근처 마을로 간다. 
3대째 뱃사공을 하던 남씨 일가에 시대의 아픔은 운명처럼 닥친다. 
일본군에게 총상을 입고 도망하던 독립군 김승빈은 남(만춘)씨의 집에 
몸을 숨기고 그의 딸 정애는 그를 정성을 다해 간호하며 
이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오빠 석철의 밀고로 승빈은 
사랑하는 정애를 두고 만춘의 도움으로 탈출하게 되고 
정애와 아버지 만춘은 헌병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다. 
하지만 만삭의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정애는 아이를 낳고 
어머니 유씨의 말대로 승빈을 만나기 위해 경성으로 향한다.
경성에 도착한 정에는 마포 산마루에서 새우젓 장사를 하던 
승빈의 부친 덕배를 만나게 되고 아들 민우와 생활하게 된다. 
그즈음 독립군 자금을 구하기 위해 상해에서 돌아온 김승빈은 잠깐 
집에서 뚯밖에 정애와 자신의 아들 민우를 만나게 되지만 
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못한 채 이별하게 된다. 
그때 개성댁의 거짓에 속아 며느리 정애를 오해하게 된 덕배는 
집문서마저 개성댁에게 빼앗기고 심지어 아들 민우를 황실 고관댁에 
입양시키게 된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눈물 흘리는 그녀 앞에 
홍해란이 나타나 남편의 소식을 전하며 상해로 동행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상해에서 찾은 승빈은 이미 모진 고문과 아편중독으로 폐인이 
되고 아들 민우의 실종 소식을 접한다. 
 다시 1932년 상하이 흑룡강 살롱. 상하이 헌병대장 시마무라의 
생일 축하연이 성대하게 치러지고 그 곳에 또 한 명의 비운의 사나이가 
있었으니 의열단 단원으로 시마무라 암살 특명을 받은 김민우.
 23년의 세월이 두 모자를 타인으로 만들었고 민우가 정애의 존재를 
깨닫았을 땐 이미 정애에는 고문으로 두 눈을 잃은 채 차가운 감옥에서 
아들 민우와의 마지막 해후하게 되는데.... 먼저 민우를 알아본 정애가
아들을 위해 총을 쏜 것이다.



<눈물 젖은 두만강>(희곡/김상열)은 악극이다. 우리 대중들이 즐겨 애창하던 트로트풍 가요의 선율에 한 여인의 수난과 희생을 담아내는 친밀한 한국적 악극이다. 이 연극의 서막은 마지막 장의 앞 장면과 연결된다. 플래시 백(시간적 역전) 기법에 의해 중간에 삽입되어 있다. 또 주인공 '정애'의 과거는 외할아버지 '만춘'과 외손자 '민우'가 서로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연극은 한 여인의 비극적 삶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정애'의 수난과 희생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두만강 근처 어느 마을에서 '정애'가 일본헌병에게 쫓기는 독립군 청년 '승빈'을 숨겨주는 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되지만, 숨겨준 사실이 발각되면서 ‘정애’의 힘겨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승빈'은 간신히 피신하지만, '정애'와 그 아버지는 헌병대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한다. '정애'가 만삭의 몸으로 잠시 가석방되어 풀려나서 애를 낳자마자 죽어도 시집에 가라는 엄마 말대로 정애는 핏덩이를 안고 서울이 있는 시집으로 찾아가지만 시집살림도 넉넉지 않아 돈벌이를 나가야 했다. 독립운동 자금 확보를 위해 서울에 잠입했다가 잠시 집에 들른 남편 ‘승빈’에게 시아버지가 맡긴 돈도 몽땅 줘버린다. 집도 빼앗겨 ‘민우’를 양자로 보낸다. 남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상해로 건너가 주점의 접대부로 일한다. 남편을 만나지만, 남편은 아편중독자로 폐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의혈단에 들어가 헌병대장을 암살할 목적으로 상해에 온 아들을 우연히 만난다. 자신이 어머니인 줄도 모르는 ‘민우’가 거사를 끝내면 자살할 것이라고 하자, '정애'는 아들을 대신해서 헌병대장을 먼저 암살하기에 이른다.

 



독립군 청년을 숨겨준 '정애'의 행위가 조국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쫓기는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의 발동일 뿐이다. 아들을 대신해서 헌병대장을 암살하는 행위도 아들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뛰어넘어 사회적 울림으로 승화된다.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연민이나 사랑을 베풀 때, 그 행위는 개인의 차원을 뛰어 넘는 더 큰 차원의 가치로 나타난다는 메시지를 이 연극은 전달하고 있다. 거대한 권력의 억압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적인 순수함을 지키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사회적·국가적으로도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면모를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발휘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는가.

 

김상열 작가

 

진부하리만치 명료한 줄거리에 중간중간 삽입되는 대중가요들, 최루성 감상들로 이루어진 악극이나 신파극은 지금은 사라진 ‘동양극장’을 중심으로 1930년에서 1950년까지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던 대중극 양식이다. 이 양식은 일본의 연극을 모방한 초기 신파극과는 달리 대중의 요구를 적절하게 수용하여 우리 식으로 개조한 뮤지컬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식은 당대 지식인들로부터 주체적 문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해방이후 서양연극의 유입으로 천시를 받으면서 점차 사라져 갔던 것이다. 이 연극양식이 젊은 시절 악극이 자기 정서의 기반이 되었던 악극 마지막 세대들에 의해 대중연극이라는 명암을 내밀며 다시 부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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