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변사극 ‘순애 내사랑’

clint 2024. 9. 12. 09:31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 이학부 학생인 이수일과 심순애는 연인사이.
순애 어머니는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장안의 갑부 김중배와 
결혼을 시키려 하자, 심순애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순애는 김중배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았으나, 어머니의 집요한 설득에 
결국 사랑을 버리고 돈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남편 김중배의 심한 의처증으로 온갖 모욕과 멸시를 참고 살아야 
했던 심순애. 어느날 결국 심순애는 쫓겨난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장안 유수의 고리 대금업자가 괸 이수일은 돈의 힘으로 복수하려 한다. 
어느 날 심순애가 이수일을 찾아 온다. 
수일에게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지만 수일은 순애를 외면한다. 
수일은 금고 속의 돈을 뿌리며 순애를 저주한다. 
순애는 은장도를 꺼내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 
수일은 순애를 품에 안고 격정적으로 오열한다.
막을 내린다.

 

무성영화 장면



변사극 ‘순애 내사랑’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를 담은 무성영화 상영에 변사의 해설이 어우러지는 형식으로 꾸며진다. 극단 ‘예전무대’가 제작한 변사극 ‘순애 내사랑’은 변사 최영준이 무성영화에 해설부터 각 배역의 음성뿐 아니라 노래와 재담이 어울어진 한바탕 놀이를 선사하는 무대로 연일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작품이다. 특히 현대적인 배경으로 재구성한 16mm 무성영화에는 개그맨 전유성, 이창훈, 심형래와 가수 이문세, 김수철 등 유명 연예인들이 배우로 출연했다. 변사극의 가장 큰 재미인 즉흥 연기에 관객과의 교감이 어우러져 하나의 커다란 놀이마당으로 진행한 게 매력이 있다.

 

최영준



활동사진의 신기함에 빠져있던 무성영화 시절에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던 변사는 단순한 영화상의 해설자가 아니었다. 일상에 지쳐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슬픔을 위로해 주는 친구였으며, 모든 이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끈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유성영화가 들어오면서 변사의 인기는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가는 혼돈기의 문화형태인 무성영화와 변사. 1910년 일제강제병합 이후, 일본제국주의 총칼아래 우리말, 우리글, 우리문화를 빼앗겼던 암울했던 37년의 암흑같던 그시절, 서대문 동양극장에서의 활동사진 돌아가는 소리는 우리 백성들에게는 크나큰 위안이었다. 그러나, 음악소리와 간단한 음향만 들려오니 관객은 답답하였다. 그 당시 대사녹음 기술도 없었고 자막처리 기술도 없었으니 어쩌랴! 간혹, 대사 대신 아주 가끔씩 글자가 나오긴 했으나 꼬부랑 서양 글씨를 누가 알겠는가? 그리하여, 궁여지책으로 극장측에서 입담 좋은 배우를 뽑아서 활동사진 해설을 시키게 되었으니, 그것이 무성영화 변사의 시작이었다. 변사의 등장으로 무성영화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관객은 변사의 감칠맛 나는 해설에 매료되었다. 변사가 웃기면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고, 변사가 흐느끼면 객석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심지어 누가 변사를 맡은가에 따라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변사의 역할은 중요하였다. 때로는 임검석에 앉아 감시하던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인기가 좋은 변사인 경우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 장안이 기생들이 인력거를 보내어 서로 모셔가기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변사도 해방과 6. 25전쟁 그리고 영화제작 기술의 발달로 대사 녹음이 되고 한글 자막 처리가 가능해지면서 더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고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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