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손건우 '가족의 탄생'

clint 2024. 9. 7. 07:36

 

 

사회복지 일을 하며 만나 결혼하고 정호를 낳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장남 국호, 정화 가족. 
허세와 사업 구상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차남 백수 국보, 
그런 국보를 동대문에서 옷 장사하며 먹여 살리고 있는 서현, 국보 가족. 
지인의 소개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의 시작을 준비하는 
연인 만진, 국희 커플. 
그리고 지적 장애아로 태어나 아버지 국도와 둘이 여수에 살고 있는 
마음은 바다, 막내 국환이. 장애아이다.
국호와 국보, 국희는 어머니 기일에만 고향 여수에서 모이는 가족들이다. 
아버지 돈을 빌려 사업을 하다 망한 동생 국보와 
그와 함께 동거하고 있는 서현, 
그 모습을 좋게 볼 수 없는 국호와 정화,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어릴 때부터 오빠들에게 치여 살던 새침한 국희, 
새로운 식구가 되어 밥숟가락 함께 하고 싶은 만진. 
이렇게 서로 살아가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이들은 어머니 기일에 맞춰 
스타크래프트 대여업을 하고 있던 만진의 권유와 구애로 각자의 사연을 담고 
같은 차에 올라 아버지의 고향 여수로 내려가고 
그들 앞에 나타난 국환의 등장으로 가족들은 말을 잊지 못하게 되는데...
과연 이 가족들의 앞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가족의 탄생>은 쌓이고 쌓인 오해와 갈등으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가족들이 
갑작스러운 자동차 여행을 통해 서로 화해하며 진정한 가족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유쾌하고 드라마틱 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불편한 동행 속에서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보듬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급격한 도시화로 해체된 가족이 다시 결합하는 과정이 무거울 수도 있는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웃을 수 있는 요소가 곳곳에 스며있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도, 가족은 힘이 세다! 연극 <가족의 탄생> 리뷰 by 이태리(한신대교수)
연극 <가족의 탄생>은 여느 가족 이야기처럼 양단의 특징을 모두 담는다. 연극은 아버지와 4남매의 갈등과 화해를 담담하게 그린다. 부인을 여위고 엄격하게 자식을 기른 아버지, 무뚝뚝한 장남과 철없는 둘째 아들, 밝고 유쾌한 셋째 딸과 그들의 배필, 그리고 지체장애를 가진 막내아들까지, 이들은 어머니 기일 날에 모인 자리에서 서로 간에 쌓인 응어리를 풀며 진정한 가족으로 탄생하게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아들들의 원망, 성격이 다른 형제간에 앙금, 그리고 눈물의 화해는 강력한 보편성으로 관객의 이입을 이끈다. 그래,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은 저렇게 지난하지. 관객 각자의 가정사를 상기하며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고 해소하기에 무난하다. 
그러나 감정의 정화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나 담담하다는 것이 문제다. 연극은 자식들 하나하나를 조명하며 각자 살아가는 형편과 고민을 드러내고, 간간이 플래시백 장면을 섞어 아버지와 얽힌 상처까지도 나타낸다. 인물들의 사정을 깊이 다루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극 중후반부까지 인물들의 전사나 관계 같은 배경 이야기에만 치중한다. 갈등 요소 하나 없이, 극의 흐름에 변화가 없는 내러티브는 관객의 이목을 계속 끌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후반부 격정의 화해 장면과 반전 장치가 존재하지만, 그것 역시 너무 전형적이고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 연극은 각 커플의 이야기가 릴레이식으로 연결되다가 후반부 집에 모이는 에피소드에 이르러 모든 인물이 만나 극을 마무리한다. 각 커플의 장면과 이음새를 통해서 연극 전체의 리듬과 역동성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각 장면마다 다른 분위기와 무게, 타이밍과 속도, 이미지와 질감을 갖아야만 한다. 개인적으로는 장남 내외의 에피소드가 진중함으로 전체적인 무게를 잡아준다면, 딸과 남자 친구의 에피소드는 발랄함으로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둘째 아들 내외의 에피소드는 앞선 두 성질의 중도적 입장에서 극을 끌고 가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아들 내외의 에피소드와 배우적 역량이 가장 책무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가장 돋보였던 장면은 모든 인물이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는 장면이다. 아직은 서로가 낯선 가족 구성원들의 불편함과 그래도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는 설렘이 공존한다. 연극은 무대의 모든 요소들(조명, 음향, 무대장치, 배우들의 연기)을 동원하여 이들의 생생한 감정을 표현한다. 슬로모션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무대 장치를 활용해 차 안 공간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아이디어로 볼거리를 충족시킨다. 무엇보다 고향을 내려가는 각 커플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이야기와 감정을 한데 모아 강력한 설렘을 응축시켜 관객에게 판타지를 전달한다. 진정한 가족으로의 탄생을 예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극이 끝날 즈음, 커튼콜이 시작될 때, 눈물을 흘리는 관객을 봤다. 역경을 딛고 끝내 화해하는 가족의 모습이 보여주는 판타지적 메시지가 관객의 마음을 두드렸을 터다. 전형성과 무미건조한 내러티브라는 조건에도 연극 <가족의 탄생>이 갖는 힘이다. 연극의 희망적 메시지는 비극인 현실에 꽤 묵직한 울림을 안겨준다. 이는 뻔하지만 강력한 가족 이야기의 저력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목도하지 못할 가족의 화해와 탄생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넌지시 추천한다. 나름의 진정성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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