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는 거창한 냉장고가 주인공처럼 서 있다.
선희란 여자는 냉장고란 물건을 섬기고 춘범이란 남자를 섬긴다.
선희란 여잔 밥하고 요리하고 뜨개질하는 일편단심 민들레다.
요즘 세상에 천연기념물로 보호할 멸종위기 생물로서 독하고 똑똑하고
명민해야 잘 나가는 요즘 세상에 암 컷도 아닌 암컷이다.
춘범이란 남잔 고시생 탈을 쓴 거머리로 패륜껄렁이 늑대다. 이런 춘범을
선희는 몸 바쳐 돈 바쳐 뜨개질로 옷 바쳐 고시패스를 위해 봉사한다.
선희에게 유일하고 절친한 친구 미진이 있는데 춘범 정체를 안다.
미진은 춘범이 나쁘고 밉지만 자기 께 아니니 강요나 할 뿐.
웃기고 자빠진 관계정리하고 지방으로 내려가자 하나 끄덕 안 하는 선희.
일편단심 천연기념물이란 바위에 계란 치기만 해대는 미진이다.
사는 꼴이 한심하고 개 같아 항상 불만이 충만한 미진,
애인 고시패스라는 망상에 희망을 품고 평화로운 선희.
여기에 춘범의 고시동기친구란 깡패 같은 동식이 나온다.
춘범은 동식의 애인를 꼬셔 도망간 친구 아닌 원수라 찾아온 거다.
동식은 춘범 행방을 선희에게 다그치고 날뛰며 다 때려 부순다.
이 과정에서 무참하게 얻어터지고 망가지는 선희. 뜨개질로 떠준 옷 입고
바람핀다는 춘범 정체를 밝혀줘도 끄떡없는 선희.
춘범이랑 선희가 첨 어떻게 만나 관계발전 했는지도 밝힌다.
기막히게 어이없을 정도로 파격적 장면으로 충격파를 던져주는데..
극은 미진이 마지막으로 왔다가고.. 춘범이 또 오고..
선희가 받은 돈 챙긴 춘범은 미진이 남긴 수면제 약통을 영양제로 보고..
또한 끝으로 동식이 왔다간 뒤 결말의 충격을 준비한다.
주인공 선희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종적인 인물로 비춰 지지만,
그런 선희가 "방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냉장고에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저장하는 방식은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춘범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애정을 보여주었던 선희는 급기야 그를
냉동 저장하기에 이르는데, 이런 엽기적 행각과 선희라는 인물의 부드러운
품성 속에 내장된 집착과 맹목이 개연성 있는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애정을 갈취하는 이기적인 춘범의 성격을 행위로 작동시키는 상황설정 덕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싱싱 냉장고〉에서 춘범이 선희의 수면제를 영양제라
우기며 입안에 털어넣도록 만드는 상황을 구축한 작가의 솜씨는 매우 비상하다.
춘범이 선희의 약을 영양제라 생각하여 물어보지도 않고 삼켜버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기적이고 삐뜰어진 사기꾼기질 때문이다.
춘범이 잠이 들어야만 선희는 우악스런 그를 문제없이 냉장고로 옮길 수 있다.
이처럼 인물의 성격이 추동하는 개연적 상황을 매끄럽게 짜내는 솜씨야 말로
김숙종 극작의 큰 장점이다. 대개 솜씨 없는 작가는 우연적 계기와
개연성 낮은 행동으로 예상가능한 정직한 플롯을 구성하고 그런 경우
대부분 '극적'이라는 긴장의 창출에 실패한다.
〈싱싱 냉장고〉에서는 인물이 놓인 상황, 인물의 성격, 그것을 매개하는 계기와 동기
(미진의 동성애적 성향은 다소 작위적이지만)가 치밀하게 짜여져,
암시와 반전의 효과까지 덤으로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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