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송경순 '기차'

clint 2024. 9. 3. 10:45

 

 

차표를 잃어버리고 기차 밖으로 쫓겨난 마술사 부부와 
기차역에서 앵벌이를 하는 남매를 만난다
본격적으로 앵벌이 하는 남매와 덩달아 구걸하는 마술사부부의 작은 경쟁,
무서운 포주의 등장과 그에게 혹사당하는 앵벌이 남매의 애처로운 모습
절망에 빠진 앵벌이 남매를 작은 마술로 위로하는 부부, 잠시 잠깐의 즐거움
다시 나타난 포주에게서 앵벌이 남매를 탈출시키는 마술사 부부, 
포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잃어버린줄 알았던 차표를 찾아 기차를 타려는 마술사 부부, 
포주에게 다시 걸린다. 위기 속에서 의외로 나약한 포주의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부부, 앵벌이 남매에게 그러했듯이 마술사 부부는 포주에게 
따뜻한 마음과 손길을 보낸다. 기차의 기적소리 
신나게 플랫폼으로 향하는 마술사 부부, 
뒤에 남은 포주, 멍해진다.
어느새 남매도 포주 곁에 다가와 떠나는 기차를 함께 바라본다.
하늘에서 하나, 둘, 눈꽃이 떨어집니다. 
함박눈이...

 


기차 역 앞 세상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모든 문명의 시간을 거꾸로 돌렸다.
버려진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삶은 더욱 살벌해지고 광기로 가득찰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를 전쟁으로 이끌었던
이기적인 언어 '말'이 소멸하고
우리가 다시 어쩔 수 없는
눈빛과 몸짓으로 소통을 해야 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순수해질 것이다.

 



작가의 글 - 송경순 
사람이 사람을 사고 팔고... 이 시대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더 이상 우리에게 충격적인 뉴스는 없다. 우린 무감각해지고 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언제일까? 언제가 한 배우가 던진 질문이다.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과거의 언제쯤 일거라고 했다. 지금 다시 묻는다면 미래의 언제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핵전쟁이 발발했거나 아니면 환경파괴로, 그것도 아니면 인간의 이기심 중 그 어떤 것에 의해 모두가 사라지고 지금의 모든 것이 사라진 그래서 황폐해진, 웃음마저도 사라진 시간 어디쯤에서 오랜 잠에 깨어나 상황판단 안된 노부부가 우연히 내린, 우주의 어느 버려진 공간 어디쯤이라고 말하 고 싶다. 무대 위에는 그 황량함을 짐작하게 하는, 금방이라도 폭풍이 불어닥칠 것 같은 바람소 리와 그저 무심하게 왔다가 떠나는 기차 소리, 그리고 역무원의 차단기 내리는 종소리뿐이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늙은 엉터리 마술사 부부의 따뜻한 모습에서 우리가 잃고 살아가는 참다운 인간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인간 때문 에 받은 상처를 인간으로부터 치유 받고, 상처를 준 인간마저 감싸 안는 이야기. 사회의 보이지 않는 모퉁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세상은 참 따뜻한 사람이 어울려 따뜻하게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은 이가 시리도록 춥고 삭막하지만 그래도 따스한 사람이 있기에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다.



연출의 글 - 박정의
말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수단이다. 우리는 말로써 자신의 의사를, 감정을 전달하고 타인의 그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말은 실제로 그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말은 때로 많은 오해를 만들고 상처를 만든다. 그것은 무대 위의 배우와 배우사이에서 또한 배우와 관객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말은 정확하게 할수록 그 의미가 축소되고 만다. 의미가 축소되면 이미지 또한 형편없이 빈약해진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우리의 삶은 각박해진다. 무언극은 처음부터 오해의 여지를 가지고 출발한다. 지나치게 정확한 해석을 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여유롭다. 관객은 많은 부분을 상상하고 추측하면서 봐야한다. 그러나 난해하지 않다. 그들을 마술사라고 해석해도, 그저 거리의 약장사라고 해석해도, 또는 어떤 노부부라고만 해석해도 극을 보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그래서 편안한 연극이다. 그런 연극을 만들고 싶었다. 형식면에서 무언극을 선택한 것은 대사를 삭제함으로 관객이 배우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집중할 수 있고 설명되지 않는 여백을 통해 관객 스스로 상상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연극적 움직임을 기본으로 마임과 무용 아크로바 턱 등 기존의 장르를 의식하지 않는 다양한 움직임을 결합하여 장르개념을 극복 연극적 언어의 폭을 넓히는 공연을 만들고자 한다. 작품 '기차'에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구도가 존재한다. 작품 속에는 산 자와 죽은 자, 생명과 죽음, 따뜻함과 차가움의 단순하고도 명확한 이분법적인 구도를 갖고 있다. 공간구도에서 보면 무대 밖의 기차라는 공간과 차갑고 어두운 무대공간 즉 역 앞의 쓸쓸한 광장의 두 공간이 존재한다. 기차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있는 공간이다. 그것은 소리로만 들리 고 보이지 않는, 무대 밖에 존재하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공간이다. 무대 위의 공간은 시커먼 차단기로 상징되는 그 밖의 보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매서운 바 람만이 부는 그런 공간이다. 그 곳은 과거의 인적 드문 조그만 시골 간이역 같기도 하고 삶의 생 기를 간직하지 못하고 소외되어 가는 변두리의 한적한 소읍 같기도 하고 어쩌면 먼 미래의 핵전 쟁이 발발한 후 소수의 인간만이 살아남은 지구의 한 귀퉁이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살아있는 소리는 없다. 언제고 삼켜버릴 것 같은 스산한 바람소리를 제외하면 소리는 오직 무대 밖의 공간에서만 들려온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분법적인 구도는 아니다. 생명이 사라진 곳에 생명의 호흡을 남기고 체온으로 상처를 녹이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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