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의 <부인의 시대>는 현실과 밀착된 여성서사가 중심이다.
거주민을 고려하지 않은 재개발로 인한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제목도 중의적인데, 4명의 부인(夫人)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양극화를 부추기는 재개발의 불도저로 소외계층의 삶을 외면하고
사회적 참사의 진실을 부인(否認)하는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 3층 건물에 위치한 낡은 피부관리실이 배경이 된다.
피부관리실을 운영하는 원장 정가실은 홈쇼핑에 중독되었고,
피부관리실장 남옥순은 남편과 사별한 뒤 늦둥이 아들을 홀로 양육한다.
한국으로 돈 벌러온 조선족 출신의 송미령과 한국 남자와 결혼해 폭력과
의처증에 시달리다 어린 아들을 놔두고 도망친 필리핀 여성 안젤라도
등장한다. 재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손님으로 위장한 사모님이
피부관리실에 등장하고, 그녀는 피부관리실의 4명의 부인들을 이간질로
분열시키며 피부관리실 운영을 방해한다.
피부관리실의 부인들은 남편(남성)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이면서 사회제도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미경 작가는 극의 시작부터 한국사회의 억척스런 소외계층과 재개발사업을 대비시킨다. 동네 건물을 부수며 좁혀오는 효과음이 들리고, 피부관리를 받으러 온 사모님의 등장과 그녀의 신분이 밝혀지는 장면까지, 부인들의 절박한 삶이 쏟아져 내리고 자본에 현혹된 욕망이 천박하게 넘실댄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미경 작가는 이들의 죽음을 UFO를 타고 우주로 이동하는 것으로 처리한다. 부인들의 피난처는 이웃의 인정(人情)도, 국가의 사회시스템도 아닌 우주라는 엉뚱하고 판타지적 설정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부인(否認)할 때 살아갈 수 있는 곳은 꿈에서나 살아볼 만한 현실이 될 수 없는 우주의 공간뿐인가. 이번 낭독 공연에서는 대사의 리듬, 장면을 상상으로 구현하는 힘과 속도, 배우들의 캐릭터화된 연기가 희곡을 전달하면서도 마지막 장면의 전환은 열린 해석을 위한 것이라 해도,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동화로 전환된 듯, 드라마의 전개 논리와 맥락이 불분명했다. 이 작품을 실제 무대로 구현할 때 마지막 장면처럼 동화적인 설정으로 무대를 만들면 어떨까. 낡은 건물이 마치 허공(우주)에 떠 있는 듯한 무대, 고립 속에 비현실적으로 살아가는 4명의 부인과 사모님으로 접근한다면 오히려 <부인의 시대>는 연출적으로 재미있는 무대를 기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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