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수미 '위험한 시선'

clint 2024. 7. 4. 15:43

 

 

아버지가 칼에 찔린 채 발견됐다! 용의자는 엄마와 아들, 그리고 딸...

칼에 찔린 채 숨져있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주검을 바라보고 서있는

어머니와 딸의 모습에서 극이 시작된다. 범인은 누구인가? 

현장에 있던 두 개의 술잔과 격투 흔적, 사용한 흉기가 식칼이 점에서 타살이며

우발적 사고의 가능성을 두고 두 형사들의 상상에 의한 추리가 시작된다.

추리1- 먼저 서 형사는 수사 중 어머니에게 내연의 남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아버지를 죽인 범인으로 어머니를 지목한다. 아내의 바람으로 인한 부부싸움에서 벌어진 사고로 추리한 그의 추측에는 사건 정황상 맞지 않는 부분이 드러난다.

추리2- 장 형사가 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아들은 약물 중독자였고 돈이 필요해 아버지와 실랑이 중 벌어진 우발적인 사고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현장에 있던 두 개의 술잔에 대한 비밀을 풀지 못한다.

추리3- 이때 감식반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인해 서형사는 사건의 방향을 우발적이 아닌 의도된 사건으로 바꾸며 딸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상습적으로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오다 결혼을 앞두고 더는 견딜 수 없어 죽였다는 게 그의 추측이었고 딸을 범인으로 확신했다서형사가 영장을 발부 받으러 간 사이, 장형사는 자신이 범인으로 몰려 했던 아들을 만나 또 다른 숨겨진 사건- 장 형사의 딸이 성폭행 당한 사건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 사건 당일 누나와 아버지의 일을 목격한 충격으로 범죄를 저지른 걸 고백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장형사는 아버지를 죽인 패륜범의 자살로 사건을 종결하려 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진실은 다시 만들어진다는 말을 남기며.

 

극의 말미에 조용히 눈뜨는 진실은 어머니에게 상처 받는 아버지를 위로하며 다가오는 딸의 위험한 시선이 아버지를 자살로 몰고 간 것이다. 사실을 안 어머니의 무거운 침묵 속에 어머니를 향한 증오의 눈빛과 아버지를 향한 금기의 시선을 가진 딸이 이 극의 진실 속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바라보는 첫 번째 시선은 단연 충격이다. ‘근친상간 이라는 위험하고도 어려운 화두를 <위험한 시선>은 전면에 내세운다. 예술작품에서 그려지는 딸과 아버지의 관계는 아들과 어머니와의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생물학적이든 사회적이든 아들과 어머니의 소위 근친상간적인 관계는 쌍방 간의 감정으로 이루어진 불가해적 일인데 반해 딸과 아버지는 힘 있는 자의 일반적인 착취로 이루어진 가해 사건으로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위험한 시선>은 이 관계를 전복시켜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어긋난 시선을 그리고 있다. 극중 세상 누구도 아버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않아!”라는 어머니의 대사처럼 금기의 시선을 넘고 있는 위험한 인간의 눈을 만나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위험한 시선을 가진 딸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소재만으로 이 작품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예술작품 속의 주제와 소재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때론 작품 속에 내재된 이면의 의미는 소재의 불편함까지 감내시킨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금기의 시선은 드러나게 혹은 숨겨진 채 여러 형태의 사건으로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극에서 형사들의 시선으로 재구성되는 사건들은 실화들이다. 첫 번째 사건의 유형은 부부싸움에서 우발적인 살인사건으로 발전되는 보편적이고 통념적인, ‘가정 내 폭력 사건의 단면이라면, 두 번째 사건은 요즘 자주 일어나는 패륜의 전형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사건은 김보정 양 사건 같은 실화들이 이미 알려져 있으나, 마지막 사건의 진실에서 보이는 역전의 형태는 드러나지 않는 또 하나의 실화이며 이런 실화는 외국의 경우에도 자주 사회문제화 되는 사건들이다. 한 가장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두고 추리의 형식을 통해 보여준 실화들은 형사들의 시선에 의한 이야기 속에 담긴 오늘의 사회문제를 담고 있다. 아니, 형사들이 찾아내지 못한 진실이 숨어있었듯 빠른 사회 변화는 우리가 채 추리해내지 못했던 사건들을 돌출시키며 경악과 충격 속으로 몰아 넣고 있다. 지금 이 시각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이 작품에서 구성된 실화들 보다 더 위험한 수위를 치닫고 있는 셈이다. 이젠 우발적 사고라고 하기에도 원한 관계의 사건 이라기에도 해명할 수 없는 선인 카오스로 인간은 잠기고 있는 것이다. ‘실화보다 더한 오늘의 현실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위험성을 이 작품은 말하고자 한다.  

이 극은 인간이 가진 눈의 위험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극의 인물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사실을 바라보며 인식함으로써 파생되는 사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먼저 형사들의 추리부터가 진실을 보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서형사의 보편적이고 상투적 추리는 상상력을 동원하지만 알고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통념 선에서 머문다. 이것이 우리가 뉴스 등을 통해 보는 사건의 진실 규명 범위이다. 장 형사의 의도된 시선은 타인의 고통보다 자신의 고통이 더 크다는 이기적인 시선이 진실을 바꿔버리기도 한다는 집단적 혹은 개인적 이기심의 한 형태로 상징되기도 한다. 아들은 사건의 부분만 목격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어머니의 자기 중심적인 시선과 아버지의 무너지며 흔들리는 시선, 딸의 금기된 시선까지. 이런 식으로 이 극의 모든 인물들의 눈은 통념과 보편을 넘어 혼란과 왜곡, 오류라는 카오스에 잠긴다.

어떤 도덕도 윤리도 규범으로도 통제되어지지 않는 오늘의 사건들 속에서 발견하는 범죄에서도, 진실을 외면하는 침묵에서도, 오도되는 뉴스에서도 이 작품의 인물들을 발견한다. 혹은 그 인물이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

 

 

 

 

작가의 글

고야의 <자기 아이를 잡아먹는 악마>(1820~1823무렵)라는 작품이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녀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너무 끔찍해요.’ ‘고야는 왜 그 그림을 그렸을까?’ 아들에게 무슨 대답을 기대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 굶주려서 실제로 자기 아이를 잡아먹는 사람들이 있었어.’ 곁에 있던 아빠가 말을 거들었다.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던 녀석이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 보여주려구요.’‘그래. 그랬겠구나.’ 일단 아이에게 칭찬을 하고는 난 마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라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이는 예술이 가진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인데 왜 그 말이 낯선 발견이었을까. 에드바르트 뭉크가 지옥에서 나온 그림을 그렸다지만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뭉크의 그림을 한 시대의 진정한 본 모습을 가장 객관적으로 그려낸 사람이라 했으며 개인과 시대의 우울을 토해냈음에도 개인과 시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했다. ‘나는 너무나도 일찍이 이 지상의 삶의 비참함과 위험 요소들을 알아 버렸고 또 죽음 이후에 오는 삶과 죄진 인간을 기다리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에 대해 들었던 것이다  뭉크

마광수 교수를 일그러진 영웅으로 표현한, 어느 기자의 글을 읽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시대의 경직 된 시선이 하루키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거였다. ............ 6년을 기다린 작품이다. 그래서 함께하는 분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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