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강은경 '닭집에 갔었다!'

clint 2024. 7. 2. 21:21

 

 

 

첫째날 :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여전히 분주한 시장. 

하지만 닭집을 하는 제천댁의 시어머니가 찾아오면서

일제히 그 분위기가 바뀐다. 시어머니의 입을 통해 또 다시 들춰지는, 

전철사고로 목숨을 잃은 제천댁 남편과 아들 종구의 이야기로 인해

시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때마침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인해

상길은 마음이 조급해져 가는데...

둘째날 : 꾸물꾸물하고 흐린 날씨 속에서 제천댁과 형사의 묘한 비리를

짐작하는 주마담과 제천댁의 싸움으로 그 분위기는 점점 활기를 잃어간다. 

게다가 제천댁에게는 사건의 현장을 목격했다는 사람으로부터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결국 제천댁은 돈을 건네주게 되고

공교롭게도 그날 오상길이 시장 사람들에게 한턱을 내며 즐거워한다. 

제천댁의 홀가분함과 씁쓸함, 그리고 상길의 불안한 활기가 섞인 시장. 

그러나 모두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몸짓으로 돌아간다.

에필로그 : 시간이 지난 무더운 여름 무렵. 

그동안 시장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갔으며

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뒤섞였을까... 

싸우고 부딪히고, 웃다가 울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종구와 제천댁, 금식이와 부안댁, 여전히 실랑이를 벌이는 상길과 순미, 

그리고 하늘도 보고 별도 딴 이대구와 주마담... 

그들은 역시 오늘도 시장 사람들과 그리고 일상의 삶과 흥정을 하고 있다.

 

 

 

 

 

시장에 들어서면 어떠한 느낌이 들까? 시장사람들의 일상은 무엇을 위주로 돌아갈까? 우리 삶에 있어 가깝고도 먼 곳으로 변한 곳이 요즘의 시장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편리함을 이유로 각종 대형마트로, 백화점으로, 아파트의 일일 장터로, 심지어는 인터넷으로 장을 보러 가게 되었다. 삶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재래시장에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하듯이 우리의 사회는 나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보다 더 개인주의적으로 변해가며, 이전에 서로 부딪히며 느껴왔던 삶의 희로애락은 추억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시장 사람들의 애환을 통하여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우리의 메마른 삶을 냉철하게 겨울에 비추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닭집에 갔었다는 시장의 일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극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코드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있는 모습 그대로 재고자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 공연은 극사실주의를 통해 관객들에게 공연의 관객으로서의 참여가 아닌 재래시장을 찾은 또는 지나쳐가는 우리의 자화상으로서의 참여를 요구한다. 극사실주의는 말 그대로 극단적인 사실주의를 의미한다. 전통주의적인 극에서 무대와 관객을 제4의 벽을 통해 나눈다고 한다면 극사실주의 공연에서는 공연장이 하나의 무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관객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자신 앞에서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 극사실주의 연극은 여러 종류의 장치들을 동원하여 이러한 환상에 관객이 빠져들게 현장성과 현실성을 꾀해야 한다. 현실감이 가감 없이 관객에게 전달되어 관객이 마치 무대를 보는 게 아닌 자신이 직접 현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을 일으켜야만 한다. 있는 일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극사실주의라고 할 때, 연극에서 필요로 하는 이야기의 전개가 필수적인 드라마적 요소는 일상의 흐름에 파문에 그 의의가 퇴색된다. 물론 여기도 사건과 이야기들은 존재한다. 어쩌면 사건들, 이야기들이 홍수를 이룬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은 무엇보다도 평범함 속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그중 평범함은 잘 짜여 진 이야기를 통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이야기 속에서 싹트며, 그날그날의 애환을 담고 있다. 시장을 지키는 닭집 국밥집, 커피와 김밥가게, 그리고 채소 가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네 명의 아낙네들과 그들이 각자 지니고 살아가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평범한 삶 자체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며, 관객들 역시 자신들 앞에 있어 나는 사건들을 생활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할 때 공연은 그 목적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숨겨져 있는 삶의 코드를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무심코 어느 날 지나치는 시장에서의 한 장면, 그 한 장면의 사건을 뜻밖에 보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극이 보여주고자 하는 재미를 한층 더 크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진리는 우리네 가까이 존재하는 것이며, 서로서로의 삶을 통해서 위로받고 자신의 생활을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질 때 우리의 삶은 그만큼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면 시장으로 가보자. 닭집에 무슨 이야기가 있는지...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수미 '위험한 시선'  (1) 2024.07.04
김미정 ‘꽃잎’  (1) 2024.07.03
박양원 '실종기'  (1) 2024.06.30
황이선 '금수우진전'  (1) 2024.06.28
김민정 '인생'  (1) 2024.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