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엑또르 크레미외, 뤼도빅 알레비 공동작 '오르페 지옥에 가다'

clint 2024. 5. 31. 16:36

 

 

제1막. 그리스의 거리.
테베의 교외 ‘벌꿀도산매 아리스테’라는 간판과 ‘음악원장 오르페’라는 간판이 좌우에 걸려있다. 여론(與論)이 나와서 프롤로그를 하고 들어간다. 권태기에 있는 에우리디체는 옆집의 아리스테에게 추파를 던진다. 그런데 아리스테로 말하면 염라대왕 플루톤이 에우리디체를 유괴해 가려고 변장으로 이 곳에 와있는 것이다. 한편 오르페는 양치는 처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 그래서 자기 아내 에우리디체의 뒷모습인줄도 모르고 바이올린으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켜다가 부부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혼을 하자니 여론의 제재가 두렵다. 결국 자기 아내가 아리스테와 밀회하는 보리밭에 독사를 숨겨 놓고 퇴장한다. 보리밭에 들어가던 에우리디체는 그만 독사에 물려서 쓰러진다. 염라대왕의 본성을 드러낸 아리스테는 요술을 써서 세상을 캄캄하게 만들고 에우리디체를 지옥으로 데리고 간다. 오르페는 슬퍼하기는커녕 마음을 놓고 마끼이아와 재미를 보겠다고 좋아한다. 그러나 여론의 충고로 제우스신(神)에게 아내를 돌려주도록 청해보기로 하고 음악원 생도들의 환송을 받으며 천당을 향해서 떠난다.

 


제2막. 올림프스 산상
대신(大神)제우스 부부를 위시해서 신들은 낮잠이 한창이다.  그러다가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의 뿔피리 소리로 잠이 깬다. 잠이 깬 신들은 최근 인간세계에서 일어난 에우리디체의 유괴사건을 이야기한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남편이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질투한다. 그때, 지옥으로 진상조사를 내려갔던 헤르메스가 들어와서 유괴사건은 플루톤의 짓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나 제우스도 지상의 여인들을 농락하는데는 전과(前科)가 많기 때문에 그를 엄벌할 수도 없다. 이때, 여론의 인도로 오르페가 나타나서 제우스에게 아내를 돌려달라고 청한다. 제우스는 에우리디체를 찾아주기로 하고 지옥을 향해 떠난다.

 


제3막. 염라대왕 플루톤의 안방.
창밖에는 파수가 지키고 있어서 에우리디체는 심심하기만 하다. 그것을 눈치챈 제우스는 파리게 되어 열쇠구멍으로 들어가서 에우리디체를 만난다.
제4막. 하늘과 땅의 모든 신(神)이 모여서 큰 잔치를 베푸는 장면.
에우리디체는 주신(酒神) 박카스의 향연에서 변장해 마구 날뛴다. 여기서 캉캉 춤의 갈로(2박자의 빠른 무곡)이 추워진다. 춤을 마치고 에우리디체가 제우스와 도망하려니까 플루톤이 막아서면서 그래서는 오르페와의 약속이 틀리니까 유혹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때, 오르페가 바이올린을 켜며 등장한다. 오르페는 제우스에게 약속대로 아내를 돌려 달라고 간청한다. 강을 완전히 건너기까지는 결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하고는 아내를 돌려준다. 오르페는 아내를 데리고 배를 타려 할 때, 제우스는 벼락을 떨어뜨린다. 엉겁결에 오르페가 뒤를 돌아보니 아내는 이미 없다. 여론(輿論)은 뜻밖의 사태에 놀라지만 오르페는 오히려 기뻐하면서 양치는 처녀한테로 가려고 한다. 쥬피터는 에우리디체를 주신(酒神) 박카스의 시녀를 삼기로 한다. 포도덩굴로 된 가마를 타고 박카스가 등장해서 일동이 축하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본 작품의 원제는 <Orphée aux Enfers>로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 <지옥의 오르페>라고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으나, 프랜치 캉캉으로 유명한 '천국과 지옥의 서곡' 덕분에 <천국과 지옥>이라는 부제가 우리에게 보다 잘 알려져 있다. <오르페, 지옥에 가다>라고 제목을 번역한 연유는 이 작품이 제시하는 핵심인 오르페의 행위성을 부각시키고자하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오르페의 신화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한 감동으로 자리하게 된 까닭은 바로 에우리디체에 대한 오르페의 지고지순한 사랑이며, 그 사랑의 구현 의지를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지옥에까지 자신의 아내를 찾으려 가는 오르페의 행위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 는 에우리디체를 찾아나선 오르페의 행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이 펼쳐지게 된다. 오르페가 지옥에 가는 행위는 작품속에서 다양한 사건을 끌어내는 동인(動因)이 될 뿐만이 아니라. 오르페의 신화를 구축하는 아이콘이 되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쓰여진 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신화의 것과 크게 다르다. 여기서 오르페가 에우리디체를 찾아달라고 제우스를 찾아가서 탄원하고 지옥행을 나서는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여론'이 무서워서이다. 신화에서처럼 홀홀단신 오직 자신의 칠현금을 벗삼아 아름다운 노래로 저승의 모두를 감동시키는 절대 사랑의 소지자가 지니는 숭고한 모습이 아니라. '여론'의 협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끌려 가는 볼품 없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작품 <오르페, 지옥에 가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더 이상 신화에서처럼 오르페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신화가 구축해 놓은 완벽한 사랑의 알리바이를 풍자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왜 오르페의 애틋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에우리디체는 구출될 수 없었을까? 에우리디체가 뱀에게 물려 죽은 것은 우연인가? 왜 제우스는 오르페에게, 지상에 완전히 당도하기 전에 그녀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을까? 이루지 못한 비극적 사랑의 한 전형으로 신화 속에 남은 그들의 처절한 이야기의 배후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등등의 의문에 19세기의 두 작가는 그들 특유의 재치와 익살스러움으로 접근한다. 오르페의 절대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야기된 비극적 결말의 요인을 인간의 본능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자유분방한 성향, 제도와 윤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연애에의 열망과 변덕스러운 속성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실상 이 작품은 시작부터 오르페와 에우리디체가 이미 서로에게 싫증 나서 다른 애인을 찾아 나서는 장면을 제시한다. 에우리디체가 아리스테라는 새 애인의 집을 꽃으로 장식하며 연가를 부르는가 하면, 오르페는 그녀를 자신의 애인 마끼이아로 착각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둘은 각자 상대의 불륜을 알아차리며, 에우리디체는 서로가 자유롭게 연애하자고 오르페에게 통고한다. 한편 이 작품 속에서 자유연애를 구가하는 인물은 비단 이들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가 신화 속에서 잘 알고 있듯이 제우스를 위시하여 천국과 지옥의 모든 신들이 이러한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모든 것이 변화 없이 풍요로운 올림프스 동산에서의 생활에 권태를 느낀 신들이 살짝 외출로 사랑의 향연을 즐기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제우스는 명예와 위신을 내세우며 여신들에게 우격다짐으로 정절을 강조하나, 실제로는 향략적인 본능의 이끌림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여신들의 반란은 제우스의 위선을 폭로하고 권위를 실추시키며, 모두 함께 '즐거움이 가득한 지옥'으로 가는 제우스를 동반하기로 타협을 본다.

 

 


또한 이 작품의 마지막에 에우리디체가 어느 누구 특정인물의 소유가 되지 않고 바쿠스의 숭배자가 되어 자유를 구가함도 실로 의미심장하다. 술의 신으로 알려진 바쿠스는 예술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으로 도취와 쾌락, 자연적 충동의 세계, 약동하는 생명력과 감정의 승리를 반영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향락과 자유연애에의 열망으로 가득한 등장인물들 가운데 이러한 욕구를 윤리적 잣대로 통제하면서 이 작품의 균형을 이루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여론'이라고 불리우는 이 인물은 대사상이나 무대 점거율에 있어서는 적은 부분을 차지하나 등장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에우리디체의 죽음을 알게 된 오르페가 새로운 애정행각을 꿈꾸며 기뻐하다가 '여론'이 꾸짖는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하는 모습은 실로 가관이며, 제우스 역시 여신들및 플루톤과 티격태격하다가 그의 방문을 예고 받고 혼잡한 분위기를 감추느라 의관을 정비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질서를 연출한다. 눈부신 후광과 회초리로 무장한 '여론'은 가정과 사회에서 지켜야 할 윤리적 표준을 제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부부지간의 충실함을 옹호하는 그는 더 이상 에우리디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오르페에게 그녀를 찾아나서도록 종용한다. 그 이유는 '후세에 깊이 남길 교훈을 세우기 위해서 자신의 아내를 되찾으려고 노력한 귀감이 될 남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론'이 중요시 여기는 것은 '사랑보다는 명예' 즉,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 이전에 본보기가 될만한 사랑의 신화를 세우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대목이 제우스의 태도에 비추어졌을 때, 그것은 명백히 위선의 메시지를 담게 된다. 다이아나의 슬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사랑한 악티온을 죽이고서, 그 이유가 그녀에게 신화 속에서 순결한 여신으로 기록되는 명예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제우스를 여신들은 비난하며, 더 이상 위선적인 독재자의 명령에 따를 수 없다고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같이 이 작품은 오르페의 신화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향락적인 삶을 추구하는 등장인물들과 그것을 제어하여 도덕적 위상을 세우려는 여론과의 대치. 그리고 제우스의 위선 등을 바쿠스적 도취와 환회의 승리로 귀결시키면서 프랑스 제2제정기의 파리 풍속도를 노골적이고도 익살스런 필치로 투영하고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춤이 캉캉춤의 원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