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카를로 골도니 '한꺼번에 두 주인을'

clint 2024. 5. 27. 17:28

 

 

 

연인의 오빠와 결투하다 그를 죽이고 고향에서 도망친 남자 플로린도와 
그를 찾기 위해 죽은 오빠 페데리고를 가장하여 남장을 하고 
베니스에 온 베아트리체가 그의 두 주인이다. 
돈을 두 배로 받을 욕심으로 우연히 동시에 이 두 사람의 하인이 된 트루팔디노

(아를레끼노)는  두 주인 사이를 오가느라 정신이 없다. 
주인에게 돈을 갖다 주라는 심부름을 받으면 엉뚱한 주인에게 전하기도 하고, 
짐을 운반하라는 명을 받으면 두 주인의 소지품을 뒤죽박죽 섞어 놓는다. 
하지만 결국 이 두 주인을 다시 만나게 하는 건 엉뚱한 그의 행동 덕분이다. 
< 트루팔디노 >는 17세기 유럽에서 널리 퍼졌던 가면극 코메디아 델 아르떼를 
당시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가 대본으로 옮긴 것을 조르지오 스트렐러가 
다시 현대화한 작품으로, 스트렐러는 이 작품을 3막으로 나누고 
막이 오를 때마다 불씨를 안고 나타나는 할아버지를 등장시켰다. 
그는 무대 앞쪽에 늘어선 촛불에 하나씩 불을 붙여 연극의 시작을 알린다. 
이 촛불은 전기 조명이 들어오지 않던 전통극에서 조명으로 쓰이는 동시에 
연극무대의 경계를 알리는 장치이기도 하다. 
촛불이 켜지면서 연극이 시작되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200년전 베니스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3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 가운데 1막은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며, 2막에서는 공연 중간중간에 배우들이 서로 말참견을 
하기도 하고 거들기도 하는 코메디아 델 아르떼의 전형을 볼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며, 3막은 아를레끼노가 등장하는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18세기에 이르러 코메디아델라르테는 여전히 주요 연극 형식으로 남아 있었으나 지속적인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골도니에 의해 개혁이 가해지게 된다. 당시 베네치아는 유럽 연극의 중심지였다. 코메디아델라르테는 여전히 주요 연극 형식으로 당시 희극 무대를 지배하고 있었고, 베네치아의 극 세계는 비록 퇴화되고 시시해 졌지만 코메디아델라르테에 계속 집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년 동안이나 유럽 무대를 풍미했던 코메디아델라르테의 생생한 특징인 전형성과 즉흥성이라는 두 가지 성격은 시간이 흐르면서 보다 다양하고 고양된 형식을 원하는 시대 요구에 오히려 부합하지 못하게 되며 그 빛이 퇴색한다. 장점이었던 특징들이 약점으로 변해 극이 점점 저질화되고 그 빛이 퇴색하여 타락해 갔다. 완전한 대본 없이 즉흥적인 착상에서 나온 연기는 자연스럽고 생동감은 있을지언정 그 말의 표현에 우아 함이나 아름다움은 있을 수가 없었다. 또한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고정된 전형의 역할만을 연기함으로써 내면의 감정들을 얼굴로 보여줄 수 없었고 대신 과장된 몸짓으로 감정묘사를 해야 했다. 게다가 관객 반응에만 지나치게 짐작한 나머지 저속하고 음탕한 대화, 기이한 몸짓 등으로 억지웃음을 유발하는 공연으로 전락해 갔다. 당시 이러한 줄거리 희극은 가면이라는 보조 수단과 아를레키노, 브리젤라 판탈로네 등의 즉흥 라치 없이는 그 효과를 달성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골도니는 희극은 자체만으로도 대중에게 흥미를 갖게 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것이나 굉장한 것이나 경이로운 것, 가면을 쓰는 것 등은 필요치 않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코메디아델라르테의 극적 전통에 개혁을 가하게 된다. 그는 줄거리 위주였기에 단지 부차적 위치에 지나지 않았던 ''을 예술적 위치로 올려놓았고, 그렇게 완전하게 글로 다 쓴 대본들은 문학적인 제 위치로 복귀하게 되었다. 즉흥적인 대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정확한 대본에 의한 공연으로 등장인물의 다양한 성격을 현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내면의 감정 표현을 방해하는 전형적인 가면은 점진적으로 잔인하고 악마적인 형태에서 탈피해 인간화된 가면으로 변형되거나 없어져 갔다. 이로 인해 코메디아델라르테의 고정된 역할들에서 나타나는 잔니들의 잔악함, 아를레키노의 위법 행위, 목신 판탈로네의 완고함. 음탕함, 탐욕, 조소, 하녀들의 뻔뻔함과 나쁜 품행들. 이들의 거친 말투, 야비함. 지저분하고 과장인 라치 등이 모두 절제되었다. 이제 고정된 전형의 역할들은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대인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인간적, 사회적 특징을 띠게 된다. 그러나 전형적인 인물들이 인간적이고 다양한 성격으로 새로이 변형되었지만 그들의 흔적은 작품마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코메 디아델라르테에서 다루던 사랑의 음모는 골도니 작품에도 여전히 나타난다.

<한꺼번에 두 주인>은 코메디아델라르테를 개혁한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의 작품들 가운데 코메디아델라르테의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러나 골도니의 다른 극에서 볼 수 있듯, 이 극에서도 골도니 극의 일관성 있는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는 계층별 인물들의 속성과 핵심을 포착해 새로운 성격 묘사를 이루어 내면서, '코메디아델라르테 인물들의 개혁적 변형과 동시에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연극'에 대한 이상을 실현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비록 코메디아델라르테 특성이 농후하고 매우 과장된 희극이지만, 이미 이 극 이면에서도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적 비전이 은근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첫째, 이 극은 그의 다른 극들과는 달리 코메디아델라르테 역할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기본적인 성격들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두 노인 판탈로네와 도토레, 하인 트루팔디노(아를레키노의 또 다른 이름)와 스메랄디나, 연인들(클라리체와 실비오 베아트리체의 플로린도 연인들의 이름은 다양하게 변화), 그리고 브리겔라가 코메디아델라르테의 전형적인 인물들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성격 또한 기본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즉 두 노인은 일시적이지만 젊은이들과 대치하고, 트루팔디노는 배가 고파 밥을 먹기 위해 속임수를 쓰고 다른 주인을 섬기며, 스메랄디나는 클라리체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다하고, 연인들은 사랑 때문에 사건에 휘말린다. 하지만 그 외에는 골도니가 새로운 연극을 위해 시도한 코메디아델라르테 개혁의 내용처럼 등장인물들의 언어와 행동이 모두 순화되고 정제되어 있으며, 그들의 감성과 약점들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모습들로 변형되었다. 가면 다른 인물들은 쓰지 않고 트루팔디노 만 쓰고 있다. 중산층 상인 계급인 판탈로네는 계산적인 상인이라는 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인물로 바뀌었다. 약속을 매우 중히 여 기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물론 도토리의 항변처럼 그의 약속에는 논란의 여지도 있고 또 돈도 많고 외아들인 페데리고와 먼저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게 그에게는 더 이득인 것으로 보이므로 판탈로네의 의도가 아주 순수하다고 만은 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기존의 거칠고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음탕한 캐릭터가 아니라, 전소하고 겸손하고 또 신사다운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노인으로 그려진다. 또 괴로워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딱히 여기는 마음도 지녔으며, 회계상 실수한 자들을 두고 그럴 수도 있다는 너그러움도 보인다. 도토레는 더 이상 현학적이지 않으며, 잘난 척하기 위해 사용하는 웃음 유발용 엉터리 라틴어가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정확한 라틴어 경구들을 구사한다. 베아트리체가 남장을 하고 나타나 클라리체를 두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약혼했더라도 상관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그가 아들의 경쟁자임에도 혼잣말로 싫지 않다고 하는 등 노인이면서도 때에 따라 젊은이들의 방식을 옹호하기도 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또 아들의 권리 찾기를 적극 옹호하면서도 막 나가는 행동을 하지 말고 침착하게 굴라고 조언하면서 젊은 아들의 존경까지 받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학자나 법조인에게 기대하는 모습과는 달리 기분 나쁜 상황에서는 감정 조절을 못하고 화를 내고 비꼬고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브리겔라는 교활하고 뻔뻔스럽고 허풍스런 수다쟁이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못되고 심술궂은 하인의 전형에서, 여관집 주인으로 신분과 역할이 바뀌었고 예의 바르고 솜씨 있는 음식으로 손님들을 깍듯이 대접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더욱이 베아트리 체의 변장을 숨겨 주면서도 판탈로네를 속이는 짓도 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 보듯 정직한 상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교활한 데 없이 촌스럽고 단순한 하인이었던 아를레키노는 행동이 민첩해지고 어느 정도 교활해진 트루팔디노로 등장해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코메디아델라르테의 역할에서처럼 여전히 배고픔에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꺼번에 두 주인을 섬기는 시도를 주저 없이 행하며 뻔뻔함과 속임수로 상황을 모면하는 생계형 능력자로 활약한다. 게다가 스메랄다나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둘째, 매우 과장된 희극이지만, 골도니의 다른 극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계급별 인물들이나 여성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통해 새로운 사회에 대한 그의 비전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지중해 해상강국이었던 베네치아는 상권이 대서양으로 옮겨가면서 무역 중 심지로서의 주도권을 상실했다. 18세기 골도니 시대 베네치아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도박과 매춘이 성행하는 환락의 중심지였다. 당대 베네치아 귀족 여성들의 타락상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그런 한편 18세기 유럽을 풍미한 사상은 계몽주의였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이성이 되는 사상이었다. 전통적인 가치 기준은 거부되고 외적인 권위는 모두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골도니는 극을 통해 당대 현실을 풍자하면서도,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쇠락해 가던 베네치아의 실제 현실과는 상반된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그려내곤 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보면 귀족. 부르주아, 하층민이 뚜렷이 구분되어 등장하는데, 비록 결함이 있더라도 도덕성 회복이 가능하거나 혹은 도덕성이 우월한 부르주아 중 신흥을 베네치아 사회를 이끌어갈 가장 이상적인 계급으로 묘사하곤 한다. 따라서 이 극에서도 다른 인물들보다 판탈로네와 브리겔라를 감정대로 마구 행동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골도니는 자신이 바라는 새로운 사회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다양하게 그려 내곤 한다. 정숙하고 정직하고 명예롭고 교양과 인내와 평판과 현명함을 겸비한 여성, 또는 남자의 신분과 돈에 종속되지 않고, 심각한 도덕적 결함이 있는 남자들에게 의지하지도 않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원하는 여성의 모습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골도니의 다른 작품들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한꺼번에 두 주인>에서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그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귀족계급인 플로린도는 결투로 사람을 죽이고 법의 처벌을 피해 도망쳤고 역시 귀족계급인 베아트리체는 연인 플로린도를 쫓아 남장을 하고 베네치아까지 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상황에만 몰두하느라 트루팔디노의 밥도 챙겨 주지 않고 또 그를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데, 이유가 무엇이든 이 장면들은 이들의 배려 없고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베아트리체에게서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아 나서거나 당대 남성의 보호 아래서만 존중 받는 여성의 입장을 거부하고 필요에 따라 남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면모가 부각된다. 한편 부르주아 중산층 여성 클라리세는 아버지에게 복종하면서도, 실비오에 대한 일편단심과 포용력, 베아트리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우 곤란한 상황도 꿋꿋이 버티며 죽음까지 불사하려는 신의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녀인 여성 스메랄디나도 다른 계급 인물들의 속성과 남성 중심의 관습과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이 놓인 불리한 입장 등을 꿰뚫어보는 똑똑한 안목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그녀는 하녀임에도 상대 계급에 상관없이 대놓고 일갈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카를로 골도니(Carlo Goldoni, 1707~1793)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1723년 베네치아의 파도바와 모데나에서 법률을 배웠다. 1731년에 파도바대학에서 법률학을 마치고, 잠시 베네치아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초기의 작품을 썼다. 1734년 베로나에서 산 사무엘레극단과 만나 전속작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전통적인 코메디아 델 아르테 풍의 소극(笑劇) <두 주인을 섬기는 하인> 등을 썼다. 그러나 차츰 계몽주의나 몰리에르로 대표되는 프랑스 고전희극의 영향을 받아 즉흥적이며 터무니없는 줄거리의 즉흥희극을 배척하고, 그 당시 풍속의 사실적 묘사와 등장인물의 자연적인 심리 전개를 주체로 하며 가벼운 풍자와 교훈을 담은 시민희극의 확립을 목표로 연극 개량운동을 제창했다. <여관집 여주인>(1753), <카페>(1750), <캄피엘로(Campiello)>(1756) 등의 걸작이 있다. 다작(多作)으로서, 작품이 200편에 가까우며, 1750년~51년에는 16편의 신작을 상연했다. 1762년에 파리 이탈리아 극장의 작가가 되어 프랑스로 이주, 프랑스 왕실의 이탈리아어 교사가 되었으나, 대혁명을 만나 가난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Carlo Goldo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