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경민 '섬'

clint 2024. 4. 9. 11:48

 

  • 여자와 남자, 두 명의 여행자가 만난다.
  • 둘은 가이드를 놓치고, 잠시 섬에서 일행을 기다리기로 한다.
  • 홀로 돌아다니기에 꿈의 바다는 너무 험하고 길을 잃기 쉬운 탓이다.
  • 가이드를 기다리며 잠이 든 여자는 섬에서 남자와 단 둘이 사는 꿈을 꾼다.
  • 꿈속에서 다정한 연인인 여자와 남자는 섬에 거주하는 동안
  • 타인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과 그 타인의 기척만이 남아
  • 자신들의 곁을 맴도는 것을 깨닫고 두려움에 잠긴다.
  • 남자는 섬이 그들을 집어삼킨 것이라며 떠날 것을 종용하지만
  • 여자는 거부한다. 남자는 홀로 섬을 떠난다.
  • 여자는 꿈에서 깨어난다.
  • 가이드는 아직 되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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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섬>은 고시원의 방들을 섬에 비유,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고립되고, 소외된 밀실에 갇힌 사람들과 바다 위 외로운 섬이 다르지 않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고시원의 여자와 남자. 마치 휴가를 온 듯한 그 둘은 섬에서 처음 만난다. 기쁨으로 충만한 그들의 휴가는 그곳이 ‘섬’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나갈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고시원을 ‘섬’으로 상징화한 이 작품은 두 등장인물의 섬세하고 세밀한 감정 표현을 중심으로 현대사회의 단면을 진지하게 목도하고 있는 작품이다. 고시원의 방들을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에 비유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섬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그 얼굴들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된, 그리하여 캄캄한 밀실에 외롭게 버려져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에 다름아니다. 또한 전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꿈을 잃어버린 청춘의 일그러진 초상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압축과 상징을 통해 암담한 현실의 공간을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환상의 공간으로 확장시킨 뛰어난 상상력도 일품이다.

 

당선소감 - 金京民 중앙대 연극영화학부4. 1988년생.

올해 초 대학생 몇몇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이 세상에 고한 이별에 대한 짧은 기사 몇 줄은 가슴속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고 지나갔다. 그 안에는 빗물이 고였다. 그 웅 덩이를 내내 들여다보던 한해였다. 많은 생각을 했지만 남은 것은 없었다. 지쳐 나가떨어질까 싶은 때가 되고서야 나는 간신히 수면에 비 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샘처럼 몇개의 말이 솟았다. 안아줄게요. 그래도 안아줄래요. 이 한 줄의 대사로 시작된 글이다. 그 작은 희망의 불씨를 놓치지 않아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천둥벌거숭이와 다를 바 없던 나를 하나하나 이끌어 희곡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눈뜨게 해 주신 장성희 선생님, 고연옥 선생님, 이원기 선생님, 이대영 선생님께도 당연히 크다큰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