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손기호 '사랑을 묻다'

clint 2024. 4. 7. 21:27

 

 

50세, 시간강사인 명호는 삶에 지쳐있다.
그는 20대 때 행복한 연극 무대를 기억하며
남 몰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준비한다.
극 중 로미오를 연습하는 명호는 
점점 로미오와 자신을 동일 시 하며
로미오가 사랑을 갈구하듯 
현실에서 줄리엣을 찾아낸다.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 희연을 사랑하게 된 명호는
이 감정이 연극 속 로미오의 감정인지,
실제 자신의 감정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이제 늙은 로미오 명호는 세상의 금기에 맞서며
점점 위험한 선을 넘어가는데...

 



사랑을 묻다(작.연출 손기호)'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랑은 언제나 찾아온다. 50대에 접어든 명호에게도 사랑은 있다. 되는 일 하나 없고, 가장의 책임이 온몸을 짓누르지만 사랑을 향한 열정은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누군가는 불륜이라 이야기하지만,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강사 명호는 꿈이 있다. 삶에 지쳤지만, 무대에서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하면서 명호는 점점 로미오에게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모든 걸 내던졌던 로미오를 통해 자신만의 줄리엣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 희연을 만나며 명호는 설렘을 느낀다. 다시 뛰기 시작한 가슴은 명호를 20대의 청춘, 진짜 로미오로 만들어준다. 희연은  명호에게서 떠나버린 아버지를 본다. 늘어뜨린 어깨와 휘청이며 걷는 걸음을 보고 있자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소아마비를 앓던 자신을 업어주던 그 등도 생각난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함께 있으면 좋,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사랑이라고 말할 용기는 없다. 희연이 진짜 명호의 줄리엣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관객은 사랑에 도취된 남자, 명호의 시선에서 모든 걸 바라보기 때문이다. 연극 '사랑을 묻다'는 객석에게 '나와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극 중 명호의 강의는 자기를 이야기하는 '자기 개방'에서 내가 꾸민 나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제3의 나를 발견하는 '자기 계시', 다른 이야기를 마치 내 것인 양 받아들이고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자기 인식'으로 이어진다. 명호는 자신의 강의처럼 선희를 만나고 진짜 자신을 발견한다. 더불어 연극을 바라보던 관객들도 '나는 누군인가',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을 바라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간다.
작품은 2013년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작가의 글 - 손기호
'사랑이 뭐예요?' 라는 물음에 '사랑이 뭡니까?"라고 되물었답니다. 

그게 사랑이랍니다. 어려워요! 연습 중에 주연 배우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공교롭게 우리 작품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작업 중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어려워 입니다. 사랑도 어려운데 연극도 어렵다니...
작업자들은 어렵다하더라도 관객은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어렵지 않다고 변명을 좀 해보자면, 남자는 배우의 연기가 만든 감정은 진실(진짜)이지만 자신과 거리를 둔,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이)만든 감정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연기(배우)를 가르칩니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연기를 배우며 연기 속의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감정을 발견합니다. 남자는 지금 자신의 힘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잊고 있었던 연기(배우)이고 사랑이라는 열정의 감정이라 생각하고 로미오의 사랑을 연기하며 사랑을 꿈꾸고 현실에서 여자를 만납니다. 여자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아빠의 모습을 현실의 남자에게서 발견하고 감정에 사로잡히지만 그것이 남자에 대한 사랑인지 아빠에 대한 연민인지, 사랑이라면 남자인지 아빠인지. 사랑이라는 그 감정은 진실인지 아닌지, 그 감정의 주체가 진정 자신인지 아닌지 몰라 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그게 연극 속 로미오의 사랑인지 현재 자신의 사랑인지, 자신의 연극 속 연기가 만들어 낸 현실의 환영인지 몰라 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결국 자신에게 자신을 묻습니다.  여전히 어렵네요! 이 연극의 형식도 연극 안에 연극, 연극 밖에 연극,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 이것이 연극인지 아닌지를 묻게 해서 '이것인지 저것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묻고 있는 의도와 구도를 맞춰보려고 했습니다만... 더 어렵네요! 어렵다고 말하며 해설한 이것은 어렵나요? 쉽나요? ᄒᄒ.. 의미 이전에 그냥 '이런 복잡한 사람도 있구나.' 하시고 '연극적으로 연극놀이) 연극을 풀었구나.' 생각하시며 부디 즐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