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알퐁스 도데 '별'

clint 2023. 9. 7. 16:04

 

지금은 노인이지만 젊은 시절 뤼브롱산에서 양치기 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목동은 직업 특성상 사람과 거의 접촉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2주 단위로 마을 소식과 먹거리 등을 짊어지고 올라오는 노라드 아주머니나 농장에서 일하는 꼬마 아이 미아로가 유일한 말동무로, 이들이 올 때가 아니면 양들을 돌보고 밤에 별을 헤아리곤 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그는 이들이 찾아올 때마다 누가 세례를 받았고 누가 결혼을 했는지 등의 마을 소식을 물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알고 싶어한 건 근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인 주인집 따님 스떼 화네뜨 아가씨의 근황. 그는 관심 있는 티는 내지 않으면서도 아가씨가 파티에 자주 참석하고 저녁 만찬에 초대를 받거나 나들이를 하러 외출하곤 하는지, 지금도 멋진 청년들이 아가씨의 환심을 사러 오는지 등을 묻고는 했다. 일개 천한 목동이 관심을 가질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 그는 20살이었고 스떼 화네뜨는 그가 한평생 본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예정된 식량 배달이 여느 때와는 달리 매우 늦었다. 목동은 아침에는 큰 미사 때문에 늦는다고, 낮에는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늦는다고 생각하며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오후 3시쯤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노새를 타고 도착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 꿈에서나 그리던 스떼 화네뜨 아가씨였다. 목동이 깜짝 놀라 어버버 하는 동안 아가씨가 말하길, 심부름꾼 아이는 앓아누웠고 노라드 아주머니는 휴가를 얻어 자식들을 보러 갔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왔는데, 오는 동안 길을 잃어 늦었다고 했다. 하지만 꽃 리본과 화려한 스커트, 레이스로 치장한 아가씨를 보고 목동은 '길을 잃고 헤맨 게 아니라, 파티에서 춤을 추다 늦기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 풋사과같이 수줍은 목동은 아가씨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이 처음이며 주인집 따님이 자신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지만, 쑥스럽고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아가씨는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짐을 다 꺼낸 뒤, 목동의 거처를 구경하며 산 위의 생활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장난스러운 질문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다 서둘러 내려가려는 듯 잘 있으라는 인사를 건네고, 목동은 아가씨를 보낸 뒤 애틋하고 황홀한 심경에 젖어 해가 질 때까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데 돌연 아가씨가 흠뻑 젖은 채로 다시 올라온다. 소나기가 내려 불어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진 것 같았다. 이제 날이 늦어서 아가씨 혼자서는 돌아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목동이 양떼를 내버려두고 함께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목동은 아가씨가 몸을 말리고 쉬도록 모닥불을 피우고 먹을 것을 가져다 주지만 아가씨는 무섭고 걱정이 되어 모두 거부하며 울먹인다. 목동은 아가씨가 안에 들어가 쉴 수 있게 밀짚을 새로 깔고 새 모피를 덮은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나와 모닥불 옆에 앉는다. 이때 그는 '누추할지언정 그래도 내 울 안에서 아가씨가 내 보호 아래 쉬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뿐이었다고 한다. 얼마 뒤, 아가씨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밖으로 나온다. 목동은 자신이 두른 모피를 벗어 아가씨에게 걸치고 불을 더 세게 피운 뒤, 아가씨와 함께 말없이 한참 있었다. 아가씨는 산에서 밤을 보내는 게 익숙하지 않아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목동에게 다가가 앉곤 했다. 그러다 별똥별 하나가 둘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고, 이를 본 아가씨가 "저게 뭐냐?"고 묻는 것을 시작으로 둘은 밤하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 목동의 이야기를 듣던 아가씨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고, 목동은 아가씨의 얼굴을 보며 해가 뜰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마음이 설레기는 했지만 나쁜 생각은 추호도 품지 않았고, 아가씨를 지켜보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노라고.

유오성, 박진희 주연의 영화 <별>

 

 

‘별’은 따스하고 감수성 풍부한 시선으로 인생을 통찰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서정 작가 알퐁스 도데가 1873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프로방스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는 젊은 목동 알퐁소가 아름다운 주인집 아가씨 스테파네트를 흠모하는 순수하고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만약 당신이 아름다운 별빛 아래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당신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 또 하나의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정적 속에서 깨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