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로 붙잡혀 맹인이 된 삼손은 가자(Gaza)의 감옥 노예로서 노역에 종사하고 있다. 모든 노역이 금지된 축제일에 삼손은 근처의 약간 한적한 야외로 나와 잠시 앉아 쉬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거기서 우연히 몇 사람의 동포들이 삼손을 방문한다. 이들은 코러스로서, 가능한 최선을 다해 그를 위로하고자 한다. 이어서 연로한 아버지 마노아가 방문하여 아들을 달래려고 애쓴다. 또한 몸값을 지불하여 아들을 석방할 계획을 말한다. 끝으로 마노아는 오늘의 축제가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준 우상에 대에 감사를 드리는 축제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삼손은 더 큰 괴로움에 빠진다. 마노아는 퇴장하여 블레셋인 관료들에게 삼손의 석방을 애원한다.
한편 두 사람이 더 삼손을 방문하여 논쟁을 벌인다. 최후로 관리가 등장하여 삼손에게 고관대작들이 모여 있는 신전으로 가서 관중들 앞에서 힘을 자랑하라는 명령을 전달한다. 처음에 삼손은 절대로 갈 수 없다고 거절하여 그를 돌려보낸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판단한 삼손은 두 번째로 방문하여 강제로 끌고 가겠다고 위협하는 관리를 따라가기로 한다. 코러스는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고 마노아는 곧 아들을 석방시킬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 돌아온다. 대화 도중에 전령 한 사람이 급하게 와서, 처음에는 혼란 상태였지만 이윽고 상세하게 파국에 대해 전해준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어쩔 수 없이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극은 막을 내린다.
<투사 삼손>은 존 밀턴의 최후의 작품으로 1671년 복락원과 합본으로 출판되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으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소재로 택한 종교적 작품이라는 소재상의 유사점과 비슷한 제작시기 등이다. 물론 <투사 삼손>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지만, 역자는 이 작품의 기본 정서인 고통. 절망. 승리가 인생의 치열한 체험을 통한 노년의 완숙함으로 잘 통제되어 있음과 실제 출판연도를 고려하여 왕정복고 이후에 창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를 따랐다.
그러나 이런 피상적인 이유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다. 거기에는 검열법을 피하기 위한 밀턴의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음에 틀림없다. 새 정부의 정치적 사찰 대상자였던 Milton은 비교적 정통교리를 따르면서 정치성을 거의 띠지 않은 『복락원』을 복수와 기만과 살인으로 가득 차서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으로도 보일 수 있는 투사 삼손과 병치시킴으로써 교묘하게 검열법을 피할 수 있었다. 즉 검열법이 시행되는 사회에서 집권층의 눈에 위험하고 혁명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사상을 전달하려고 하는 시인이 택할 수 있는 수법을 사용했다.. 밀턴은 종교와 정치개혁에 참여한 문학가로서의 경험의 폭과 깊이 와 다양한 형식에 대한 시험정신의 특징을 자신의 존재와 문학을 마감시킨 『투사 삼손』에서 그만큼 더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주인공 삼손의 상황인 실명. 투옥. 고립 등이 자신의 만년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밀턴은 왕정복고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중점을 두고 사회·정치적 변혁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정치성이 짙은 작품을 쓰게 되었다. 이 작품을 청교도 혁명의 영웅적인 야망과 실패를 반영하는 강렬한 정치적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성서의 "사사기" 13장-16장에 나오는 삼손에 관한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 밀턴은 삼손의 일생의 단계를 영국 역사와 관련시켜 생각함으로써, 이후의 작품에서 정치적으로 해석할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마치 삼손이 다시 자란 무적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잠에서 깨어나듯이, 영국은 오도된 역사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투쟁에 나설 것으로 예언한 것이다. 왕정복고 이후 집권층은 자신들의 지배 이념을 신화화하기 위해 많은 선전가들을 동원하여 찰스 2세의 등극을 미화했다. 그 결과 정치적 재집권의 의미를 띤 왕정복고가 국민들에게는 종교와 윤리적 측면에서까지 정당화되었다. 즉 정치적 왕정복고가 근본적이며 정신적인 개념을 갖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바로 이런 시대적 문맥에서 『투사 삼손』은 재고되어야 한다. 비록 이 작품이 삼손의 종교적 승리 혹은 정신적 갱생에 관한 시임에는 틀림없지만, 삼손에 의한 다곤 신전의 붕괴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밀턴의 의도는 스튜어트 왕가가 왕정복 고를 합리화하려고 내세운 가치와 주장들의 허위성을 폭로시키는데 있었다.
위정자들이 내세운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을 깨닫지 못하고 예속을 행복으로 오해하며 살아가는 국민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가장 분명하게 제시된 작품이 『투사 삼손』이다. 삼손은 처음에 코러스에게 자신의 투옥과 민족의 예속의 책임을 해방자를 인정하지 않는 부족들의 노예근성에 전가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화로 삼손은 차츰 섭리에 대한 회의를 반성하고 타락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도덕적 갱생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면서 삼손은 데릴라의 간교함보다는 자신의 의지의 나약함을 더 비판한다.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이 결국 노예가 되는 벌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지만 지하 감옥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방아를 돌리는 현재의 상황이 데릴라에게 빠져 있었던 과거의 치욕적인 노예상태보다 덜 굴욕적이며, 과거의 정신적 실명이 현재의 육체적 실명보다 더 나쁜 상태였다고 간주하는 사실에서 체험을 통한 깨달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같이 밀턴은 왕정복고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의지를 변함없이 지키면서도 그 실천 방법에 있어서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한다. 삼손의 트옥과 이교도들의 지배를 찰스 2세에 의한 왕정복고와 관련시켜 생각하면, 자유의 소중함을 몸으로 지키지 못한 결과가 곧 노예상태로의 전락임이 분명해진다. 그래서 삼손은 깨달음을 통한 종교적 갱신으로 스스로를 해방시킴으로써 민족에게 참된 자유의 의미를 보여준다. 마노아는 삼손이 이름에 걸맞게 영웅적인 최후로 복수했으므로 눈물을 흘리거나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제 그의 아들은 블레셋 후손들에게는 오랜 세월 동안의 슬픔을 남겨 준 반면에, 동족에게는 명예와 자유를 찾아 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 목해야 할 것은 자유의 회복에는 조건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에 주어질 자유는 삼손의 영웅적 최후로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들이 삼손의 죽음의 의미를 깨달아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유를 위한 투쟁에 나설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결국 밀턴이 다곤 신전의 붕괴와 블레셋 귀족들의 살해로 의도하는 정치적 메시지는 영국민도 노예근성을 버리고 왕정복고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을 직시하여 참된 자유가 넘치는 하나님의 세계를 실현해야 한다는 실천적 의지이다.
존 밀턴(John Milton, 1608년 12월 9일~1674년 11월 8일)은 영국의 시인이자 청교도 사상가로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올리버 크롬웰 밑에서 외교 비서관을 지내 그를 오랫동안 보좌했다. 기독교 성격의 서사시인 《실낙원》의 작가로 유명하다. 밀턴은 위대한 예술가 이전에 고난과 인생 역경을 극복한 인생 자체로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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