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는 루앙의 화목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는 20대 초반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킨 후 학업을 중단하고 크루아세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는 그의 일과의 전부가 되었다. 크루아세에 정착한 이듬해인 1845년, 그는 양친과 함께 누이동생의 신혼여행에 동행했다가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성 앙투안의 유혹>을 보았다. 한 성자가 기괴한 형체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당하고 있는 그림이다. 플로베르는 이때 강렬한 미적 충격을 경험하고 같은 주제의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1849년 글을 마친 뒤 친구들을 모아놓고 낭독했을 때, 전부 듣고 난 친구들은 당장 불태우고 다시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그런 황당한 이야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써보라고 충고했다. 낙심한 그는 작가로서 자신의 앞날에 대해 깊은 의혹을 품은 채 친구와 함께 2년간의 동방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에서 그는 작가가 되겠다는 확고한 결심과 함께 <마담 보바리>를 구상해 돌아왔다. 그는 1857년 발표한 <마담 보바리>로 인해 사실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청소년기에 유행했던 낭만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젊은 시절의 그는 평범한 삶과 그에 대한 불만, 권태, 환상, 꿈 등 낭만주의 문학의 모든 주제로 글쓰기를 시도했는데, 이 주제들은 <마담 보바리>에서 <부바르와 페퀴셰>에 이르는 그의 성년기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그는 집필 전의 철저한 조사와 연구, 자연과학자처럼 정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글쓰기에 임해 사실주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꿈과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지는 세계, 범속한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에 일생동안 매료된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런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성 앙투안의 유혹≫이다.
≪성 앙투안의 유혹≫은 3세기 이집트의 중부에서 태어난 기독교 성자 앙투안의 생애를 바탕으로 했다. 당시 이집트의 사막지대에서는 외부 세계와 단절한 채 기도와 명상에 전념하는 '수도원주의'라는 새로운 신앙 방식이 생겨났다. 앙투안은 이 기독교 수도원 제도의 창시자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해 도시를 떠나 아무도 없는 사막으로 들어가 홀로 기도하고 명상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늘 같은 일만 되풀이되는 외롭고 단조로운 일상에 권태를 느끼면서 위험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고독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데다 틈만 나면 옛 기억들이 들끓고 갖가지 망념이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사막은 밤이면 온갖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환상의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성 앙투안의 유혹>은 혼자 수도하는 성자가 하룻밤 동안 겪는 유혹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밤 그가 성경을 읽다가 망상이 시작되고 여자, 금은보화, 진수성찬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환각에 빠져들게 된다. 밤이 깊어 갈수록 환상은 더욱 심해져 과거에 그와 종교적으로 대립했던 인물들, 괴기스러운 형상들, 지금껏 지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신 등이 느닷없이 그 앞에 나타난다. 이 헛것들은 서로 아무 인과관계 없이 나타나서는 그냥 지나가기도 하고, 한바탕 장광설을 늘어놓거나 앙투안과 대화하고 나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떠오르는 여자, 재물, 옛일들은 앙투안이 세상과 절연하고 사막으로 들어가면서 버린 것들이다. 아니, 버렸으나 버리지 못한 것들이다. 그것들이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 숨어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보는 헛것들은 그의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온갖 욕망의 형태들이다. 그는 모든 욕망을 떨쳐 버리고 세상을 떠나 홀로 수행에 힘쓰고 있지만 사막에서의 한결같은 나날은 오히려 그의 욕망 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앙투안의 욕망은 또한 플로베르의 그것이기도 하다. 플로베르는 병으로 인해 모든 욕망을 포기하고 시골로 들어가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되는데, 재기 넘치는 청년에게 이것이 쉬운 일이었을까? 브뤼헐의 그림에서 성자를 괴롭히는 이상야릇한 괴물들을 보았을 때 그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 버린 자신의 욕망의 모습을 보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토록 강렬하게, 그토록 오랫동안 성자 이야기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성 앙투안의 유혹> 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기독교의 성자전에 따르면 앙투안은 잠시 흔들렸으나 결국 유혹을 극복한다. 하지만 플로베르의 성자는 이와 다르다. 플로베르의 앙투안은 육체적· 물질적인 유혹은 물리치지만 다른 것, 특히 지식의 유혹에는 몇 번이나 굴복한다. 그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이는 신과의 합일이나 구원의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6장에서처럼 악마의 등에 올라 하늘을 날 때다. 그는 무한한 공간을 날며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우주의 장관을 보고 감격한다. 또한 7장에서처럼 생명체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일부임을 깨닫고 열광한다. 마지막에 물질과 하나가 되고 싶다고 외치는 앙투안은 모든 것을 알고 싶어졌고, 모든 것이 되고 싶어 했던 작가와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이집트 사막에서 홀로 수행하고 있는 성자 앙투안은 바로 크루아세에 칩거한 채 오로지 문학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꿨던 플로베르다.
<성 앙투안의 유혹>은 앙투안의 독백, 등장인물들과의 대화 혹은 그들의 대사, 방백과 지문 등으로 구성되어 언뜻 희곡처럼 보인다.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플로베르는 극으로 쓸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곡으로 보기에는 모호한 점들이 있고, 작가 또한 상연을 목적으로 글을 쓰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환상극 형식을 취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신비주의를 비롯해 기독교 여명기의 여러 이단, 고대의 종교들, 과거의 우상들이 성자의 유혹자로 등장하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플로베르는 엄청난 독서를 했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가 읽은 수많은 책과 자료가 작품 속으로 녹아 들어가 있어 이 작품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게다가 앙투안 자신도 꿈인지 생시인지 잘 분간하지 못할 만큼 현실과 환상이 경계 없이 뒤섞여 읽기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상상력의 가면무도회"라고 할 만큼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플로베르를 사실주의작가라고 규정하기 어렵게 된다. 플로베르는 친구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성 앙투안의 유혹>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1856년에 한 번 개작 했고, 그리고 다시 한 번 고쳐 쓴 것을 1874년 출판했다. 최초의 구상에서 30년이 흘렀으니 가히 "필생의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세월이 흐른 만큼 젊은 시절의 글과 많이 달라졌다. 1849년의 글에는 작가가 젊은 시절 좋아했던 괴테와 바이런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더구나 "내가 앙투안"이라는 고백처럼 플로베르는 등장인물과 혼연일체가 되어 격정과 흥분 속에서 1년 6개월간 작품 속에 자신을 투영하며 글쓰기에 몰입했다. "예술은 예술가와 조금도 얽히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원칙은 이 작품의 실패(친구들의 평가)에서 얻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글쓰기에 관한 그의 생각이 달라지면서 질풍노도의 행복한 글쓰기는 고통스러운 작업으로 변하게 된다. 이후 그는 한 문장을 쓰고 고치고 다시 쓰며 끊임없이 다듬는 장인으로 변모한다. 이후의 작품들과 간극이 크다는 점에서 첫 판본은 의미가 매우 크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헨리크 입센 '솔하우그 에서의 잔치' (1) | 2022.07.25 |
---|---|
헨리크 입센 '카틸리나' (1) | 2022.07.25 |
존 밀턴 '투사 삼손' (1) | 2022.07.17 |
궈모뤄 '탁문군' (1) | 2022.07.15 |
최정연 '옥녀동' (1) | 2022.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