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헨리크 입센 '카틸리나'

clint 2022. 7. 25. 12:25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Lucius Sergius Catilina, 기원전 108기원전 62)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다. 원로원에 맞서서 로마 공화정을 전복하려 시도한 카틸리나의 모반으로 유명하다. 모반의 실패는 카틸린의 대의명분에 큰 타격이었고, 동료들이 죽거나 떠났고 그는 혁명세력과 도망갔으나 대규모 진압군에 맞서 싸우다 용감하게 전사한다.

집권세력의 카틸린이 죽은 후에도 그의 죄를 매도했고 악인으로 깎아내렸지만 많은 로마 평민들은 여전히 그를 존경하는 인물로 내려온다.

 

 

입센의 첫 희곡 <카틸리나>1850년 그의 나이 스물셋에 출판되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의 사업 실패로 공부도 계속하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 열여섯의 나이부터 스스로 생활을 해결해야 했던 입센의 첫 희곡은 브뤼놀프 바르메(Brynolf Bjarme)라는 필명으로, 그것도 친구들이 출판비를 대신 감당하여 햇빛을 보게 되었다. 겨우 100부 정도 출판된 이 희곡은 그나마도 다 팔리지 않아 나머지는 폐지로 처분해야 했다.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초연은 1881, 입센이 사회문제극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에야 스톡홀름에서 이루어졌으나 성공적이진 못했다. 외국어로의 번역 역시 작품 발표 후 반세기가 지나 독일어본(1896, 1903)과 프랑스어본(1903)이 나왔고, 이제는 한국어본 (2022)이 나오게 되었다.

 

초연 이후, 운문으로 쓰인 이 작품에서 평자들은 운문대사들 중 많은 오류를 찾아냈고 고대 그리스 비극의 모작에 지나지 않는, 극적으로 미숙한 작품이라 평가했다. 그래도 젊은 학생들은 관심을 가졌고 셰익스피어 적인 힘과 진지함이 있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주인공 카틸리나는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의 브루투스와 공통점이 많으며, 카틸리나와 그의 공모자들 간의 장면들과 전투에서 패배한 후 자살하는 카틸리나 등 <줄리어스 시저>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스칸디나비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졌고 당시 입센이 처한 상황 등을 고려해볼 때 노르웨이 작가인 입센은 아마도 독일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 및 덴마크의 서정시인이자 극작가였던 렌 슐레게르(A. G. Oelenschläger, 1779-1850)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국의 대극작가를 알았을 것이다. 로마시대에 실존했던 카틸리나(Lucius Sergius Cathilina, 108-62 BC)는 입센 이전에도 몇몇 극작가들이 극의 소재로 삼았던 인물이다. 벤 존슨(ben Jonson)<캐틸라인, 그의 모반>(Caniline His Conspirag(1611)을 썼고, 실러는 그의 첫 희곡 <군도> (1782)의 서문에서 브루투스나 카틸리나와 같이 특별하고 중요한 인간은 비극적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입센의 당대에도 뒤마 페르(Alexandre Dumas petz)<카틸리나>(1848)를 발표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입센의 당대인들이 이미 카틸리나라는 인물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결국 입센이 카틸리나라는 인물과 작품의 사상을 그간의 작가들과 어떻게 차별화하여 다루 고 있는지가 입센 당대의 독자/관객들에겐 중요했을 것이다입센 자신은 그림스타라는 소도시에서 1844-49년까지 약제사의 조수로 있으면서 의학 공부를 위해 대학에 입학하고자 로마시대의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카틸리나를 알게 되었다. 그가 읽은 몇몇 텍스트들은 대개 역사적 고증 면에서 부실했으나 1848년 유럽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과 그로 인한 혁명적 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입센의 역사의식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했다.

입센이 원재료로 사용한 역사서 카틸리나의 모반에 대하여; 카틸리나의 투쟁에서 카틸리나는 방종하고, 부패하고, 냉정한 인물로 그려져 있었지만 입센은 그를 '혁명아'로 그리고자 했다. 역사 속의 카틸리나는 그의 추종자들이 처형된 후 모반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로마에서 추방당하고 전사한다. 그러나 입센은 이 역사적 사실을 중시하지 않았고 아내가 있는 카틸리나가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진 제녀 푸리아의 손에 죽게 함으로써 작가로서 염세적 인간관과 역사관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시대를 거스르려는 혁명적 성향과 행위는 역사의 발전을 위해 필연적인 것이지만 개인의 혁명성이나 혁명적 행위가 과연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입센은 역사 속한 인물을 통해 질문하고 있다. 입센은 1875년 이 희곡의 2(개정판)의 서문에서 "능력과 소망, 의지와 가능성의 충돌이며 이는 곧 인류와 한 개인의 희극이자 비극"을 그린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 자신의 본명조차 밝히지 못한 첫 극작품에서 입센은 초심자의 단점을 여러 면에서 드러낸다. 그는 무엇보다 극의 짜임에 가장 큰 중요성을 부여한 듯 보인다. 극은 한 마디로 '너무 잘 짜여 있다. 이 때문인지 사건들의 추이에 우연이 많이 끼어들고, 인물들의 내적 변화에 무리가 있으며 인물들의 형상화에서도 흑백논리가 눈에 띈다. 입센 자신도 이 극이 좋은 점도 있지만 미숙한 극작품임을 인정했다.

<카틸리나>를 한국어로 옮긴이로서 이 작품의 미숙한 점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는, 뇌물까지 주면서 집정관 직을 얻으려 하다가 실패한 카틸리나가 대의명분을 갖게 되는 심적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다. 더구나 뇌물을 주기 위해 아내 아우렐리아의 고향 집을 처분한 돈을 빚 때문에 아들이 감옥에 있다는 한 탄원자에게 줘버리는 대목에서도 카틸리나의 감성적 면이 두드러져 대의명분을 가진 인물의 행위로서는 적당해 보이지 않는다. 둘째는, 카틸리나와 그의 양아들 쿠리우스가 푸리아에게 끌려 드는 부분 역시 억지스럽다. 푸리아는 입센이 창조해낸, 마력을 지닌 채 관습을 벗어난 첫 여인상임을 인정하더라도 그 부분에는 사랑을 느껴가는 화학적 변화와 섬세함이 결여되어 있다. 셋째, 주인공의 아내 아우렐리아는 지상의 여성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미화됨으로써 피와 살을 가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거의 '선함'의 상징이며 ''이라는 개념의 의인화처럼 느껴진다. 넷째는, 로마의 젊은 귀족들이 로마를 비판하는 대목에서 '젊음'이 가질 수 있는 정의로움을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개인적 이해관계에만 치중되어 있다. 입센이 이렇게 꾸민 것은 물론 카틸리나의 대의명분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 분명하지만 극의 진행에서 흑백의 그림만이 보일 것 임을 드러낸다.

 

 

미숙한 작품이긴 하지만, 입센 자신도 말하고 있듯 <카틸리나>는 그의 이후 작품들에서 보이는 많은 것들을 선취하고 있어 그가 극작가로서 발전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첫째는, 작품 전체를 흐르는 혁명적, 혹은 반동적 성향이다. 이 성향은 입센이 나중에 <인형의 집>(1877), <민중의 적>(1882) 등과 같은 사회문제극들을 쓰게 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는 입센이 그리는 전형적 여성상들의 등장이다. 입센의 희곡들에 등장하는 주인공급 여성들은 대개 두 범주로 나뉘며 특히 입센 시대에는 현실에서 보기 힘들 만큼 강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즉 선과 악의 메타포로서의 여성들, 혹은 이기적/ 이타적 여성들이다. 이들과 함께 이런 두 여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남성들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로스메르스홀름>(1886)에는 로스메르 목사가 죽은 아내 베아테와 레베카 사이에서,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1896)에서는 한때 은행가였던 보르크만이 옛 연인 엘라와 별거 중인 아내 귀닐 사이에서, 마지막 작품 <우리 죽어 깨어날 때>(1899)의 주인공인 조각가 뤼베크 교수는 한때 자신의 모델이었던 이레네와 현재의 아내 마야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티프가 시작되고 있다는 말이다. 셋째는, '메타연극성'의 선취이다. 아우렐리아의 소망대로 로마를 떠나겠다고 하지만 카틸리나는 로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로마를 떠날 것이라 믿고 있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연극'을 한다. 연극 속의 연극, 즉 메타 연극성은 입센의 여러 작품들에 편재해 있어 그의 현대성을 읽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늙음과 젊음, 즉 과거와 현재에 대한 입센의 관점이다. <카틸리나>에서 주인공과 한 동아리를 이룬 사람 중 카틸리나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사람은 카틸리나 부친의 친구였던 노전사 만리우스뿐이다. 이 노전사는 사사로운 욕망에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대의를 위해 로마의 재건을 꿈꾸며 카틸리나에게 힘을 보탠다. 이에 비해 젊은 귀족들은 예외 없이 매우 비열하고 인격적으로 천박하게 그려져 있다. 젊은 나이에 쓴 첫 작품에서 입센은 흥미롭게도 '늙음' 쪽에 찬성을 보내고 있다. 이건 그의 후기작들에 속하는 <대건축가 솔네스>(1892)에서 젊음에게 자리를 뺏길까 두려워하는 주인공인 솔네스를 통해 섬세하게 다루어진다.

<카틸리나>에서 주인공 카틸리나는 극이 시작되면 곧 로마의 한길에 서 있는 나무에 기대앉아 긴 독백을 한다. 그 독백의 첫 부분은 카틸리나의 것이라기보다 앞으로 극작가로서의 삶을 살겠다며 스스로에게 추동력을 부여하는 입센의 것으로 들린다:

해야 돼! 해야 돼! 내 영혼 속 깊은 곳에서/ 어떤 목소리가 명령하고 있으니 그 명령을 따라야 해./ 지금보다 더 낫고 더 고귀한 삶을 살/ 용기와 힘이 내겐 있어."

입센 자신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조국인 노르웨이가 덴마크의 속국이었다가 스웨덴의 속국인 상황에서 1827년 개관된 크리스티아니아(현재의 오슬로)의 노르웨이 극장에선 주로 덴마크의 순회극단들이 무대를 장악하고 있었고 배우들 역시 덴마크 출신이든 노르웨이 출신이든 모두 덴마크어로 공연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노르웨이 출신의 극작가도 거의 없었고 드라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미숙한 작품이었으나 <카틸리나>는 노르웨이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진지한 희곡이었다.

(Henrik Ib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