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헨리크 입센 '솔하우그 에서의 잔치'

clint 2022. 7. 25. 20:31

 

 

베르겐 노르웨이 극장을 위해 입센이 쓰고 공연된 작품 중 작품성이 가장 뛰어나고, 특히 여주인공 마르기트의 심리변화가 탁월하게 그려졌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 <솔하우그 에서의 잔치>(이하, <솔하우그>)이다. 이 작품은 입센의 극작가로서의 이력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입센의 이름이 붙은 책자 형태로 처음 출판되었으며 노르웨이 이외의 지역에서도 공연된 첫 희곡이기 때문이다. 18561월 베르겐에서의 초연을 필두로 노르웨이 내에서는 토론헤임과 크리스티아니아에서, 1857년 스톡홀름의 왕립극장과 1861년 코펜하겐의 카지노 극장에서 공연됨으로써 입센이 스칸디나비아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891년 오스트리아의 빈 공연에는 후고 볼프 (Hugo Wolf)가 음악을 작곡했고, 1893년에는 스웨덴에서 오페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897년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재공연되었을 때에는 36회의 공연이 이루어졌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솔하우>의 장소적 배경은 마르기트가 안주인으로 있는, 뱅크트의 대저택과 그 주변이며 인물들의 등퇴장으로 장면들이 나뉘는 프랜치 씬의 규칙을 잘 지키고 있다. 극 행위의 시간은 마르기트와 뱅크트의 결혼 3주년 잔치가 벌어지기 직전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하루가 채 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처녀 마르기트는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속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인 뱅크트와 결혼한, 이를테면 부()에 자신을 판 여성이다. 결혼했으면서도 그녀는 어려서부터 사랑했던 사촌오빠 구드문에 대한 감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12년 만에 죄 없는 범법자가 되어 나타난 구드문에게 그녀는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연극'을 하다가 이내 견디기 힘든 자신의 비참한 삶과 그에 대한 연모의 정을 토로한다. 그러나 그녀의 진심은 구드문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왜냐면 그는 이미 자신에 대한 감정으로 비로소 사랑에 눈뜬 너무나 순결한 사촌 여동생, 즉 마르기트의 동생 시그네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아내를 자신의 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소유물로 여기고 있는 뱅크트를 견디기 힘들어하며 마르기트는 독살하려 하는데 그는 왕의 보안관이자 시그네의 구혼자인 크누트에 의해 실수로 살해당한다. 무죄임이 밝혀져 왕에게 봉사할 밝은 미래의 길이 열린 구드문과 동생 시그네에게 마르기트는 극의 마지막에 "삶이란 것이 세속적인 즐거움과 권력 이상"이란

것을 깨달았다며 수녀원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오랜 기간 입센과 문우를 즐기며 많은 조언과 비평을 했던 덴마크의 문학비평가 게오르그 브라네스(G. Brandes)<솔하우그>의 주제가 '운명의 얽힘이라고 했다. 특히 '얽힘'에 강조점을 둔다고 할 때 이 작품은 유감스럽게도 구성에서 허술함을 보인다. 1막과 2막의 구성은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정서 및 상황을 나타내기에 손색이 없지만 마지막 3막에서는 전형적인 'Deux ex machina'의 수법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뱅크트가 살해된 상황에서 갑자기 왕의 사신이 나타나 구드문은 복권되고, 극의 얽힘에 갑자기 끝을 맺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마르키트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구드문과 시그네의 순수한 사랑이 시작됨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권선징악의 교훈을 준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입센은 노르웨이의 중세가 배경인 <외스테로트의 잉게르 부인>을 창작할 당시 그 시대에 대해 공부했다. 그러나 큰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그의 흥미를 끈 것은 도리어 아이슬란드 가문의 전설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가족의 흥망성쇠,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아니 전반적으로 인간들의 만남이 들어있는 이 가족사에서 개인적으로 파란만장하며 진정으로 활력있는 삶을 읽어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입센은 2년 후 창작되는 <헬겔란의 영웅들>의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고, 먼저 창작된 작품이 <솔하우그>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또한 작가가 1852-3년에 출판된 란스타(M B. Landstad)노르웨이 민요를 열심히 연구한 결과이기도 했다. 민요를 연구하며 입센은 무엇보다 민요들의 운문과 음악성에 주목했다. 입센이 드라마의 언어로서 운문을 포기하고 산문인 일상어로 극작하게 되는 것은 1869년 발표된 청년동맹부터이다. 그러므로 솔하우그는 운문으로 쓰였고, 사랑 없는 결혼생활에 대한 마르기트의 비참한 내면은 주로 그녀의 독백으로, 구드문에 대한 연모의 정은 그들의 어린 시절 구드문이 자주 불렀던 노래로 표현된다. 시그네에 대한 구드문의 감정 역시 노래로 표현되고, 잔치에 초대된 손님들로 구성된 코러스가 잔치 분위기를 합창으로 북돋운다. 다시 말해 <솔하우그>는 낭만적 음악, 민요와 노래가 극의 내적 흐름을 드러내도록 쓰였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오페라로 재창조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하다. 입센의 당대인이었던 작가이자 노르웨이의 정치가였던 보른스테르네 뵤른손(B. Bjomson)도 이 작품에서 드라마적 특질보다 음악적 요소가 더 훌륭하다고 보았다.

<솔하우그>는 영국에서 공연된 적은 없으나 입센 번역자인 윌리엄 아처(W. Archer)와 모리스(M. Morison)에 의해 1883년 번역되었고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