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겐 노르웨이 극장에서의 임무가 자신의 지성과 시적 천재성에 어떤 영감도 자극도 주지 못했다고 입센은 생각했지만 거의 6년간의 이 시기 동안 그가 나중에 훌륭한 극작가가 될 수 있는 기초를 다진 건 분명하다. 무엇보다 공연을 위한 기술적 측면들을 터득함으로써 그는 무대 실제와 공연화의 가능성을 알면서 작품을 쓰는 극작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베르겐 시기는 입센에게 있어 진정한 수련기였다고 볼 수 있다.
<헬겔란의 영웅들>은 입센이 베르겐을 떠나기 직전인 1858년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입센의 작품세계에서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고양된 애국주의의 최고봉에 달하며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입센은 편협한 민족적 자긍심이라는 애국주의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둘째는, 이후 입센의 작품들에 나오는 여성들의 특징을 선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극장 언어와 극작술에서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 첨언하자면 입센은 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을 거의 산문으로 썼으며, 또한 그의 뛰어난 극작기법 중 하나로 평가되는 '회상기법'이 어느 정도 대가의 솜씨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876년 독일어 번역본에 붙인 서문에서 입센은 <헬겔란의 영웅들>이 게르만족의 '니벨룽겐의 노래'가 아니라 스칸디나비아의 볼숭가 사가 및 아이슬란드의 여러 사가들에 기초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작가는 사가에 나타나 있는, 실제의 삶에서보다 더 크고 웅장한 사건들을 보다 인간적인 차원으로 축소시켰다. 왜냐면 인간의 세계가 아닌 사가의 세계가 자신의 당대와 맞지 않는 데다 고대에 선조들의 삶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즉 민족의 단결에 대한 열망과 자긍심을 강화하려는 데에 작가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작품이 입센이 베르겐 노르웨이 극장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쓰인 마지막 작품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헬겔란의 영웅들>에서 입센의 관심은 영웅적 인물들을 크기와 무게가 있게 그리기보다는 그들의 심리적 변화를 인간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리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시구르가 이외르디스를 만나게 되는 것을 전면에 드러내며, 그로서 그녀의 묘사에 극의 무게중심이 있다. 이외르디스는 한때 영웅(바이킹)들이었던 시구르와 군나르보다 더 생생하고 강렬하게 그려져 있어 남자 영웅들이 아니라 그녀가 진정한 영웅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외르디스는 이후 헤다 가블레에 이르기까지 입센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강렬한 캐릭터를 지닌 여성 인물들의 효시가 된다. 여러 측면에서 이 작품에는 우연 과 비개연성이 많이 사라지고 긴 독백도 들어있지 않아 무대화를 위한 극작에서 입센은 진일보하고 있다.
<헬겔란의 영웅들>의 원고는 크리스니아니아 극장에서 받아들여졌으나 무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코펜하겐의 왕립극장에서도 사가의 소재가 드라마로 다루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논란이 제기되어 공연이 거부되었다. 결국 입센이 1851년부터 드라마투르크로 작업하던 크리스티아니아 노르웨이 극장에서 그 자신의 연출로 세계 초연되었다. 그 후 1870년대까지 20년 동안 이 작품은 크리스티아니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된 입센의 드라마가 되었고, 이어 트론헤임과 베르겐을 비롯해 노르웨이의 모든 주요 도시 극장들의 레퍼토리에 들어갔다. 1875년에는 코펜하겐의 왕립극장과 스톡홀름의 왕립극장 무대에도 올랐다.
스칸디나비아 이외에서 공연된 입센의 첫 드라마였던 <헬겔란의 영웅들>은 1876년 뮌헨의 호프테아터(궁정극장)에서 독일 초연되었는데 이때 입센은 전해에 세 번째 자의적 망명지인 이 도시에 살고 있어 관극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그는 다섯 번의 커튼콜을 받았을 정도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이후 빈의 국립극장인 부르크테아터와 작가의 두 번째 자의적 망명지였던 드레스덴에서도 공연되었다. 공연 이전 출판된 독일어 번역본은 매진된 것으로 보아 독일이 세계의 어느 곳보다 입센 수용에 열렬했다는 것과 독일인들이 입센을 거의 자신들의 작가로 보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헬겔란의 영웅들>은 영어로는 1890년에야 윌리엄 아처(William Archer)에 의해 번역되었으나 에드먼드 고쓰(Sir Edmund William Gosse)가 펴낸 입센의 희곡 선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또한 입센주의자로 알려진 조지 버나드 쇼의 『입센이즘의 정수』 The Quintessence of Ibsenism(1891)에서는 언급도 되지 않았다. 영국에서의 무대화는 1903년에 이루어졌으며 이때 고든 크레이그의 어머니이자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엘렌 테리가 이외르디스 역을 맡았다. 1928년에는 올드 빅에서도 무대화되었다.
한국에서의 입센 드라마 수용은 일본을 통해 1925년 현철이 <인형의 집>을 무대화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나 <헬겔란의 영웅들>도 상당히 일찍 공연되었다. 1938년 김승구가 번안· 연출하여 <해적>이란 제목으로 무대화되어 개성, 연안, 사리원 등지의 서부지방과 목포, 광주, 대전 등지의 남부지방을 순회하였고 그 사이 부민관에서도 <헤겔란의 해적> 이란 제목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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