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 발레씨는 집에서 만찬을 연다.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그는 여집사와 재혼하기 위해 오랫동안 산간지대의 공장에 가 있는 아들 그레거스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신사들을 초대해 만찬을 여는 것이다. 그레거스의 친구 얄마도 온다. 얄마는 사진사이다. 그레거스와 얄마르는 동창생이면서도 16-7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그레거스는 얄마를 통해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얄마의 아버지 에크달은 퇴역 중위이자 그레거스 아버지 발레와 사업을 동업했던 사이였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에크달은 파산하고 감옥에 갔던 것이다.
에크달 네가 그런 형편이 되었을 때 발레는 얄마를 챙겨 사진기술도 배우게 하고 사진관도 차려주고 장가도 보내주었다. 얄마는 그레거스의 아버지 발레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레거스의 입장에서는 이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었다. 왜냐면 얄마가 결혼한 여자 기나는 한때 그레거스네 집에서 일하던 하녀였고 아버지와 하녀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어머니가 병들어 돌아가신 것이었으며 그 이후로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던 것이다.
그레거스는 본디 정의주의자로서 '이상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선동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와 결별하고 얄마의 사진관을 찾아온다. 얄마는 기나와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더욱이 외동딸 헤드빅은 14살 소녀로 총명하게 잘 자라고 있다. 얄마는 헤드빅을 무척 사랑하는데 아이가 곧 시력을 잃게 되는 유전병에 걸렸음을 안타까워한다. 얄마는 아래층에 사는 의사 렐링에게 권유받아 사진기에 대한 발명에 몰두하고 있기도 하다. 또 아버지 에크달도 모시고 사는데 에크달은 아직도 발레씨 집에 가서 필사를 해주며 푼돈을 얻는 중이다. 에크달씨는 커다란 창고를 가졌는데 거기엔 각종 새와 토끼를 키우고 또 들오리까지 얻어왔던 것이다. 들오리는 발레씨가 사냥으로 잡았지만 이내 버린 것을 에크달씨가 데려왔고 어린 헤드빅이 자신의 소유로 무척 아끼고 있다.
얄마를 찾아온 그레거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말해준다. 얄마는 기나에게 왜 과거를 숨겼냐고 몰아세우며 헤드빅 또한 자신의 혈육이 아닐 거라 의심한다.
그는 집을 나서려고 짐을 싸지만, 또 선뜻 그럴 용기가 없기도 하다. 의사 렐링씨가 그레거스를 찾아와 비난한다. 인간은 '이상의 요구'로 살 수가 없기에 자신은 '인생의 거짓' 이란 주사를 놔주고 있다고 말한다. 얄마르에게 발명에 몰두하라고 부추긴 것도 발명에 몰두하는 순간만큼 얄마르가 행복했던 시간이 없단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헤드빅은 아버지 얄마가 어머니와 언성을 높이고 가출하려는 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들오리를 죽임으로써 아버지에게 애정을 보여주려고 권총을 집어든다.
그녀가 창고에 들어가고 총성이 나는데....
뒤늦게 사람들이 들어가 보니 총알은 들오리가 아닌 헤드빅의 가슴에 관통했음을 보게 된다. 그 자리에서 즉사한 헤드빅의 시신을 옮기며 그레거스는 평범한 사람이 진실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진실만을 전하려 했던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헨릭 입센의 <들오리>는 1884년 쓰인 작품으로, 평범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진실에 대한 검증, 모럴리스트(16세기부터 18세기 프랑스에서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법을 탐구해 이것을 수필이나 단편적인 글로 표현한 문필가)적인 날카로운 자기비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들오리>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어둡게 인식될 수 있지만, 대사와 인물에 집중하면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인 복합적 연극예술 장르를 경험할 수 있다.
두 집안의 대조적인 부유와 가난, 진실과 거짓, 불완전함, 허황된 꿈과 지나친 이상주의 그리고 순수함과 사랑의 희생을 다양한 캐릭터의 현실과 비현실 속의 인물들이 그려내는 이 작품을 통해 허상 속을 살아가는 우리를 반추함과 더불어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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