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에드워드 본드 '리어'

clint 2022. 5. 20. 18:59

 

 

이건 왕의 명령이다! 성벽을 쌓아! 저들이 나를 우습게 알고 있어.”

아버지는 미쳤어

성벽이 백성들을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왕 리어리어의 성벽 건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리어의 딸 보디스와 폰타넬. 그녀들은 리어의 적 노스 공작과 콘월공작과 결혼하여 그들 모두를 죽이고 각자 권력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결국 아비와 딸들의 대립은 치열한 전쟁으로 치닫게 되고, 전쟁에서 패배한 리어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보디스와 폰타넬은 리어의 신하 워링턴에게 모진 고문을 행하고 입막음을 위해 혀를 뽑아버린다. 성에서 겨우 탈출한 워링턴은 숨어있던 리어를 찾아 주시하는데, 그의 손에 칼이 쥐어져 있고

아니야, 아니야, 저건 왕이 아니야

광인은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재판장. 보디스와 폰타넬은 남편들을 잡아들이고 리어왕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보디스가 리어에게 거울을 쥐어주자, 비로소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본 리어는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사형 집행을 위해 죄수들과 함께 호송중이던 리어는, 다시 코딜리아의 반란군에 의해 본부로 끌려온다. 반란군은 이미 잡혀 있는 폰타넬과 보디스를 차례로 사살하고 딸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리어는 미쳐가는데……

짐승들의 자비에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순 없어요

성벽이 너희를 전몰시킬거야

한 삽만 더

리어는 유령(청년)의 옛집에서, 많은 이방인을 상대로 자신의 정의로움을 강변하며 또 다른

울타리를 만들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코딜리아가 리어를 찾아온다. 리어는 과거의 자신의 과오를 들먹거리며 성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코딜리아는 새로운 삶을 창조하고자 성벽을 쌓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모든 집회를 금지시켜 버리고, 리어는 또 다시 홀로 남게 된다. 그리고 암살당한다.

 

 

에드워드 본드의 1971년 초연 작품『리어』를 통해 관객들의 인식변화와 새로운 현실 창조를 항상 주장해왔던 본드가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광기’ 개념과 ‘극단적 무지의 자아’ 개념을 적용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본드는 셰익스피어의 『리어』가 기존의 분석대로는 더 이상 현대에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리어’를 창조한다. 자신이 과거의 ‘신화’에 사로잡혀 ‘사회적 광기’에 휩싸인 존재임을 인식하지 못하던 리어는 두 딸들, 보디스와 폰타넬의 반란을 겪으면서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해왔던 ‘극단적 무지의 자아’와 조우하게 된다. 억압받는 존재를 대변하는 ‘코델리아’의 혁명마저 리어가 계승한 신화의 눈멀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신화를 그대로 계승하는 암울한 현실은 그로 하여금 처절하지만 강렬한 ‘영웅적 액션’에 돌입하도록 만든다. 사회가 주입한 문화의 형태로 계승된 거짓된 ‘신화’에서 벗어나 부패한 극단적 무지의 자아, 즉 ‘사회적 자아’를 인식하고 초기 상태의 순수했던 ‘극단적 무지의 자아’를 회복한 리어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불행의 고리를 끊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한다. 본드의 『리어』의 특징은 리어가 자신의 ‘사회적 광기’를 깨닫고 ‘극단적 무지의 자아’를 찾아가는 전체의 과정을 관객들의 ‘부패한 극단적 무지의 자아’를 깨우는 일에 집중시킨다는 점이다.

 

 

본드는 초기부터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위기의 심각성을 폭력 현상 속에서 인지하고 이런 위기의식을 희곡으로 형상화했다. 1978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를 거두자 영국의 정치적 분위기는 급변하였고, 정치 사회극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도 사라진 후에도 본드는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지속적으로 모색했다. 본드의 관점은 폭력 현상 자체를 대상화해서 바라보고 폭력의 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으며, 전쟁을 도덕의 옹호라는 명분하에 살육 행위를 자행하는 집단 광기의 표출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비판은 극작 행위의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게 된다.

본드는 당시 독일의 급진적이고 교훈적인 희곡의 경향을 대변하는 브레히트식(Bertolt Brecht, 1898-1956)의 연극에 충실하였다. 그러나 본드는 브레히트처럼 관객을 정서적으로 교화시키기위해, 그와는 조금 달리 이전 독일의 혁명적 극작가 뷔히너(Georg Büchner, 1813-1837)와 베데킨트(Frank Wedekind, 1864-1918)와 같이, 하층계급이 사회구조적으로 짊어지게 된 분노와 폭력과 범죄와 광기를 정서적, 심리적으로 적나라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집중하였다. 그의 작품은 정치 사회적 폭력의 역학 관계에 주목하는 가운데, 사회악의 원인을 집권자의 도덕성 상실로 인한 비이성적인 행위에서 찾고 그 해결의 전망 또한 집권자의 도덕적 각성과 그 실천에 두고 있다.

본드의 작품은 사회의 병폐를 일관되게 다루면서도 주제를 극적 형식과 효과적으로 결합시켜 예술적으로 승화 시켰다는데 의의가 있다. 집필 초기에는 폭력 묘사 자체에 탐닉하는 Sadist로 혹평 받기도 했고, 충격적인 시각효과, 잔혹한 묘사 등을 즐기는 부도덕한 작가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북쪽으로의 좁은 길>이 발표된 이후 그의 작품들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폭력이라는 주제를 극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 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예술적 감수성을 파악해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들어서 브루스타인은 현대 영국의 극에 대해 무엇을 쓸 것이냐는 주제적 측면 보다 어떻게 쓸 것이냐하는 기법 측면의 성찰이 필요함을 지적하는 가운데 본드를 극적 상상력과 스타일을 겸비한 오늘날 영국 극계의 탁월한 존재로 인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간을 단순한 상황적 존재로만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 속에서 책임 있는 행위를 요구받고 있는 주체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Bond는 극히 비판적인 사회체제 안에서 비인간화에 항변하는 개인의 투쟁을 통하여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비젼을 제시한다. 자아인식이라는 각성의 결과를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사회적 행위의 가능성을 보게 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본드(Edward Bond, 1934~)

사회주의 극작가로 1960년대 영국연극의 흐름을 주도했다. 예술을 통해 사회개혁을 시도하며, 극장이 가진 변혁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대표작으로는 <구원된 사람들(1965)>, <이른 아침(1968)>, <북쪽으로의 좁은 길(1968)>, <리어(1970)>, <바다(1973)>, <빙고(1974)>,<바보(1975)>, <여자(1978)>, <세상(1979)>,

<부흥(1981)>, <여름(1982)>, <전쟁놀이(198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