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무라카미 하루키, 프랭크 갈라티 각색 '해변의 카프카'

clint 2022. 5. 26. 07:24

 

 

 

무대나 진행되는 이야기에는 초현실적인 요소가 짙게 배어 있다. 꿈속 광경 같은 분위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이해가 쉽지 않으면서도 화려한 색조의 어린이 대상 판타지라면 '해변의 카프카'는 난해하고 음산한 빛깔의 성인용 판타지라고나 할까? 이 작품의 매력은 판타지로 포장되어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우리 삶 속의 모습, 사랑· 절망· 폭력성· 광기· 상실감· 방황 등이 그대로 녹아있다는 점에 있다. 꿈 같지만 현실이다.

 

 

내용은 두 개의 축으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세계에서 제일 거친 소년이 되는 것이 꿈인 15세 나이 카프카의 여정. 다른 하나는 고양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노인 나카타의 이야기다. 카프카는 아버지로부터 "넌 언젠가 네 애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관계를 맺게 될 거다. 누나하고도"라는 저주를 듣고 자란다. 그 저주를 피하기 위해 집에서 뛰쳐나간 카프카는 방황의 여정에서 자신이 네 살 때 가출했다고 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모습을 조우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미용사 사쿠라와 젊은 시절 사랑하던 남자를 잃고 그림자의 절반만을 지닌 채 살고 있는 도서관 관장 사에키다. 그리스 비극 속의 오이디푸스왕 이야기가 모티프가 됐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사뭇 다르다.

지적능력과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카타의 여정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펼쳐진다. 그는 실종된 고양이를 찾는 과정에서 고양이를 죽여 영혼을 모으는 조니 워커를 맞닥뜨린다. 또 삐끼 노릇을 하며 다른 극중 인물인 호시노에게 여자를 대주면서 나카타가 찾는 미궁의 문에 대해 뭔가를 아는 듯한 커넬 샌더스를 만나기도 한다. 나카타는 자신을 없애달라는 조니 워커의 요구를 거부하나 결국 무의식적으로 죽이고 만다. 그 후 제발로 경찰서에 가 자신이 살인했다고 신고하지만 경찰관은 실성한 사람 취급을 한다이들 두 개 축 이야기 속의 이미지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 내면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 보인다. 조니 워커가 자신을 죽여달라는 것처럼 카프카의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라는 희망을 나타내는 대목이 있다. 카프카와 나카타의 양쪽 이야기 속에 모두 강한 성적 충동의 이미지가 있다.

두 개 축의 이야기 주변부에서 장면들 사이에 끼어드는 다른 작은 에피소드들도 모두 큰 흐름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 아이들을 인솔하고 숲속에 갔던 여교사는 우발적으로 성적 수치심이 솟구치면서 자신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어린이를 때린다. 맞은 어린이가 나카타였다는 사실은 뒤에 드러난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에게는 그리 쉽지 않은 작품이다. 수수께끼 같은 장면들이 많다. 카프카 외에 카프카의 내면인 까마귀로 불리는 소년이 등장하는 것도 익숙지 않다. '카프카'는 체코 말로 '까마귀'를 뜻하며 작품에서는 '길 잃은 까마귀'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대사 중에는 카프카가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책을 즐겨 읽는다는 대목도 나온다.

알쏭달쏭한 장면들이 많지만 작품 속에 명확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후반부에 내용과 무대형식에서 뚜렷이 부각되고 있는 이미지는 미궁이다. 그만큼 원작 소설을 읽었다 하더라도 작품 속의 모든 장면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한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은 여러 번 읽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수수께끼 같은 장면들을 곱씹어보는 재미가 있다. 안 나오는 답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 논리적 호소력은 없지만 현실 세계의 어두운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면서 장면들의 흡인력이 매우 높다.

카프카는 사쿠라와 사에키 등 두 여자와의 만남 이후 가출했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극에서 카프카의 얘기만 떼어놓고 생각하면 일종의 성장통을 겪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카타가 만난 조니 워커나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의 창업자 커넬 샌더스의 이미지는 서구 자본주의 폐해에 대한 비아냥거림 같은 느낌으로도 다가온다. 여기에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전쟁의 광폭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이 인간성의 파괴 상황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소설과 대본의 차이

주인공인 카프카의 경우 원작 소설에서는 실손 가정에서 아버지의 저주를 듣고 자란 소년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깊은, 그래서인지 무의식 속에 폭력성은 간직하고 있으며 어머니와 누나 또래의 여성을 보면 늘 어머니와 누나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고 성적 충동이 매우 강렬한 특성으로 그려져 있다. 카프카는 고무라 도서관의 게스트 등에서 소녀의 유령을 본 적 창가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해, 강에 대해 조수에 대해, 숲에 대해, 용솟음치는 문에 대해, 비에 대해, 벼락에 대해, 바위에 대해, 그림자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모두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세계에서 사에키를 만난 후. 숱한 장소에 내리는 비, 즉 숲속에 내리는 비, 바다 위에 내리는 비, 고속도로 위에 내리는 비, 도서관 지붕 위에 내리는 비, 그리고 세계의 맨 끝에 내리는 비를 생각하는 소년이 된다. 그의 생각의 크기가 작아진 것이다. 앞에서는 그야말로 우주 만물에 대해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매우 구체적인 현실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소년 카프카가 삶의 이런 정거장은 거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 세계의 일부가 되는, 즉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시마의 경우도 원작 소설에 비해 크기가 작다. 원작 소설에서 그는 호시노에게까지도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대본에서는 오직 카프카의 조력자로 그에게 여러 가지 것을 가르쳐주는 인물로만 등장한다. 크기가 작아진 대신 캐릭터가 보다 선명해진 점도 있다.

나카타는 고양이들과 말을 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 누구보다도 예절이 발라 만나는 모든 고양이,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역시 무의식 속에 폭력 성과 잔인함을 숨기고 있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호시노의 경우 원작에서는 "몸집이 작고 바싹 말라서 싸움을 잘할 것 같이는 보이지 않지만, 힘은 센 편이고 "게다가 한번 성질이 나면 도무시 자제할 수가 없고, 눈에 광기가 어리기 때문에 실제로 싸움을 하게 되면 상대는 대개 주눅이 들게 하는 인물이지만 각색본에서는 할아버지를 많이 기억하며 나카타를 돕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캐릭터로 축소되어 있다.

사에키는 두 버전 모두에서 과거의 행적을 적어도 다카마쓰를 떠나 있었던 시간 동안의 행적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여인으로 등장한다. 그녀가 정말 다무라 카프카의 어머니인지 아닌지도 명쾌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이 불분명함이 어쩌면 더욱 극적인지도 모른다. 모성의 부재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소년 카프카가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요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쓰카와 미미로 대변되는 고양이들은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고 인간보다 더 지혜롭고 사리 판단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