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제국주의가 한창 번성할 무렵, 영국 군대는 아일랜드의 지도에 나타나는 지명을 영어식으로 바꾸는 작업을 위해 아일랜드에 왔다. (아일랜드는 원래 영어가 아닌 아일랜드 고유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 '게일어'라 하는데 이것을 굳이 영어로 바꾸는 이유는 그래야만 통치에 원활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인 베일리 벡에는 휴 교장이 가르치는 노천학교가 있다. 이 노천학교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는데, 여기서 메어는 노천학교의 학생이며 욜랜드는 어쩌다가 영국군에 입대한 중위이며 휴의 작은 아들인 오웬과 함께 지명 개명 작업을 진행 중에 메어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욜랜드는 영국군에 대항하는 누군가에 의해(극에서는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살해되고 이를 알게 된 영국군의 랜시 대위는 이 실종에 대해 어떤 정보가 주어지지 않으면 48시간 이내에 모든 집을 부수고 주민들을 쫓아내겠다는 엄포를 놓는다.
『번역』이라는 극 제목에 함축된 여러 차원의 '번역'의 의미를 고려하면, 우선 이 극은 프리엘에게 언어적 관점을 융합할 수 있는 이론적 서술을 제공한 학술 텍스트인 조지 슈타이너의 『바벨 이후』에서의 주요 개념, 특히 언어와 번역에 관한 추상관념을 그 특유의 창조력으로 극의 형태로 번역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이 극에서 모든 인물과 장면들은 어떤 의미에서건, 일종의 '번역'과 연관된다. 노천학교 교장인 휴는 계속 그의 제자들에게 희랍어나 라틴어를 게일어로 번역하도록 요구하고, 지미 잭은 고전 희랍어 작품을 게일어로 번역한다. 오웬은 랜시의 영어를 게일어로 번역하거나, 반대로 아일랜드의 게일어 지명을 욜랜드에게 영어로 번역해준다. 이러한 언어적인 번역 외에도, 랜시와 욜랜드가 만드는 새 지도는, 랜시의 표현을 빌면 “종이에다 이 나라를 표현" 해놓은 그림, 즉 "종이에다 풍경을 번역"한 것이다. 사실 번역에 대한 사고, 특히 『바벨 이후』에 대한 프리엘의 이해는 단지 번역에서 뿐만 아니라 그 극을 완성한 1980년을 전후한 그의 다른 극들, 예컨대 「비상 통보용 줄』(The Communication Cord)(1982), 『역사 만들기』, 그리고 『루나자 축제에 춤을』 등의 작품을 조명하는 중심 개념이 된다. 특히 『번역』에서 번역의 개념은 가장 논리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으며, 가장 직접적인 구심점을 이룬다.
프리엘은 「번역」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집단의 사람들, 즉 게일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영국 군인들과, 대부분 영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벨리벡 주민들을 제시하여, 이 두 집단의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탐구한다. 극 중 영국인과 벨리 백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두 민족 간의 정치적인 문제이기보다는, "모든 의사소통은 번역을 내포한다"는 슈타이너의 언어적 인식론을 반영하고 있다. 프리엘은 이 극에서 등장인물들이 각자 게일어와 영어로 말하는 상황에서, 극의 대사를 두 언어로 재현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언어인 영어로만 재현하는 극적장치를 사용한다. 하나의 언어로써 두개의 언어를 재현하는 이러한 기발한 전개는 언어장벽으로 인해 서로 소외되는 두 집단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사실 아일랜드인과 영국인이라는 두 민족이 이 극에서 표면적으로는 동일한 언어, 즉 영어라는 같은 매체를 통해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 매우 다른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중 인물인 휴가 메어(Maire)에게 회의적으로 말하는 대사에 투영되어 있다. 번역이라는 것이 결코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언어와 문화에서 다른 언어와 문화로 번역하는 어려움의 문제가 발생한다. 원어의 충실성은 항상 상실된다. 오웬이 욜랜드와 함께 게일어 지명을 영어로 바꾸는 장면에서도, 장소 이름의 명확한 의미를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그 불가능성이 노출된다. 그들은 게일어로 문자 그대로 "강어귀"를 뜻하는 “분 나 하반"(Bunna habhann)이라는 지명을 고심 끝에 번풋(Burnfoot)이라는 새로운 영어 지명으로 개명하게 되나, 그 이름은 두 언어 중 그 어느 것과도 무관한 이름일 뿐이다. 이러한 지명 개명 작업을 통해 프리엘은 새로운 이름을 지을 때, 의미 번역은 항상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즉 다른 언어로의 번역이라는 것이 영국 또는 아일랜드 양쪽의 문화 중 어느 한 문화도 아닌 혼합적인 새로운 총체를 양산할 뿐임을 예시해준다. 그러므로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개인 영혼의 은밀한 곳뿐이다. 그것은 결코 게일어로도, 영어로도 충분히 표현되어질 수 없다.
『번역』에서 번역에 관한 주요 문제들은 1막에서 오웬이 6년 만에 영국 육지 측량부 소속 군인들의 민간 통역사로 고용되어 고향 마을 빌리 벡으로 귀향했을 때 대두된다. 아일랜드의 지도를 "표준화되고, “영어식으로 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오웬의 번역과 아일랜드 지명의 개명과정에는 여러 종류의 번역들, 즉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번역,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의 번역, 그리고 게일족의 과거로부터 영어화 된 미래로의 번역 등의 다양한 번역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오웬은 책임자 랜시 대위의 지도 제작에 관한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벨리 벡 주민들에게 게일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랜시가 공표하는 영국의 군사적 목적 및 세금 착취의 목적을 은폐하기 위해 생략과 축약을 통한 선택적인 번역을 한다. 그는 랜시 대위의 공표 가운데 악의가 함축된 의미를 은폐함으로써 고의적으로 부정확한 번역을 한다. 오웬은 지역민들의 우려를 야기시킬 것으로 판단되는 부분을 고의적으로 생략한 채 통역한다.
오웬의 번역은, ”거짓말과 은폐"의 개념, 즉 진의를 숨기고 감추려는 "언어의 힘"을 표현한다. 실로 “인간의 담화 중 극소량 부분만이 절대적인 의미에서 진실된 것이며, 정보를 제공"해준다. 랜시의 공식 발표에서 "잔인한 군사 작전"을 간파한 메너스가 오웬의 잘못된 번역을 질책할 때, 오웬이 “의미의 불확실성은 시의 시작"이라며 논의의 초점을 피해 얼버무려 말하는 것은, 그가 그의 형과의 대화에서조차 의사소통보다는 은폐하고 피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를 지녔음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번역'의 또 다른 유형은 서로 언어가 다른 욜랜드와 메어가 사적인 감정을 의사 소통하는 사랑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함께 춤을 추고 난 후, 두 사람은 비록 상대방의 언어를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편의 언어로 서로의 이름과 상대방의 고국의 지명을 열거함으로써 의사소통의 언어를 찾아낸다. 이로써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그럭저럭 전달하여, 언어장벽을 뛰어넘어 서로의 욕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각자 다른 언어로 말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으로 인한 명확성의 결여, 즉 번역이 갖는 의사소통의 한계는 그들이 둘 다 각자의 언어로 “언제나"라는 말로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그들 둘 다 모두 상대방의 간절한 맹세를 이해하지 못하며 그러한 맹세는 이 극에서 결코 실현되지도 않는다. 욜랜드는 의혹스럽게 행방불명되며, 수심에 잠긴 메어는 미국으로 이민갈 결심을 한다. 이 사랑 장면은 서로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하여,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욜랜드와 메어의 시도를 통해 “서로가 의사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씀으로써 서로간에 도달하려는 두 문화의 이상을 제시함과 동시에, 이렇게 순진하고 낭만적인 이상은 좀처럼 달성될 수 없다는 "문화간 번역"의 한계라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아일랜드 문화와 사회로 동화하려는 욜랜드는 아일랜드에 남기 위해 '아일랜드어'를 배운다 할지라도 자신이 항상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한다. 그는 아일랜드 종족의 언어의 "암호"를 배운다하더라도, 그들의 "개인의 은밀한 마음속은 항상...비밀스럽게 은폐된 채로 의례 남아있을" 것이라며 자신이 그들과 결코 동화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욜랜드는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의 문화적 분할을 명시해준다.
프리엘은 게일족 문화의 파멸을 극화할 때, 파괴자들의 언어인 영어를 이용한다. 프리엘은 이 극에서 19세기말 아일랜드 문에부흥기의 아일랜드 작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 자신의 과거를 게임이 아닌 영어로 전유하였다. 프리엘 자신이 "이 극의 근본적인 아이러니는 이 극이 아일랜드어로 쓰여졌어야만 했다는 사실이라고 밝힌 바 있듯이, 프리엘은 정복자의 언어인 영어의 지배권이라는 숙명적인 필연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수용하고 공유한다. 프리엘은 영어와 영문학으로 교육받고 있는 아일랜드인들에 대해 “이것으로부터의 탈출의 가능성은 없다. 우리는 이것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예이츠나 씽이 그러했듯이 『번역』에서 프리엘은 자신의 과거, 즉 고대 아일랜드 언어와 문화를 현재로 번역함으로써 과거를 전유하여 아일랜드의 역사, 문학, 그리고 문화를 독창적으로 보존한다. 프리엘은 이 극을 통해 변화된 정치적, 역사적 발화의 현장이 식민지 유산의 의미들을 미래의 자유로운 국민의 해방의 표시로 변형한 것을 보여준 셈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프리엘은 언어를 사용하여 아일랜드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고, 동시에 언어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의 정치적 행동에 대한 명상적인 대안을 제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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