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곽노흥 '아름다운 침묵'

clint 2018. 3. 25. 10:37

 

 

소외와 소외의 만남은 한을 만들어 내고 파괴를 조장할 수 있지만 〈아름다운 침묵〉은 용서와 화해만이 소외를 극복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아름다운 침묵〉의 의미는 좀 다르다. 강요된 침묵. 청각 장애인들의 침묵에는 저마다 껴안고 살아야 하는 애달픈 사연이 담겨 있다.
‘아름다운 침묵’ 때문에 주인공 도희의 삶은 두 번 바뀐다. 출발은 비극적이다. 청각 장애인이었던 도희 어머니는 그의 아름다운 침묵을 소유하려 한 도희 아버지에게 순결을 빼앗긴다. 같은 청각 장애인이었던 약혼자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도희 어머니는 도희를 낳고 자살한다. 많은 청각 장애인들이 그렇듯이 도희의 침묵에도 그늘이 서려 있다. 그러나 도희의 인생은 또한 아름다운 침묵 덕분에 새롭게 태어난다. 자신의 아름다운 침묵을 사랑한 승우를 인생의 동반자로 맞아들이게 된 것이다. 똑같이 침묵에 아름다움을 느꼈어도 도희 아버지는 대상을 ‘소유’하려 했고, 승우는 ‘동정’으로 승화시켰다. 동정(同情)이란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길 때만 가능한 감정으로, 자기 도취적인 연민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승우는 그래서 수화를 배우고 도희도 적극 외조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변 - 곽노흥

"아름다운 침묵"은 청각장애인을 소새로 한 나의 두 번째 창작품이다. 특정 장애인을 소재로 한 희곡을 창작하기가 무척 부담스러웠다. 공연상의 문제 (수화, 구화)로 전문극단이 아니면 일회성으로 사장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지만 나는 이 작품과 몇 해 전에 발표한 침묵의 강을 가장 뜻 있고 보람 있는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든지 못하는 아픔, 차라리 저들은 그 아픔조차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장애인을 보고 안쓰러워하고 등장하는 것은 오히려 저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상인들의 위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들의 심금을 울려주지 못하는 작품으로 저들 세계의 변죽만 울리는데 그쳤다면 나도 예외 없이 저들의 지탄을 받아야할 것이다.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저들의 말을 하고자 하는 노력이 얼마만큼이며, 저들은 정상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침묵을 아름답다고 말한 것이 저들에게 합당한 표현인지... 우선 우리는 저들과 더불어 사는 세계임을 강조해줘야 할 것 같다. 하나의 생명을 안고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인본주의 사람 말고 그 무슨 존재가 존엄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사람만이 으뜸이요. 중심이요. 최고의 존재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장애인도 우리의 친구며 이웃이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적 존재인 것이다.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발레리나를 꿈꾸는 사람들과 그들을 돕고 자기 희생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를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 아닐런지... 우리에게 관념의 고정된 틀은 장애자들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누구나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범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우리 주변에 소외된 저들을 포용하고 거둬들일 때 진정한 사람이 사는 사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쪼록 장애인의 뼈아픈 삶과 애환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 오랫동안 연기에 몰입해준 배우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작가 곽노흥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회장 한국희곡작가협회 이사 극단 제 3무대 대표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예술과 교수

수상: 가톨릭영상대상 수상. CBS방송문학상 수상 한국희곡문학상 수상 크리스천문학상 수상. KBS무대 및 희곡작품 활동 중 

작품: 차이코프스키를 위한 변주곡 침묵의 강 아름다운침묵 하늘의 울림 그래도달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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