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3년 출간된 '마리안의 변덕'은 1851년 뮈세 생전에 코메디 프랑세즈의 무대에 올랐던 마지막 작품이었으나, 대폭 수정을 겪어야 했다. 193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833년 판본에 의거하여 가스통 바티가 몽파르나스 극장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이후 장 빌라르, 장 피에르 뱅상, 랑베르 윌손 등 대가들의 연출에 의해 재해석되는 프랑스 연극계의 주요 공연작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20세기의 연출가들이 이 작품에 끌린 이유는 역설적으로 19세기에 이 작품이 상연 불가하다고 판단하게 한 요소들 때문이었다. 불연속적인 이야기, 공간의 분할, 등장인물들의 현대성은 아직 17세기 고전극의 미학이 지배하고 있던 19세기 프랑스 연극계가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리안의 변덕〉은 한편으로는 17세기 이래 프랑스 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이탈리아의 즉흥 가면극인 코메디아 델 아르테의 전통을 이어 받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17세기 이래 프랑스에 소개되어 뮈세의 모델이 되기도 한 셰익스피어극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19세기 전반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염세주의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프랑스 낭만주의 극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은 빅토르 위고로서, 그의 〈크롬웰 서문〉에서 고전극에서와 같이 희극과 비극으로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장르의 혼합을 시도하는 낭만주의 극이야 말로 숭고와 그로테스크를 공히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총체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위고가 시도한 장르의 혼합이 미완성의 단계에 머물렀다면, 셰익스피어 극에 정통한 뮈세에 이르러 장르의 혼합이 완성되었다. 〈마리안의 변덕〉에서도 단지 희극적 요소와 비극적 요소가 교대로 나오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이 두 가지 요소가 밀접히 연관되어 전체적으로 멜랑콜리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셀리오와 그의 어머니 에르미아를 제외하고는 다 코메디아 델라르테나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볼 수 있는 희극적 인물들이다. 극적 상황 자체도 라비슈 류의 보드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적 오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마리안과 옥타브의 말싸움 또한 보드빌 적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런 셀리오의 죽음은 모든 것을 비극적 멜랑콜리의 분위기로 뒤덮어 버리며,〈마리안의 변덕〉은 뮈세의 극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비관적인 성격의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뮈세의 극작품에는 일관되게 제기되는 근본적인 주제가 있다. 필립 방티겜은 이를 윤리적 측면에서 악덕과 순수의 대립으로 보았고, 앙리 르페브르는 이념적 측면에서 개인과 사회의 갈등으로 보았다. 베르나르 마송도 상황과 줄거리는 다양하지만 뮈세는 작품마다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정체성을 찾으려 애쓰는 청년이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타인과 소통하는데 겪는 어려움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관점에서 보건 공통적으로 청춘기를 위기의 순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작품마다 뮈세의 분신이라 할 청춘남녀들이 등장하여 유년기에서 성년기로 이행하는 과정을 재현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리안의 변덕〉의 진정한 주제도, 마송의 표현을 빌자면, 청년기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어려운 이행과정이라고 하겠다. 〈마리안의 변덕〉에서는 청춘기란 시간대에 속한 등장인물들과 성인세대란 시간대에 속한 등장인물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리듬이 극 전개를 이끌어 나가며, 여기에 다시 자기만의 개인적 시간대에 침잠한 등장인물과 사회적 시간대가 짜놓은 리듬에 충실하려 하는 등장인물들이 대비되면서 빚어내는 리듬도 한몫을 하게 된다. 자아정체성의 추구라는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영원한 문제도 결국은 어느 시간 속에 자리 잡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이 되기 때문에 〈마리안의 변덕〉에서는 시간 자체가 테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뮈세의 극작품에서 특기할 점은 공간의 분열이 여러 다른 시간대의 충돌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한 무대 위에 복수의 공간이 공존하게 되면 동시에 다른 복수의 시간대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위세의 극작품에서는 각 등장인물마다 겪는 서로 다른 시간의 경험이 공간분열의 시초가 되기도 한다.
〈마리안의 변덕〉의 1막 1장에서 볼 수 있는 사건의 전개 양상은 대번에 늙은 남편과 결혼한 젊은 유부녀를 사모하는 청년을 등장시킴으로써 지극히 상투적인 출발을 보인다. 클로디오는 사회적 억압의 상징으로 젊은이들의 진실 되고 자유로운 감정의 발산을 억누르며 사회의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기존질서의 수호자이자 관습과 위선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청춘 세대와 성인 세대 간의 갈등 또한 단순히 세대 간 갈등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함의가 충만한 문제가 된다. 남편이라는 장애를 넘고서 사랑하는 여인을 쟁취해야 하는 셀리오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라면 그러하듯이 전형적인 행위의 주체가 될 소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셀리오의 행위는 늘 협조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세레나데를 부르는 대신에 악사들을 고용한다던가, 스스로 말을 걸기 보다는 치우타를 통하여 전갈을 보낸다던가, 그리고 꾀 많은 하인 아를르캥의 복장을 하고 있는 친구 옥타브의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러한 점이 단지 셀리오의 소심한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다. 셀리오의 현실 접촉에는 늘 매개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셀리오는 공간은 타인과 공유하되 혼자 다른 시간대에 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셀리오의 이러한 처지는 불행한 경우가 될 것 같지만 오히려 셀리오는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것은 셀리오가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타락한 사회로 보고 그 속에 뿌리내리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는 기사도 연애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스스로를 설정하고 이야기 속의 시간으로부터 나오기를 거부한다. 역설적이지만 옥타브의 배신은 오히려 셀리오를 이야기 속의 주인공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클로디오의 하수인에 의한 셀리오의 즉음은 타살이라기보다는 자살이라고 해야 옳다. 마지막 무덤장면에서 보듯이 셀리오의 존재는 결국 후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이야기 속의 주인공으로 남게 된 셈이다.
셀리오가 연애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이야기의 리듬에 따른 생활을 한다면, 옥타브는 술에 절어서 방탕한 생활 리듬을 보인다. 결국 둘 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의 리듬과 괴리를 보인다. 옥타브가 기동력에 의거해서 처음에는 극전개의 리듬을 이끌어가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은 실패를 겪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옥타브도 셀리오와 마찬가지로 자기만의 시간 속에 고정되어 있는 인물인데, 옥타브의 시간은 방학 중인 학생의 시간이기도 하다. 카니발이건 방학이건 결국 크게 보면 제도화된 사회적 시간의 일부이면서 중심부에서 이탈한 주변부의 시간이다. 어느 기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환원될 운명을 지닌 한 시적 시간일 뿐이다. 따라서 옥타브의 시간도 성인이 되기를 마지막까지 거부하며 사회의 주변부에 머물고자 하는 청춘기 시간의 한 변형이라는 점에서 셀리오의 시간과 짝을 이룬다고 하겠다. 마리안이 보여주는 리듬은 규칙성이다. 교회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집과 교회를 오고가는 마리안의 모습은 반복적인 리듬이 형상화해주는 대로 사회질서에의 순응을 보여주고 있다. 마리안은 세간에 정숙한 여자로 소문이 나있어서 셀리오가 다가설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규칙성의 리듬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고유의 리듬을 준수하려는 강박적 리듬이기도 하다. 세간의 눈을 의식하였건 아니건 간에 마리안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자아의 확립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리듬을 교란시키는 개입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마리안이 거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시대의 남자들 이 여자에 대해 만들 수 있는 여러 담화 체계 속에 자신을 편입시키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여성혐오자란 평가를 받는 뮈세가 특이하게도 마리안의 입을 통해 페미니스트적 담론을 선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클로디오는 방어적 행위만을 하는 기득권을 가진 성인 세대의 대표자이다. 행위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클로디오는 법관의 신분이 나타내 보이듯 권력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위세의 염세주의는 이와 같이 무대 위에서 각 등장인물들이 시간 속에서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느라 애를 쓰다가 실패하는 모습에 대비하여, 무대 밖에 있기에 보이지 않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막강하면서도 타락한 권력의 실체를, 그 하수인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마리안의 변덕〉은 1939년에 제작된 장 르누아르 감독의 불후의 명작인 영화 〈게임의 규칙〉의 원작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은 20세기로 바뀌었고. 마리안에 해당하는 크리스틴 역을 한 여배우 노라 그레고르의 나이가 30대였기 때문에 원작의 마리안처럼 소녀 스러운 변덕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가 원작에서 차용한 것은 비극적 오해라는 모티프가 주를 이루었다.
작가소개
1810년 12월 11일 파리에서 출생한 알프레드 드 뮈세는 시, 소설, 희곡 등에서 두루 두각을 나타낸 다재다능한 작가였다. 뮈세의 집안은 소위 귀족 가문이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허명에 동조하는 자유사상가였고, 장 자크 루소의 생애에 관한 저술도 집필한 박식한 인물이었다. 1819년 앙리 4세 고등학교에 진학한 뮈세는 프랑스어와 라틴어 작문에서 발군의 성적을 보인다. 1928년 토마스 드 퀸씨의 작품을 번안하여 『아편쟁이의 고백』을 출간한 뮈세는,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을 뒤흔든 '에르나니 전투' 사건이 벌어진 1830년에 빅토르 위고가 이끌던 문인들의 소모임인 '세나클’에 가입하게 된다. 위고, 비니, 메리메, 생트 뵈브 등 당대의 문인들과 교분을 쌓으면서 시작품을 발표 하여 재능을 인정받지만, 자유분방한 뮈세는 이 유파의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1833년 뮈세는 당시 29세이던 여류작가 조르주 상드와 만나 열애에 빠진다. 이 둘은 함께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지만 뇌막염에 걸린 뮈세를 간호하던 상드는 의사 파젤로와 눈이 맞아 뮈세를 배신한다. 상드와 의 격정적이었으나 고통스럽게 끝난 사랑은 자전적 소설인 『세 기아의 고백』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1837년까지 뮈세가 격정적인 사랑을 했던 시기는 그가 가장 왕성하게 문학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와 겹친다. 1830년 루이 필립의 7월 왕정으로 말미암아 실패로 끝난 7월 혁명이 안겨준 좌절감은 당시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던 이른바 '세기병'의 한 원인이 되었고, 이것이 이 시기에 쓰인 뮈세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특유의 비관적 세계관을 설명해 준다. 천사와 탕아라는 양립할 수 없는 뮈세의 이중적 성격도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개인적 특성은 작품 속의 아이러니나 주인공의 성격묘사를 통해 확인 될 수 있고,이 점은 다른 낭만주의 작가들과 구별되는 뮈세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19세기 초 세련된 유행의 첨단에 섰던 댄디의 전형인 뮈세는 1839년 이후, 즉 그의 젊은 시기가 지나간 이후에는 문학적 영감을 잃게 된다. 뮈세는 1830년 그의 첫 극작품 〈베네치아의 밤〉을 오데옹 극장의 무대에 올렸으나 참담한 실패를 겪게 된다. 고전극의 삼단일의 법칙이나 장르의 구분을 배격하려던 낭만주의 극은 고전주의적 전통을 고수하는 기존의 연극계와 맞서 격렬한 투쟁을 벌이게 되고, 그 정점에 빅토르 위고의 〈에르나니〉가 있었다. 위고와 달리 세를 규합하여 투쟁을 할 수 없었던 뮈세는 〈베네치아의 밤>상연 실패 이후 무대를 둥지고 오직 읽기 위한 희곡에 전념하여 〈안락의자에서 보는 구경거리〉의 일환으로 일련의 극작품을 집필하였다. 그 결과 뮈세의 극작품은 당시 연극무대의 상연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이 만든 잠재적인 무대를 지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뮈세의 글쓰기는 연극 장르의 깊은 요구를 등한시하지 않고 잠재적 무대의 상연조건에 충실한 깊은 연극성을 보여주며, 이런 이유로 뮈세의 극작품은 오늘날 프랑스 낭만주의 연극의 백미로 평가받으면서 당당히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뮈세는 185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나, 이미 보들레르를 위시한 새로운 세대는 뮈세를 과도한 주관적 정서의 과잉을 보여주던 낭만주의의 상징으로 폄하하게 된다. 병들고 친구들에게도 잊힌 존재가 된 뮈세는 술과 약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1857년 생을 마감하게 된다. 1847년 극작품 〈변덕〉이 상연되면서 위세의 작품이 여러 편 성공적으로 무대 위에 오르긴 했으나, 작가 자신이 대폭 수정해야 했다. 시대를 앞서 간 뮈세의 작품이 젊은 날의 뮈세가 쓴 그대로 수용되기에는 20세기가 되기까지 기다려야 했고, 이때에 비로소 뮈세의 연극은 관객과 무대를 만날 수 있었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의신 '가을 반딧불이' (1) | 2015.10.31 |
---|---|
데이비드 H 황 '까마귀를 쫓아서' (1) | 2015.10.31 |
정의신 '아시안 스위트' (1) | 2015.10.31 |
폴 클로델 '마리아에게 고함' (1) | 2015.10.31 |
펠리샤 론드레 '두제와 다눈지오' (1) | 2015.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