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무언가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둘만의 역사를 만들어 가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그런 연애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달콤하지만은 않다. 초겨울에 시작된 연애의 시작은 한겨울의 시린 혹한을 맞이하며, 된서리에 놀라 두려움으로 움츠리기도 한다.
사랑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두 남녀. 하지만 남자와 함께 있어도 외로운 여자. 행복했던 추억을 던져버리려 한다. 헤어짐을 인정하지 못하고 여자의 주위를 맴도는 남자.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법. 5월은 그래서 설렌다. 지나간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움직이는 여자의 마음. 무대 앞에 수북이 놓인 수십 개의 술병은 그런 등등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5월에는 연애를 시작한다>의 가장 큰 특징은, 대사보다는 이미지 와 리듬에 몸을 맡긴다는 점이다. 볼륨을 낮춘 영화처럼, 구체적인 사연은 알 도리가 없으나 그 풍경은 명확하다. 상승 - 하강 - 회복의 곡선을 따라 사랑의 일생을 그리는 것이다. 눈길 한 번, 손짓 하나에도 벅차하던 두 사람의 감정은 점차 시들해지고, 이윽고 늪과 같은 권태에 빠진다. 지리멸렬한 이 과정은 대사 없이 진행된다. 권태가 극에 달할 즈음, 여자는‘지겹다’고, 남자는‘사랑한다’고 겨우 웅얼거릴 뿐이다. 여자를 설득할 때도 남자는 간절한 구애 대신 토막 말을 되뇐다. “75 B컵, 98년 3월 경포장 307호, 35-25-35, 신한은행 154809, 비밀번호 3535.” 남자는 내밀한 관계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들을 내뱉고, 그 낱말 사이에 둘 사이의 추억이 들어찬다. 기억에 기대어 두 사람은 가까스로 훈기(薰氣)를 회복한다.
무대는 보는 이에게 각자의 사연을 환기 하는 역할을 할 뿐, 별난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관계에 대한 통찰이나, 경쾌한 대사를 즐기려 했던 관객들은 옅은 배신감을 느낄 법하다. 연출자 위성신씨는 ‘말 대신 이미지의 성찬을 즐기라’고 말한다. 사랑의 갈래를 보여주기보다는 일상에 스며 있는 상처와 그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 그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5월에는 연애를 시작한다>에 따르면, 사랑은 열기구 처럼 부풀었다가 김이 빠지듯 가라앉는다. 사랑의 충일감은 노란 모자와 비누 거품, 포도주 와 촛불의 이미지로 표현되고, 쌓이는 피자 박스 , 짜장면 그릇, 하루종일 웅웅대는 텔레비전은 권태로운 일상을 대변한다. 충일감을 즐기고, 권태를 견디는 법은? 그건 각자 알아서 할 문제. 이 작품은 답을 들려주지 않은 채 다만 ‘사랑과 삶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어두운 무대에서 야광 낚시찌가 움직이면서 시작된 연극은 먼저 술병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두 남녀의 만남을 보여준다. 이어 이들의 이별은 수족관과 물이란 객체를 통해 표현되며 피자와 비디오는 이별후 이들이 갖는 혼자만의 시간을 상징한다. 이들은 결국 서로간의 대화로 마음을 조금씩 움직이다 음악을 매개로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는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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