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소월의 일생을 극화한 작품이다.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서정시인 김소월의 생애를 통해 민족예술과 혼을 지키려는 선인들의 투철한 예술정신을 조명한 전기극이다.1979년 제 3회 대한민국연극제에 극단 성좌에서 출품 초연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리의 영원한 민족시인인 김소월의 전기극 현식이며 그의 주옥같은 명시들이 작품의 여기저기에 들어있는 시극이라 하겠다. 그리고 일제시대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당시의 젊은 예술인들의 이야기가 소월과 같이 등장하며 소월의 가족, 스승, 친구등 주변인물들과 나도향등 일제시대에 꽃피워진 예술인들의 민족정신과 예술혼을 지키려는 노력이 스며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못잊어 - 김소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있으리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있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소월, 1902 ~ 1934
시인. 평안북도 구성 출생. 본관은 공주. 본명은 정식(廷湜). 아버지는 성도(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일본인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사립인 남산학교(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던 중 3 · 1운동으로 폐교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 졸업하였다. 1923년 일본동경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9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였다. 오산학교시절에 조만식(曺晩植)을 교장으로 서춘(徐椿) · 이돈화(李敦化) · 김억(金億)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특히 그의 시재(時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문단의 벗으로는 나도향(羅稻香)이 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며 고향에 있었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에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작가의 글 - 이재현
素月만큼 우리와 친숙하면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가는 드물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가 오산과 培材를 졸업하고 잠시 東京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서울서 약 3개월을 머물었을뿐 그나마 짧은 인생의 대부분을 곽산과 구성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가족 이외엔 그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이 없다. 중앙문단에 지인도 전혀 없었다. 그의 주옥같은 시들은 우리 앞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지만, 그의 人生은 안개 속에 영원히 묻혀버린 것이다. 아드님이 한분 계시지만 어렸을 적의 일이라 당시의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신다. 素月의 劇化는 그나마 남아 있는 기록으로 그의 인생을 보전해 보자는데 먼저 뜻이 있었다. 이제 와서 다시 素月의 世界를 할 필요는 없겠다. 그가 민요적 율조(民謠的 律調)에다 民俗的인 정서를 아름답게 엮은 많은 나를 남김으로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시인이라는 데는 아무도 異論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자기의 세계를 탈피해 보려는 부단한 노력이 엿보인다. 그가 조숙했던 만큼 시인으로서의 한계도 속히 다가왔다. 그러한 한 시인의 비극을 民族의 受難에서 원인을 찾을 수는 있다. 그러나 素月 자신에 조명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인 듯 하다. 素月 시(詩)의 소재는 다른 시인들과 달라 자연과 농촌이었다. 그는 이러한 소재들을 감성적이며 直觀的으로 파악하여 민요적인 리듬에 실었다. 그의 詩가 영원토록 널리 익혀지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의 詩가 그러했음으로 그의 人生 또한 대단히 폐쇄적이었다. 이번 작품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 그가 남긴 시를 통해 그의 詩世界와 인생을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좌절을 탐험해 보는 것이었다. 이 등장하는 것도 거기에 뜻이 있었다. 그의 詩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인다든가 人生의 根本的인 문제에 파고드는 면이 없는 만큼 작품을 심화시키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또 그의 죽음에 대한 異見이 아직도 분분한데 꼭 하나로 매듭짓는 것도 좋지 않을듯 하다. 어떻든 이제 「못잊어」는 막을 올리게 됐고 극의 형식으로는 처음으로 素月이 무대에 올라갔다. 이번 작품이 금년에 발표한 나의 세 번째 작품인데 세 작품이 공교롭게도 모두 전기(傳記)에서 소재를 택하여 이상한 인연을 가진 것 같다. 「님의 침묵」이 그랬고 「화가 李仲燮」이 그랬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욱현 '불면' (1) | 2015.11.17 |
---|---|
선욱현 '악몽' (1) | 2015.11.17 |
최인석 '그 찬란하던 여름을 위하여' (1) | 2015.11.17 |
이병원 '바람 꽃' (1) | 2015.11.17 |
김윤미 '낙원에서의 낮과 밤' (1) | 2015.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