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빈, 모스, 애러노우, 로마는 시카고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중개업자들이다. 로마는 최근 실적을 가장 많이 올리고 있지만 나머지들은 일을 거의 성사 시키지 못해 곤경에 빠져 있다. 또 본부에서 그들에게 주는 매물 리스트도 가치없고 쓸모없는 매물만 주어진다. 그들 모두는 새로운 명단인 글렌게리 리스트를 받기를 희망하나 사무실장인 윌리엄슨은 그들의 소망을 일축하고 만약 이번에도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해고시킨다는 본부의 방침을 전한다.

<글렌게리 글렌 로스>는 부동산 사무실과 그 주변을 배경으로 하는데 시카고 부동산 회사에서 ‘난 노인네들에게 아리조나의 쓸모없는 땅을 팔아 먹었어’라는 마멧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사실상 사기꾼, 협잡꾼들이고 그래서 위의 어구는 핵심적 어구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마멧을 매혹했던 것처럼 보이는 인간 경험의 필수적인 이중성을 강조하고 있고, 사기꾼은 약점 의식을 낳는, 믿고 싶어하는 욕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또한 착취를 초래하는 탐욕을 내포하고 있다. 이 작품의 권두 인용문은 ‘항상 근접하라’라는 소매상인의 구호이다. 가게문을 닫아걸고 은밀하게 판매한다면 구매자가 판매자보다 부당하게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 사실에서 발견되는 것은 동정보다는 오히려 탐욕이다. 외판원이나 사기꾼이 미국의 작품에서 중심인물로 등장한 것은 이유가 없지 않다. 이러한 중심인물은 현금을 벌기 위해 꿈을 소리치며 파는, 다시 말해 단돈 2달러를 벌기 위해 현실과 이상의 표준형을 파는 사회의 이미지가 된다. 그들이 부동산을 팔 때 파는 것은 실체가 아니다. 아마도 어느 의미에서 그것은 문화 속 깊이 뿌리내린 이중성을 반영하는 것이고, 미국이 행복의 추구와 재산 소유에 전념해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18세기 때의 헌법 토론을 반영하는 것이다. 오닐은 그것이 세상을 차지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을 차지하려는 미국의 욕망이라고 간주했다. 그러나 이것 이상으로 작용하는 기능이 있다. 왜냐하면 세일즈맨은 이야기꾼, 즉<글렌게리 글렌 로스>의 세일즈맨들이 아무리 타락했다해도 그들은 더할 나위 없는 이야기꾼이며, 자신감, 우정, 질서와 신념에 대한 인간의 깊은 욕구에 반응하는 아주 노련한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극이 끝났을 때 우리에게 강렬한 배신감과 돈을 가치로, 착취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가 더럽힌, 충족되지 않는 인간의 욕구에 대한 의식이 남아있다면, 물질주의의 성공은 일시적이라는 의식도 역시 남아 있다. 배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는 신념이 있듯이 토로되지 않고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살아 남아있다. 마멧이 부동산 업자의 희생양중 한 사람에 대해 강조했던 것처럼, 그 사람은 누군가를 믿고 싶어한다. 그는 그것만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극이 끝날 때, 그가 돈을 탈취당했지만, 아니 거의 강탈당할 뻔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군가를 믿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가 친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처럼 세일즈맨들 중의 하나가 친구중의 하나를 배반할 입장에 있을 때,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약속을 지키는 일이 그에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양자택일의 사회를 구성하면서 깨지기 쉬운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극의 문맥에 제스쳐는 충분히 있어야만 한다. <글렌게리 글렌 로스>는 회사의 무자비한 지배를 받는 일단의 부동산 매매업자들에 관련된 작품이다. 최고의 실적자는 캐딜락 자동차를, 그 다음의 실적자는 스테이크용 칼 한 세트를 받게 된다. 실적이 없는 자들은 해고당할 것이다. 이것은 경쟁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훌륭한 실례다. 성공에의 열쇠는 예상 구매자의 주소를 확보하는데 있다. 우선 순위가 성공한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이 세계는 성공이 성공을 낳는 세계다. 압력이 너무나도 거세기 때문에 이 세계는 고객에 대해서 결국 회사에 대해서 부도덕한 방법들을 동원한다. 점점 더 필사적이 되어 세일즈맨 셸리 리바인은 사무실에 무단으로 들어가서 유력한 고객의 주소록을 훔친다. 이 범죄는 경찰의 수사를 받는다. 이 세일즈맨의 사기 행위는 비교해보면 고객을 속이는 것이 단지 대단한 사업으로 간주되고, 성공은 가치가 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업적이 되는 세계의 윤리에 의해 인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2막으로 구성돼 있다. 1막은 3장으로 나뉘며 모든 장은 중국 음식점에서 열린다. 2막은 강도행각 후의 부동산 사무실을 배경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권력에 관한 극이다. 핀터가 주어진 순간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한 사람은 지배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예속된다고 언급했듯이 이 작품에서도 1막은 3개의 대화로 구성되는데 그 하위 텍스트는 권력과 권력의 행사와 관련이 있다. 첫 번째 장에서 셸리 리바인은 데이빗 윌리엄슨과 대결하는데 윌리엄슨이 하는 일은 주소, 즉 ‘실마리’를 할당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관객에게 해독할 수 없는 암호를 이야기하면서 무역계의 특수용어를 펼쳐낸다. 그 결과 다른 신호들이 전면에 포진하게 된다. 마멧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식당 옆자리에서 어떤 부부가 대화하는 것을 보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주용하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 사실, 그리고 어휘를 완전히 이해하지를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듣게 된다.’ 이 말은 또한 관객이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앉아 어조, 리듬, 성량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뜻이 된다. 윌리엄슨은 과묵하다. 대부분의 그의 대사는 하나의 단어, 불완전한 문장에 국한되어 있다. 대조적으로 리바인의 대사는 점점 커지는 히스테리를 드러낸다. 대개 마멧은 무대 지시문을 ‘사이’라는 단어 또한 가장 단순한 동적 표시에 한정시킨다. 그러나 리바인의 대사는 이탤릭체나 대문자로 된 단어와 외설적인 말로 흐트러져 있다. 리바인은 그가 두려워하는 대답이 나오는 경우 이야기가 중단될까봐 겁내는 청탁자이다. 대화를 깨고 리바인을 혼자 내버려두는 사람은 윌리엄슨이다. 두 번째 장에서 데이브 모스는 회사 사무실에서 ‘실마리’를 절취하려는 음모에 동료 세일즈맨 조지 아로나우를 끌어들이려고 애쓴다. 편견이 섞인 우정으로 시작된 대사는 아직 저질러지지 않은 범죄의 공모자인 동료를 ‘넌 들었어’라는 사실을 근거로 모스가 위협함으로써 끝난다. 언어는 함정이 된다. 판매술로 연마된 기술이 서로를 적대하듯이 듣기만 하는 것도 유죄가 된다. 범죄를 저지를 때 배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아로나우로부터 얻어냈지만 모스 자신이 곧 이러한 배신의 죄를 짓는다. 사실 배신은 인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극에서 중심주제가 된다. 세 번째 장은 특히 이런 과정을 말해주는 실례를 제시한다. 음식점의 작은 방에 있는 두 사람이 도덕, 신뢰, 욕구에 대해 토론한다. 아니 토론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화는 사실상 눈에 띄게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비로소 한 사람은 세일즈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일즈맨의 봉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첫 번째 장의 반전에서, 힘은 화자에게 실려 있다. 유력한 고객은 이따금씩 말하도록 허용된다. 노련미는 세일즈맨인 리차드 로마가 제시하는 뒤범벅된 헛소리와 진실 속에 있다. 로마는 손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탐욕을 개탄하며 불안의 실체를 확인한다. 그 다음에 나오는 자에서 다른 세일즈맨이 믿으려는 욕구를 역설하고 고객들을 ‘개종시키려는’ 욕구를 강조함으로써 거래를 체결한다. 그때 의도적인 점강법의 클라이맥스에서 그는 손님을 유인하는 소리,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을 들어보시라니깐요’를 시작한다. 스토리가 시작된다. 이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는 이야기꾼들이요, 대단한 재주를 가진 배우들이다. 필요가 생기면 그들은 즉흥적으로 드라마를 연출하거나 아주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든다. 그들의 윤리적 실패 때문에 마멧의 공감이나 관객의 공감을 잃었다고 상정해서는 안된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데이비드 마멧(David Mamet)은 연출가, 영화감독, 소설가, 시인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1970년대 중반 시카고의 작은 극단을 통해 활동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독특한 작품세계의 구축과 미국적 언어의 재현으로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동시대의 주요 극작가로 인정되고 있으며, 현재도 계속 신작을 발표하면서, 미국 연극계의 주요 흐름을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마멧은 잭 니콜슨, 제시카 랭 주연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81)'의 시나리오로 영화계에 데뷔해서 '하우스 오브 게임', 로버트 드니로, 더스틴 호프만 주연, 골든 글로브 노미네이트 작 '왝 더독(1998)', '한니발(2001)' 등 영화 각본 뿐만 아니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된 '호미사이드(1991)'의 연출을 맡았습니다. 데이비드 마멧은 극인으로 출발했던 탓에 영화계보다는 연극 쪽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글렌게리 글렌 로스>는 직업세계 속에서 인간간의 관계보다 돈의 가치가 부각되어지는 냉혹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마멧은 같은 사무실내에서 근무하는 동료들끼리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동료를 배신한다는 주제를 중심으로 비정한 세일즈맨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동료와 고객을 현혹시키는 레빈, 로마, 로스의 간교하고도 능란한 화술은 성공을 위한 매우 효율적인 무기로 사용된다. 이들 세일즈맨에게 있어 언어는 인간관계 형성의 수단이 아닌 물질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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