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해설
'부고장'의 형식으로 1942년 발표된 「휴이』 는 환상 없이는 인간이 살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막극이다. 「 얼음장수 오다』 의 에필로그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원래 오닐이 무대 공연보다는 책을 위해서 여덟 편의 단막극으로 계획했던 사이클 드라마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완성작이다. 얼음장수 오다』 와 「휴이』 모두 같은 주제 즉, 현실의 삶을 견디기 위해서 '파이프 드림'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닐은 인간의 삶이 실패와 고통, 그리고 패배로 가득 차 있다하더라도, 그래서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참하고 허망하다 하더라도 인간은 꿈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오닐이 말하는 '부질없는 희망' 이다. 삶과의 투쟁에서 패배한 인간들은 마치 아편을 흡연하는 자가 품는 것과 같은 허황된 환상으로 도피해야 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이프 드림이 주는 이 '부질없는 희망'은 비록 그것이 허망하고 일시적이지만, 인간에게 평회를 주고 삶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진정제가 된다. 오닐은 실현 불가능한 꿈을 추구하는 인물들이 패배의 절망감으로부터 그들을 유지시켜주는 환상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파이프 드림은 등장인물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도구이지만 이것은 한날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인생의 현실 세계에서 실패하고 좌절된 인간에게 파이프 드림은 고통스런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적극적인 구원이 된다. 이 파이프 드림은 그들이 사회의 낙오자라는 비참한 현실을 망각하게 해주고, 과거의 아름다운 향수와 내일의 허황된 꿈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파이프 드림은 그들로 하여금 공통점을 가진 동료로서 서로 간에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해 줌으로써 외부 세계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기도 한다. 현실세계에서 패배하고 도망쳐 온 이들에게 환상이란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가려주는 최후 수단이다. 최후의 가림막이요 방패와 같은 그들의 환상을 벗겨버리고 진실을 직시하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정신 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그들 역시 그것이 헛된 망상이고 헛된 꿈인 줄 알지만, 그것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파이프 드림을 포기할 수 없고 그것에 의지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진실은 별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남겨진 만족은 그저 술과 환상에 젖어 서로의 환상을 인정해 주고 자신의 환상도 인정받는 상호 기만의 만족감과 그것이 주는 평화인 것이다.

일종의 독백극이기도 한 이 극에서 내레이터인 에리 스미스는 인생에서 실패한 브로드웨이의 삼류 도박사이자 경마 광이다. 그는 새벽 3〜4시인 지금 그가 머무는 싸구려 호텔의 로비에서 야간당직 근무자인 찰리 휴이에게 인간적인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에리는 찰리가 무관심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어오기 일주일 전에 죽은 야간 당직자 휴이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의 독백을 통하여 죽은 휴이는 에리에게 있어서 상처받고 실패한 인생이지만, 그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존재였음이 드러난다. 휴이는 에리의 허황된 파이프 드림을 들어주고 인정해주며 그에게 자부심을 주는 인물이었다. 그런 휴이 덕분에 에리는 초라한 자신의 현실을 잊고 브로드웨이의 거물급 도박사로, 또 자기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성공한 인물로 자신을 볼 수 있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에리에게 있어서 자신감과 생명력의 상징이었던 휴이가 죽자 에리의 행운은 없어진다. 휴이가 죽은 후 옛날의 자신감을 잃고 운도 따르지 않아 한 번도 이기지 못한다며 에리는 우울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에리는 죽은 휴이를 대신할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새로 근무하는 직원인 찰리에게 필사적으로 접촉하려 하는 것이다. 에리가 찰리와 대화하려는 이 노력을 비평가 포터는 "필사적인 내부적 투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보가드는 이 투쟁에서 실패하여 에리가 자신의 방 492호실로 쓸쓸히 들어가는 것은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다행히 처음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찰리가 자신도 밤의 적막함에 위협을 느끼고 그 고독감을 극복하기 위해 에리와 대화하게 된다. 그는 에리가 도박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 내고, 브로드웨이의 “거물 도박사” 아놀드 로스타인을 화제로 에리와 대화를 통한 공감대를 찾는다. 사실 에리와 아놀드 로스타인은 별로 친분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찰리가 에리를 거물 도박사의 친구로 인정해 줌으로써 에리는 자신감과 삶을 유지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에리는 잃었던 파이프 드림을 회복하고 "갑자기 그의 얼굴은 구원의 계시를 얻은 듯 밝아진다." 에리는 이제 점점 따뜻한 마음이 되고 자신감도 생겨 찰리에게 옛 휴이처럼 똑같이 해 줄 것을 요구하며 악수를 청한다. “잠시 주사위 놀이나 해보지 않겠나, 찰리?"라고 말하는 에리는 비록 파이프 드림을 통한 환상이지만 휴이의 죽음으로 잃었던 삶의 자신감을 회복한다. 비평가 플로이드는 「휴이』를 가리켜 오닐의 매우 낙관적인 극중에 하나이며, 인간이 인간적인 동정의 말이나 따뜻한 작은 행동으로 동료인간에게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극이라 며 이 극의 주제를 설명하고 있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게오르그 카이저 '깔레의 시민들' (1) | 2015.11.17 |
|---|---|
| 키파르트 '오펜하이머 사건에서' (1) | 2015.11.17 |
| 브레히트 '아르트로 우이의 집권' (1) | 2015.11.17 |
| 유진 오닐 '모든 신의 아이들은 날개가 있다' (1) | 2015.11.17 |
| 비번,트로친스키 공작 '제17포로수용소' (1) | 2015.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