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유진 오닐 '모든 신의 아이들은 날개가 있다'

clint 2015. 11. 17. 09:01

 

 

 

 

"모든 신의 아이들은 날개가 있다" 는 흑백인종간의 혼교를 다루면서 이룰 수 없는 꿈의 추구와 좌절을 보여주고 있다. 인종적 편협이 그 희샌자들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다는 전제로 시작 되는 이 극은 민감하고 지적인 흑인 짐 해리스와 그의 백인 아내 엘라 다우니가 각자의 인종적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적 애정관계를 그리면서 인종적 편견으로 인한 좌절과 소외를 다룬 충격적인 심리극이다. 오닐이 이 극 속에서 인종간의 결혼을 옹호하 지 않는다, 고 말한 정도로 당시에 이 극이 갖는 사회적 충격은 배우 컸던 것이다. 오닐은 두 순진한 사람에 대한 편협한 신앙의 궤멸적인 효과를 보이주기 위해 유색인종을 제외시키는 백인 사회 미국에서 이종족간의 혼교의 예를 과감히 극화한다.

 

 

 

뉴욕의 빈민가에서 자라는 8살의 어린 짐과 엘라는 철없는 혹인과 배인 친구듭 름에서 살갖이 희고 김은 것음 전혀 의식하 지 않으며 사이좋게 어울린다. 순진한 사랑 속에서 짐은 "나는 하루에 세 번씩 분필가루를 많이 물에 타 먹었어. 이발사 아저씨 톰이 내가 충분히 먹으면 흰색이 될 수 있다고 했거든” 이라고 말하면서 조금이라도 하얗게 보이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때 흑인 소년 짐을 사랑하는 엘라 역시 "나도 너처럼 까만색이 었으면 좋겠어. 우리 바꾸자" 라고 응수한다. 실제로 엘라는 "페인트 칠한 얼굴"이란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얼굴에 검은 초코랫 색을 칠하고 다니는 소녀이다. 오닐은 어린이 숫자를 흑인 남녀 2명 백인 남녀 2명으로 설정한 것과 그탄의 티없이 순진한 대화를 통해 흑인과 백인이 태어날 때 하나님 아래에서 평등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성숙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은 순수함을 잃고 피부색이 현실로 다가오자 점차 인종간의 균열을 깨닫게 되며 갈등이 중폭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 함께 공기놀이를 하며 어울렸던 친구들은 거만하고 못된 청년이 되어 짐과 엘라의 사랑을 조롱하고 반대하는데, 그들의 언행은 짐과 엘라의 잠재의식에 뿌리박고 있는 흑인상과 백인상을 표출시키기 시작한다. 미키는 짐에게 "너는 돈으로 흰색을 사려고 하는데 그건 안 될 걸" 이라며 비난한다. 엘라 자신도 은연중에 미키와 같은 인종적인 편견이 싹 트게 되어 “너와 난 더 이상 공통적인 게 아무것도 없어. 난 네가 역겨워!“ 라고 짐을 무시한다. 그녀는 심지어 짐이 교육 받는 것. 그리고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화를 낸다. 백인인 그들은 흑인인 짐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그들보다 우월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흑인 친구인 조까지도 짐의 흑인 정체성을 건드린다. 결국 엘라는 흑인인 짐을 배신하고 난봉꾼인 백인 친구 미키와 결혼하지만 그는 그녀가 임신하자 그녀를 저버린다. 아버지 없는 아이가 죽고 좌절감에 빠진 엘라는 다시 짐에게 돌아와 결혼을 약속한다.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서는 짐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는 짐이 현재의 흑인이 아니라 백인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가 끝까지 흰것을 “좋은 것"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그들은 결합할 수 있다. 엘라는 어린 시절의 환상에 젖어 의지할 남자가 필요했기에 가서는 안 될 길에 들어선다. 그녀는 남자의 야심을 파괴시키는 인물이다. 그녀가 그리는 평등의 이상세계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나 가능한 것이며. 흑인인 짐이 백인처럼 보이는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엘라의 사랑을 확인하는 환회 속에서 짐은 “우리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다른 나라로 갑시다. 피부색이 중요하지 않고- 사람들이 살갖 속에 있는 영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고 지혜로운 나라로 말이요“ 라고 말한다. 짐은 엘라와의 결혼생활의 실체를 잘 인식하고 있기에. 먼 이국 땅에서 이들만의 이상세계를 새롭게 창조하려는 것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교회에서 나올 때 사람들은 양쪽 인종으로 분리되어 기다리는데. 이는 교회의 존재가 현실에서 인간의 마음속에 진정한 형제애의 감정을 심어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짐과 엘라는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하객들의 증오심을 보고 매우 놀라며. 그녀의 손을 잡고 서둘러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날 생각을 한다. 그들이 시선을 두어야 할 곳도 하느님이요. 기댈 곳도 하느님뿐이다. 검은 색 옷을 입은 짐은 흰옷을 입은 엘라에게 하늘을 쳐다보라고 소리친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이 도피할 수 있는 곳.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곳.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을 곳은 세상의 뒤쪽에 있는 그리스도가 태어난 곳, 영혼을 중요시 하는 다정함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어린 시절의 자신들처럼 신의 아이들이 날개를 달고. 피부색에 의해 구분되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오닐의 인물들이 추구하는 낙원이며 이상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환상의 씨앗이므로 결혼생활을 통해 그들이 꿈꾸는 세계도 환상이 될수밖에 없다. 그들은 막연히 푸른 바다 건너 프랑스로 도피한다. 인종차별이 판치는 미국만 아니라면 어떤 곳이라도 그들만의 낙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상의 어느 곳에도 이런 곳은 없다. 오히려 엘라의 몸과 마음은 병에 찌들게 되고. 그들은 2년의 유럽 생활을 접고 도망치듯 귀국하게 된다. 그녀는 혹시 흑인 아이가 태어날까 두려워 아이 갖는 것도 싫어하며. 백인의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이 두려워 짐이 변호사 시험 공부를 못하도록 방해하는 등 극도의 정신분열 상태에 빠셔 있어 짐의 누이 해티는 엘라를 정신병원에 보내라고 말한다. 엘라는 흑인에 대한 증오를 스스럼없이 내뱉는가 하면. 누이가 결혼선물로 짐에게 준 콩고 가면을 저주한다. 심지어 짐이 변호사시험에 더 이상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소리친다. 해티가 분노하며 엘라의 백인으로서의 우월감과 시험준비를 방해하는 저의를 의심하자 엘라는 상심한 짐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정신착란 속에서도 그녀에게 짐은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엘라는 흑인인 짐과 결혼한 것이 아니라 짐에 대해 어린 시절에 갖고 있던 환상과 결혼한 것이다. 그러므로 짐은 흑인이지만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환상 속에서는 백인처럼 보인다. 그녀는 한 때 짐을 조롱하는 백 인 친구들에게 짐을 옹호하면서 "그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백인이야, 친절하고 하얗고. 너희들이야말로 마음까지도 까만 흑인이야"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이 말은 짐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항에서 어쩔 수 없는 절규였는지 모르지만, 엘라의 마음 한 구석에는 짐이 흑인이 아니라 백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그동안 겪은 고통에 대한 분풀이를 사랑하는 짐이 백인 중에 진짜 백인으로서 대신 받아 주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엘라의 광기는 극에 달한다. 그녀는 살기를 품고 칼로 짐을 죽이려다가 짐의 방해로 실패한다. 현실은 더 이상 엘라가 지탱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다. 그녀는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 함께 즐기던 놀이의 환상 속으로 빠져들며 “나는 꼬마 소녀가 될께. 그리고 너는 우리랑 오래 동안 함께 지냈던 짐 아저씨가 되는 거야. 자 우리 그 놀이 다시 할래?-라고 간청한다. 그러다가 다시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며 질투 어린 증오가 폭발하여 "당신 더러운 깜둥이"라고 악을 쓰기도 한다. 이런 정신적 혼란 속에서 엘라는 중요한 의식을 행하게 된다. 그녀는 일생동안 자신에게 달라불어 의식의 세계를 지배해온 흑인의 망령을 제거하는 행위를 행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생존을 위한 그녀의 마지막 수단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칼을 든 체 붉은 화장복 차림으로 방에 걸려 있는 콩고 가면을 향해 냉소를 보낸다. 그녀의 눈에는 광기의 에너지가 이글거린다.

 

 

 

엘라와 짐이 유럽에서 돌아왔을 때 방에 걸려 있는 콩고가면은 이들 두 사람에게 자아분리의 상징적 소도구이다. 특히 아프리카 콩고가면은 흑인의 정체성을 사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짐의 흑인성의 상징적 힘을 지니고 있기때문에 집안에서 엘라를 미치게 하는 요소로서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곳곳에 존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령과 같은 존재이다. 엘라는 지금 자신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유령같은 콩고가면을 죽임으로서 그것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엘라에게 아프리카 콩고 가면은 짐의 존재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가를 나타낸다. 그것은 엘라가 지금까지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었지만 또한 그 점이 그 가면을 방에서 치워버리기를 주저하는 이유인 것이다. 짐은 엘라가 자기 내부의 뭔가. 그녀가 지니고 있던 백인 우월감에 대한 위협을 항상 내포하는 내적 힘을 파괴했다는 것을 인식한다. 슬프게도 그는 이런 이기적인 여성을 위해 자신이 꾸준히 갈망해온 모든 것올 회생하기로 체념한다. 짐은 변호사가 되는 꿈을 포기한 채 남자 세계의 우월한 가치를 비굴하게 받아들이고. 백인들의 생활 방식에 순응하여 열등하고 전형화된 흑인 짐 역할을 맡기로 한다. 이때 비로소 엘라는 자신이 승리했다는 것을 알고 과거 어린 시잘의 소녀로 돌아간다. 결국 짐이 궁극적으로 발견한 것은 이 극의 제목이 암시 하는 것처럼 인간은 어린아이로서만이 인종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최종적으로 짐과 엘라가 찾는 흑백평등의 이상세계는 그들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세상인 것이다. 물론 이 극의 마지막 대사와 제목이 암시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이 세계가 아니라 또 하나의 다른 세계에 존재하며. 단지 흑백을 초월한 형제애를 통해서만이 이런 이상 세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인류가 함께 신의 이름 아래 평등하게 형제애를 바탕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짐과 엘라는 자신의 그릇된 선택으로 인해 현실에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이다. 엘라는 백인으로서의 편견과 아집에 싸여 흑인을 진정한 형제로서 받아들이지 못했으 며. 짐은 흑인으로서의 열등감에 싸여 비굴한 태도와 굴욕적인 삶을 살면서 본래의 자아를 잃어버리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극에서는 진정한 인간의 가치와 규범이 양립합 수 있는 미국이 존재할 수 없다. 신의 아이들만이 날개를 갖고 마음 껏 날아다닐 수 있는데, 불행히도 미국에는 신의 아이들도 없고. 날개를 가진 아이들도 없으며. 또 그들이 살고 있을 흑백평등의 이상세계는 어느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흑백을 초월한 평등사회는 낙원이자 현실에는 없는 유토피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