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일의 집 거실이다. 이 집에는 오춘일의 동생인 춘길, 오춘일의 처인 팔녀와
그들의 아들인 용돈, 식모인 만자가 함께 살고 있다.
만자가 작품 초반부터 집안에서 뭔가 썩는 냄새가 난다고 뇌까리듯이
이 집안식구들은 한결같이 부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여기에 갑자기 고리대금업자인 구씨와 오춘일의 딸임을 주장하는 애영이 나타나
눌러앉으면서 혼란스런 상황이 가중된다.
이 타락상을 보다 못해 출현한 도깨비 신중에 의해 이들의 면면이 더 자세히 드러난다.
오춘일은 바람 피운 아내를 담보로 장인재산을 가로채 교육사업가임을 자처하고 있다.
아내 팔녀는 자신의 부정한 과거를 표면화시키지 않고 남편에게 철저히 무관심하며 산다.
아들 용돈은 농촌계몽을 핑계로 아버지로부터 돈을 긁어내어 놀러갈 궁리에 급급하다.
오춘길은 대학입시에 연거푸 실패한 후 온갖 시험에 다 합격하고 다니며 남을
쓰러뜨리는 데만 희열을 느끼는 인간이다. 구씨와 영애는 물론, 사기꾼들이다.
도깨비가 출몰하는 가운데도 유일하게 착한 심성을 소유하고 있는 식모 만자만은
도깨비를 보지 못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집안에서 나는 악취를 맡지 못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만자는 다른 식구들에 의해 정신병자로 몰려 결국 정신병원으로
실려간다. ‘만자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미친 것으로 되어있어야 해’ 라고 되뇌는
춘일의 고백처럼 멀쩡한 만자가 미친 사람들에 의해 축출된 셈이다.
극단 민중극장의 <도깨비 재판>은 1970년 국립극장에서 초연공연됨.
웅변조의 고발보다 해학을 통해 구원을 모색한 이색적인 작품으로 아내의 부정을 기회로 장인의 재산을 가로챈 오춘일의 가정에 뛰어든 춘일의 사생아 애영. 시험이라면 국전, 현상소설, 조종사 면허 등 모든 시험에 합격한 춘길, 농촌 계몽을 간다고 타낸 돈으로 해수욕장으로 가는 용돈 등 제각각의 주장과 저마다의 인생을 사는 묘한 성격의 가족들이 엮는 희비극이다. 때 묻지 않은 식모의 눈에 비친 이 기이한 가정에 마침내 도깨비의 논고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해결이나 구원이 될 수 있을는지….
이 작품 '도깨비재판'을 썼을 때
"내가 까닭 없이 모든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을 때인 것 같다." 고
이근삼 작가 스스로 술회하였다.
이 작품 내에서 작가의 분신이자 재판관 격인 도깨비 신중은
그야말로 부패한 세상에 대해 격렬한 분노를 표출한다.
자신이 창조한 극중인물에 분노하며 당시 사회상에 일침을 가하지만
작가 특유의 유모어가 바탕되어있어 쓴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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