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이서의 첫 번째 희곡 〈잉골슈타트의 연옥〉이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소도시의 종교와 집단의 억압을 묘사하였다면, 두 번째 희곡 〈잉골슈타트의 공병대〉는 억압상태에 처한 사회적 하층 인간들을 그리고 있다. 플라이서가 훗날 이 작품에 대하여 “소인들의 절망적 상태에 대한 것이라고 회고한바 있듯이, 여기서는 억압당하는 하층계급의 인간들, 즉 하녀 들이나 하급군인들을 그리고 있다. 플라이서는 하녀들이 착취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인간답게 되는 길은 사랑에서 그 유일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터이나 그 사랑이란 애당초 제대로 시작도 되지 못한다. 그들은 군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군인들 또한 하루 종일 억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서, 자신들이 받는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타인을 억압하게 된다. 말하자면 군인들도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플라이서에 의하면, 1차 대전 후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에는 잉골슈타트에 군인이 없었는데, 1926년 도강훈련을 목적으로 퀴스트린(KiLstrin)에서 공병대들이 이 마을로 들어왔다. 이것을 '침략'처럼 여긴 플리이서가 브레히트에게 이야기하였고, 그 소재에 관심을 가진 그는 그녀에게, 소도시에 진주한 군대가 그곳주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자세히 관찰하여 작품을 쓰도록 권하였다. 이것을 동기로 플라이서는 14장으로 된 희극을 만들어냈고, 1928년 드레스덴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이야기는 1926년 잉골슈타트에서 일어난 것으로 설정된다. 이 도시에 교량을 건설하기 위하여 공병대가 몇 주일간 진주한다. 군인들은 격심한 군대 훈련과 작업에서 오는 피로를 무방비 상태에 있는 마을의 처녀들에게서 풀려고 한다. 그럼에도 순진한 하녀 베르타는 위대한 사랑을 꿈꾸면서 공병 칼과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칼은 그녀에게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것인가에 대하여 계속 경고한다. 한편 사업가인 베르타의 집주인은, 자신의 용기 없는 아들이 성적으로 첫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녀와 연결시켜주려고 한다. 주인 아들에게 매력을 못 느낀 베르타는 저항하지만, 그 때문에 주인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주인집 아들은 동네 처녀들의 관심을 빼앗아가는 공병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강 위에 설치된 줄사다리를 파손한다. 이 일로 인하여 부하를 잔인하게 괴롭히던 상사가 강물로 추락하고 부대원들은 그 벌로 야간작업을 하게 된다. 자신의 약점을 야비한 방법으로 극복해보려던 주인집 아들은 군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공병대가 철수하기 직전에 베르타는 칼에게서 자신이 행복이라고 꿈꾸어왔던 것을 달성하지만, 곧 실망하고 만다. 베르타의 약삭빠른 친구 알마는 항상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남사들과 흥정하다가, 결국 베르타의 주인 집 아들을 유혹하여 그의 신부가 되어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는다.

플라이서는 이 작품에서 억압과 착취의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있다. 즉 남성세계에서 행해지는 여성 착취라든지, 고용자의 피고용자 착취, 군인세계에서 상급자의 하급자 억압, 또는 제복 착용 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하는 억압 등을 예리한 시선으로 분석한다. 전쟁 (1차 대전) 후 남자들이 부족한 실정에서 작은 도시에 공병대가 주둔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다. 한 남자와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고 있는 처녀 베르타에게 공병인 칼은 남자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도 지나가는 남자이므로 사랑에 빠져서 상처받지 말라고 경고하며 순간만을 즐기자고 한다(4장). 그리고 여자가 자신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려는 것을 거부하고, 여자를 한순간의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성적 대상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하루 종일 기합을 받아야 하니까, 여자들한테서 푸는 거야. 여자는 그걸 알아야 해."
베르타의 고용주인 집주인은 하녀의 외출을 금지시키면서까지 그녀의 노동력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그녀를 아들의 성적 실험대상으로까지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녀가 고분고분하지 않고 반항하며, 게다가 자신의 아 들을 따돌리고 다른 공병과 어울려 다니므로, 힘을 내세워 하녀를 위협하고 억압한다.
"난 널 굴복시킬 수도 있어, 이 사람아. 널 괴롭게 할 수도 있고. 넌 내 수중에 있다는 걸 알아야지."
그러나 낭만적 사랑을 기대하던 순진한 처녀 베르타는 결국 공병 칼이 떠나기 직전 그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하며 사랑의 이름다운 순간을 상상하지만, 결국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현실에서 실망과 환멸을 경험할 뿐이다.
"우리는 중요한 것을 빠뜨렸어요. 사랑이 빠졌단 말이에요," 그리고 칼은 자신이 군인신분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핑계로 삼는다.
플라이서는 이 작품에서 군대 내부의 권위구조와 억압구조를 보여준다. 일반병인 콜은 상급자보다 먼저 여자들을 채간다는 이유로 민간인들 앞에서 상사로부터 기합을 받는 수모를 겪는다. 이에 복수하기 위하여 콜은 다리 공사에서 파업을 시도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야간작업이라는 단체기합이다, 가혹한 전임 상관이 떠난다 해도 곧 비슷한 유형의 후임으로 대체될 뿐이다. 또한 상사라고 할지라도 그 위에 또 여러 계급의 상관이 있으므로 위로부터 가해지는 억압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상사 : 아래로 내려갈수록 분노가 강렬해지는 거야. 그리고 더욱더 영향력을 미치지. 억압은 아래로 내려가는 법이지." 이같이 억압의 사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증오는 억압구조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을 향하여 폭발한다. 이것은 술에 취한 두 명의 공병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젊은 민간인 남자, 즉 베르타의 주인집 아들을 잡아 자루 속에 넣고 골탕을 먹이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플라이서는 이 작품을 발표한 후, 군인세계를 알지도 못하는 여성으로 군인에 대한 극을 썼고 또 잉골슈타트 시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보수적인 민족주의 진영의 언론으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또 후원자라고 믿었던 브레히트도 스캔들이 확대되는 것이 두려워 공연과 출판을 금지시켰으므로 실망한 플라이서는 브레히트와 절교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플라이서의 의도는 단순히 군인세계나 군대생활 자체를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남성 집단의 한 형태인 군대라는 집단이 한 작은 마을과 그 마을의 사람들에게,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여성들은 어떤 상처를 받게 되는지를 사회비판적인 여성의 시각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이었다.

Marieluise Fleißer
마리루이제 플라이서는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잉골슈타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일생을 마친, 20세기 독어권에서 가장 인정받는 여성 희곡작가 중 한 사람이다. 1926년 플라이서가 베를린에서 자신의 첫 희곡작품 〈잉골슈타트의 연옥〉이 초연되었을 때 그녀의 나이는 25세였다. 그 공연은 당시 대 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헤르베르트 이어링 같은 극비평가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마리루이제 플라이서는 창조적인 조형 예술가이다. 엘제 라스커-쉴러 이후 독일 문학에서 첫째가는 여성이다. 신기하게도 엘제 라스커-쉴러는 한 지방과 한 인간유형이 몽유병자처럼 극중 인물과 무대동작으로 확실하게 포착되는 〈부퍼 강〉을 쓰고, 마리루이제 플라이서는 직관적으로 바라본 다양한 인물들 안에 들어있는 자신의 고향을 극적으로 포착한 희곡 〈잉골슈타트의 연옥〉을 쓴다.
플라이서의 고향도시를 무대로 한 이 작품은 브레히트와 리옹 포이히트방어의 도움으로 공연이 성사되고 성공을 거두었으나, 역시 브레히트의 권고로 쓴 두 번째의 희곡 〈잉골슈타트의 공병대, 1929〉는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켜서 플라이서로 하여금 결국 연극계와 문학계를 떠나도록 하는 사건이 되었다. 그 이후 플라이서는 나치 시대를 겪으며 침묵을 지키다가 1960년대에 와서야 젊은 작가들 리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 마틴 슈페르에 의해서 재발견되어 르네상스를 맞는다. 이때 플라이서의 극은 흔히 비판적 민중극이라고 불리는 드라마 장르와 연결되어 호응을 얻었다. 비판적 민중극의 전통은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에서 고유한 것으로, 플리이서의 두 작품 〈잉골슈타트의 연옥〉과 〈잉골슈타트의 공병대〉는 1968년이후 이 장르에서 독어권의 대표적 전형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브레히트의 권유로 쓰이고 바이마르공화국 말기에 민족주의 언론으로부터 비방을 받았던 이 두 작품을, 플라이서는 1968년과 1972년에 브레히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다시 썼다. 그리고 덜 알려졌으나 나중에 재발견된 플라이서의 작품, 브레히트와 드라브스-티히센의 관계를 다룬 실화극 〈심해의물고기〉는 두 가지 면에서 페미니즘 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나는 브레히트가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에 여성들과 함께하였던 '공동작업’ 에 대한 풍자적 묘사라는 것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두 예술가와 그 사이에 있는 여성 작가의 삼각관계를 스트린드베리가 이성 간의 암투를 그리듯이 여성적 시각에서 그렸다는 점 때문이었다. 플라이서는 이후에 두 편의 드라마, 역사극 〈칼 슈투아르트〉(1937〜1944년)와 민중희극〈강한 종족〉을 포함하여 생전에 다섯 편의 드라마와 한 편의 소설, 31 편의 단편을 썼고 에세이식의 산문도 썼다.
플라이서는 자기 인생의 중심이었지만 그녀에게 상처를 준 바이에른의 고향도시 잉골슈타트를 배경으로 두 작품을 썼다. 포용성 없는 종교적 분위기, 소시민적인 편협성, 지방적인 비굴함과 부자유, 독선과 탐욕, 억압당하는 성, 가족과 교회와 패거리집단의 지배적 편견들에 의한 강요, 이러한 것들은 플라이서 자신의 경험인 동시에 작품의 소재이다. 플라이서의 작품들은 사회상을 보여주는 그림들이며, 인물들의 태도나 결함 있는 자세를 매우 간결한 윤곽으로 나타내 보인다. 즉 소도시의 숨 막히는 분위기에서 사는 인간들, 소도시의 억압에 의해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불구가 된 인간을 보여 준다.
이 인간들은 외톨이로 고통 받음과 동시에 적응하고 굴종하려고 몰려든다. 여기서 작가는 사회적으로 손상된 인간을 정확히 분석하고 평가하여 섬뜩한 몽환적 그로테스크로 발전시킨다. 이러한 악몽 사이에서 긴장이 발생하는 것이다.
플라이서와 브레히트의 만남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소설〈아방가르드〉(1963)에서는 작가로서 또 여성으로서 브레히트와의 만남이라는 분열의 시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플라이서는 고향 바이에른의 인물들을 강렬하게 그린다. 그러나 브레히트와의 공동 작업으로 그녀의 소재는 과격해지고, 그녀의 시선은 사회적 갈등과 그 원인을 향하여 열리게 된다. 플라이서는 인물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억압과 잔인성을 기술하며, 자신이 밟히지 않기 위하여 상대방을 짓밟는 구원받지 못하는 사회를 표현한다.
1960년 이후 사회비판적 민중극이 재발견되고 등장인물들이 억압적 관계에 의해 일그러져 상투어나 표제어로밖에 자신을 표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흐르바트와 더불어 플라이서도 발견되었다. 크뢰츠, 투리니, 슈페르, 좀머, 파스빈더 같은 젊은 세대 극작가들은 플라이서 에게서 문학적 모범을 발견하고 그녀의 양식을 본받는다. 플라이서의 작품들은 정치적 해석도 가능한 것이었는데, 작가 자신은 결코 의식하지 못한 일이었다.
플라이서는 소도시의 종교적 사회적 억압뿐만 아니라, 이성 간의 대립적이고 억압적인 관계도 제시하고 있다. 비록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지 않았으나, 플라이서는 분명히 여성적 시각에서 작품을 썼으며. 여성 억압을 조장하는 사회구조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녀의 모든 작품들은 거의 남성들과 여성들에 관하여 쓰인 것으로서, 그들에게 갈등을 일으키게 히는 기대들과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플라이서 작품의 여성 주인공 들은 대개 남자들에게 착취당하는 여성으로, 자신의 소망과 출구 없음 사이의 모순을 계속 체험하고 있다. 플라이서는 그들에게 자신들이 경험하는 것과, 남성들의 작품에서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말하고 느끼도록 한다. 〈잉골슈타트의 연옥〉,〈프리다 가이어〉, 〈심해의 물고기〉같은 작품에서 플라이서는 교육받은 강한 여주인공을 만들어 이 여성의 독립에 대한 욕구가 제한된 여성역할 때문에 좌절됨을 그리고 있다. 이 경우에 플라이서는 경제적 심리적 의존성이나 육체적 잔인성, 정신적 무자비함. 영원한 여성성에 의한 구원 신화를 주제로 삼는다. 그리하여 플라이서의 작품들은 고향과 소도시 풍경을 그리고 있으나, 사회에 대한 예리한 시선, 일상성의 심층 분석, 배후에 깔린 유머, 방언 등을 사용하여 비예술적 인상을 주는 언어예술 둥 비판적 사실주의 묘사방법을 구사함으로써, 이전의 민중극이나 향토문학과는 다른 “무자비한 전원시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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