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세르반테스 '사기꾼 페드로'

clint 2015. 11. 12. 09:30

 

 

 

 

 

〈사기꾼 페드로〉는 아주 독특한 성격의 작품이다. 우선 피카레스크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어찌 보면 최초의 피카레스크 희곡이라 볼 수도 있겠다. 또한 주인공의 이름인 '페드로 데 우르데말라스' 는 이미 기존의 많은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로 사기꾼과 식객(食客)의 전형적 인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악한이나 사람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사기를 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페드로라는 인물을 독창적으로 창조했다. 작품을 보면 페드로가 비록 사기꾼이긴 해도 부정적으로만 그려지지 않고,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항상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밉살스럽지 않고 오히려 친근감 있는 낙천적인 인물로 제시된다. 이 작품은 당대 민중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성 후안 축제와 같은 서민의 풍속과 전통, 미신과 속담 등을 묘사하고, 집시들의 노래와 춤을 삽입해 뛰어난 연극적인 효과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등 풍속적인 가치도 아주 높다. 즉 민중적이며 피카레스크적인 맛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또한 이 작품의 주제를 희극적인 사건과 상황과 우스꽝스러운 인물, 통해 단순히 관객을 위한 재미만 추구하는 것으로 삼지는 않았다. 여러 직업을 거쳐 결국에는 왕이나 귀족이나 성직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이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신분 상승에 대해 약간 기대하고 있던 페드로는 여러 직업을 거치다가 결국 우연한 계기에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룬 벨리카와 사랑에 빠지지만 실패하고, 마침내 무대 위에서 모든 역을 다할 수 있는 배우가 된다. 그는 인간의 이상 실현에 대한 욕구의 성공과 좌절, 실패에 굴하지 않는 낙천적인 삶의 태도, 끊임없이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모습, 허구와 현실의 문제 등 당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작품에 그려진 그의 삶의 역정에 투영했기에 이 작품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이러한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을 피카레스크 희곡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선 주인공인 페드로가 전형적인 피카로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야. 1막에서 말도나도와 나누는 긴 대화에서 페드로가 자신의 삶의 역정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의 인생, 즉 부모를 모르고,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여러 나쁜 버릇을 갖게 되고, 고아원을 뛰쳐나와 여러 주인을 따라 세상 이곳저곳 다니며 목숨을 부지하며 배고픔과 심한 구타를 경험하게 되고, 그러면서 속임수와 사기를 배우게 되고……. 이 모든 것이 전형적인 피카로 삶의 모습이다. 또한 페드로는 극중에서도 여러 가지 속임수와 사기 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피카로의 악행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그의 행각을 통해 사회의 여러 가지 불합리한 점을 풍자하고, 당시 만연해 있던 인생과 연극, 현실과 허구, 현실과 꿈의 문제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페드로가 장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나 배우가 되려 할 때 페드로에 따르면, 장님은 비록 보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에 만연된 거짓되고 위선적인 측면을 걸러낼 수 있었어. 바로 그런 스승 때문에 페드로는 수만 가지 속임수를 배우고 자신의 재치를 더욱 갈고 닦을 수가 있었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세상이 '잔인하고 살벌한 세상' 이라는 것과 그 안에서 수많은 사기 행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페드로는 이러한 가르침과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통해 인간이 사악한 마음과 무지몽매함으로 인해 본질과 현상, 진실과 거짓, 언어 소리와 의미를 구별하지 못하고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사람들은 모두 거짓과 속임수와 위선과 무지와 미신이 가득한 이 세상, 즉 '세상이 라는 연극' 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각자 맡은 역할을 하는 배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좋은 사람, 덕이 많은 사람, 위엄 있는 사람, 신중한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3 막에서 페드로는 자연의 존재 이유를 다양성으로 규정하고 다양한 모습을 띠는 것이 신이 우리에게 내린 소명이라고 말한 뒤 마침내 세상이라는 연극판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즉 페드로는 하나의 사물이나 실체가 다른 사물이나 실체와의 확실한 경계를 허물고 다양성으로 충만한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클레멘시아와 클레멘테 사이의 문제와 베니타와 파스쿠알 사이의 문제에서 말의 소리와 의미 사이의 경계를 다루고 있다. 페드로는 클레멘테에게, 자신을 아름답다고 칭찬해주는 말을 싫어하는 여자는 하나도 없다면서 클레멘시아의 아름다움을 항상 칭찬하라고 충고해준다. 페드로는,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항상 거짓된 완벽한 은유적 표현과 아무 장식 없는 불완전한 표현 사이를 방황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천한 허구로서 현실의 일그러진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현실의 일그러진 모습과 현실 그 자체의 경계를 스스로 허물어버리고 있고, 언어에 대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남용으로 인해 변형되는 현실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당시 불행한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욕망의 발로로서, 그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런 측면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사기꾼 패드로〉에는 이외에도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풍자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우선 크레스포라는 인물이 풍자적으로 묘사되었다. 그는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되기를 바라고, 스스로 말하길, 많은 돈올 뿌려 시장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곁에는 아부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런 인물들을 통해 그 시대의 통치자를 풍자한 것이다.
시장이 부패한 통치자의 전형은 아니지만 순진하고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 돈을 써서 시장에 당선되었다는 점과 그의 곁에서 아부하는 위선자들을 풍자하려고 했던 것이다. 크레스포가 농부들의 문제와 연인의 문제를 해결할 때 '법' 이나 '순리' 를 내세우며 똑똑한 척하더라도 이는 근본적으로 페드로의 지혜와 책략의 결과이다. 그는 페드로의 뜻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러니까 크레스포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기분에 도취되어 '정의' 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가. 어떻게 보면 크레스포는 자신의 미련함을 깨닫지 못한 채 타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우스꽝스러운 희생자라고 볼 수 있다. 즉 이 장면에서는 크레스포에 대한 풍자보다는 페드로의 재치를 통해 사회를 풍자하는 데 중점이 있다하겠다. 왕과 실레리오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측면을 볼 수 있다. 왕의 비서인 실레리오는 왕이 올바른 정치를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고, 오로지 왕의 쾌락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이것 역시 그 시대의 썩어빠진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왕은 벨리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벨리카는 무척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녀는 이기적이고 허황되고 못된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뭇 남성의 사랑을 온몸에 받으며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희망을 이룬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이 상류층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믿으며 빵을 구걸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남이 구걸해 온 빵을 먹는 데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녀의 이기적인 모습은 다른 집시보다 훨씬 더 집시 적이라고 할 수 있고 - 그 시대에도 사회적으로 가장 천대받던 집시로서- 결말부에서 마침내 벨리카가 왕족임이 밝혀지게 되는데 궁에 들어가서도 그녀의 바탕에 깔려 있는 천박함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벨리카가 집시일 때나 공주일 때나, 그녀의 오만하고 기회주의적이고 배은망덕한 성격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고귀한 신분이지만 그에 걸맞은 고귀한 내적 가치는 지니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벨리카가 왕궁의 일원이 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신분의 고귀함으로 천박하고 이기적인 인간성을 감추고 살았던 왕족을 풍자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품격 있고 고상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던 왕족 역시 본질적으로 일반 백성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보인다. 숲의 궁궐에 머물면서 사냥이나 무도회, 축제, 여자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박한 왕이나 개인적인 질투심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왕비의 모습에서 고귀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더군다나 "욕망이 이미 정도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말하고, 이러한 욕망을 왕비에게 숨기는 왕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속임수와 위선은 왕궁의 권위와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 이 역시 왕실의 부도덕성을 풍자한 것이다. 왕궁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단순히 재미있고 아무런 해가 없는 장난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타락한 정치와 도덕, 사회와 인간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것이다. 또한 닭 장수와 페드로의 에피소드에서도 고위층의 부도덕성을 드러내 보인다. 얼핏 보기에는 페드로가 닭 장수의 탐욕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이 에피소드는 사회 지배충의 몰염치성과 위선과 탐욕스러움을 비웃는, 상당히 의미 있는 장면이다. 페드로는 애국심과 종교적인 자비심을 들먹이며 닭 장수에게 알제리에 억류되어 있는 두 명의 포로를 구출하기 위해 닭 두 마리가 필요하니 닭을 내놓으라고 말하지만 닭 장수는 페드로를 세리(稅吏)로 생각해, 포로구출 같은 일은 정부나 지배층이 하고, 자신과 같은 일반 민중의 재산을 훔쳐가는 일 따위는 하지 말라고 항변한다.
〈사기꾼 페드로〉가 관객의 흥미를 유발 시키려는 목적에서 씌어 진 단순히 재미있는 작품이 아니라 당시 만연되어 있던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한 총체적인 풍자가 깃들어 있는 고품격의 하이코미디극이라 하겠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년 9월 29일 에스빠냐 마드리드 근교의 대학도시 알깔라 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났다. 1571년 터키군에 대항한 레빤또 해전에 참전해 왼팔을 잃는 부상을 당한 뒤 이딸리아 각지를 여행했다. 1575년 귀국길에 마르세유 근방에서 형 로드리고와 함께 터키 해적들에게 사로잡혀 알제리에서 포로생활을 했다. 로드리고가 1577년에 풀려난 반면, 세르반떼스는 다섯번의 탈옥시도 끝에 노예로 팔려가기 직전인 1580년에야 에스빠냐 종교단체의 보상금 지원으로 석방됐다. 1585년 첫 목가소설 [라 갈라떼아]를 출판했으며, 왕립재정부 근무를 위해 쎄비야로 이사했다. 1587년부터 무적함대의 지원병참 참모로 일했는데, 1597년 쎄비야 은행이 파산하자 공금횡령죄로 수감되었다. 이때부터 [돈 끼호떼]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1603년에 수도 바야돌리드로 이주한 뒤 1605년 마침내 마드리드에서 [돈 끼호떼] 1권을 출간했다. 이후 [모범소설들](1613) [시인들의 성지 파르나소스로의 여행](1614) [돈 끼호떼] 2권(1615) 등과 [극작품들과 단막극들](1615)을 출간하며 죽는 날까지 창작열을 불태우다가 1616년 4월 22일 마드리드 중심가의 어느 작은 집에서 향년 68세로 생을 마감했다. 다음 날인 4월 23일 뜨리니다드 수도원에 묻혔다고 전해지나 유해나 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