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피터 바이스 '탑'

clint 2015. 11. 11. 09:02

 

 

 

 

 

 

외부와 단절된 탑 안에서 서커스단의 줄타기 연기자로 훈련을 받으며 자란 파블로는 어느 날 탑을 탈출해 세상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는 탑 밖의 세상에서도 탑의 지배와 속박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다시 탑 안으로 들어간다. 탑 안에는 여전히 자신을 훈육시켰던 서커스 단장과 탑을 관리하는 여인이 최고 권력자로 남아 있고, 자신의 애인 넬리를 죽음으로 이끈 마술사의 횡포도 여전하다. 이들은 처음에는 파블로를 못 알아보았으나 곧 정체가 탈로나면서 파블로를 다시 노예처럼 부리려 한다. 여기서 파블로는 스스로 자진해서 무대에 오르고 싶다고 요청하고 단장은 그에게 목숨을 담보로 단 한 번의 출연 기회를 준다. 그가 도전해야 할 묘기는 이제 외줄타기가 아니라 온몸에 묶인 밧줄을 정해진 시간 내에 풀어헤치고 나와야만 하는 생존 탈출게임이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파블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탈출에 극적으로 성공하게 되고, 그 순간 탑은 서서히 물에 잠기며 막이 내린다.

 

 


이 줄거리를 따르면, 이 드라마의 첫 장면은 파블로가 줄타기 연기자로 무대에 서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거나 첫 번째 탈출을 기도하는 장면이 등장해야 논리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래 전에 탑을 탈출한 주인공이 다시 탑으로 돌아와 문을 두드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A 다음에 B가 온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대신 B에서부터 A가 온다는, 다시 말해 사건의 일반적인 진행을 뒤집어 강조하는 “도역(倒逆)논법 Hysteron Proteron”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탑으로 귀환하는 장면을 전면에 배치시킴으로써 과거에 있었던 탈출과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탈출의 원인을 제공하는 ‘탑’의 공간적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 바이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유래된 이 기법을 드라마에 적용시킨 것이다.

 

 

 

옛날에 파블로는 탑 안에 살았다. 바깥세상에서 그는 제대로 탑을 벗어나지 못했다.
탑은 육중한 중압감으로 그의 내부에 계속 살아 있다. 도망은 파블로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만약 그가 다시 한 번 탑 안에 깊이 들어가서 過去로부터 自身을 分離시킨다면 아마 그는 解放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돌아와서 탑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그것은 그가 바로 自身의 內部로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단장과 여 관리인이 있다. 그들의 손에 의해 그는 자랐다. 그들에 의해 탑의 곡예사로 길들여졌다. 거기에는 향제적인 인물인 카를로가 남아 있다. 거기에는 사랑의 환상인 넬리가 있다. 넬리는 죽었다. 마술사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다. 마술사는 파블로의 內部에서 죽음을 追求하는 모든 것으로 형체 화된다. 마술사는 겉으로 보아서 하는 역이 없는 것 같으나 탑의 가장 강한 힘이다. 사자도 죽었다. 사자는 야성적인 것이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것이다. 몸이 굽고 불구가 된 난장이가 이제는 사자 흉내를 낸다. 전에 파블로는 탑 안에서 커다란 공위에 서서 평행을 유지하는 균형자로 살았다. 이제 그는 그의 새로운 역을 한다. 그 역은 탈출자, 밧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여기 탑 안에서 그는 묶이기를 원한다. 그는 그로부터 탑의 힘을 남김없이 밀어내기를 원한다.
파블로는 니인테 (Niente)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그가 無(Nichts)라는 것을 말한다.
만약 그가 탑에서 解放된다면, 비로소 그는 자기 자신을 얻고 자신의 이름을 얻는 것이다.

 

 

 

 

피터 바이스(Peter Weiss)의 ‘생리적’ 고향은 베를린이지만 그의 문학의 ‘정신적’ 발원지는 네카 강을 끼고 자리 잡은 전형적인 중세도시 튀빙엔(Tübingen)이다. 바이스는 어릴 적부터 줄곧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유목민처럼 자주 거주지를 옮기며 살았고, 나치가 집권한 이후에는 독일을 떠나 영국(1935년), 체코(1937년), 스웨덴(1939년) 등을 전전하며 망명도생했다. 이처럼 “신발보다도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평생 실향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속에 강렬하고 선명하게 각인된 도시가 하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튀빙엔이다. 1928년 바이스가 튀빙엔에 사는 삼촌 오이겐 아우텐리트의 집에 체류한 기간은 불과 반년 남짓밖에 되지 않지만, 이곳에서 겪은 체험은 그의 문학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특히 어린 바이스의 마음에 충격적인 이미지로 고착된 풍경은 그가 매일 김나지움을 오가며 보았던 네카 강변에 위치한 탑 모양의 주택, 즉 70여년 생애의 과반을 미망의 세계에서 헤매다 사라진 천재시인 횔덜린이 유폐되어 있던 ‘횔덜린 탑(Hölderlin turm’)이었다. 요하네스 베허 Johannes R. Becher는 햇빛보다 어둠이 지배하는 ‘횔덜린 탑’을 유택(幽宅)에 비유한 바 있다.
쿠어트 외스털레(Kurt Oesterle)는 바이스 문학이 걸어온 궤적을 그가 체류한 세 도시, 즉 튀빙엔, 파리, 베를린의 지역성과 연관 지어 분석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도시 튀빙엔을 상징하는 ‘횔덜린 탑’을 바이스의 초기 문학세계가 정초된 ‘장소의 혼’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바이스의 초기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세계와의 단절, 심리적 불안, 부모와의 불화, 초현실주의적 환상 등과 같은 주요 테마들은 튀빙엔 체류시절 바이스의 마음속에 화인(火印)처럼 찍혀 있던 ‘탑 이미지’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린 바이스의 심상에 또렷하게 아로새겨진 탑의 첫인상을 다음처럼 묘사하고 있다.
뾰쪽한 지붕을 가진 탑은 빨리 돌아가는 팽이처럼 빙글빙글 휘돌아 하늘로 솟구친다. 삼촌과 아줌마의 안내로 그는 닳아빠진 계단을 밟고 성터언덕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는 지하실 벽 사방에 걸려 있는,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내며 전율하듯 요동치는 끔찍한 고무기구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 인용문이 암시하듯이 “뾰족한 지붕을 가진 탑”과 성의 지하 감옥에 걸려있던 “전율하듯 요동치는 끔찍한 고문기구들”은 어린 바이스의 무의식속에 공포와 고통의 원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게다가 나중에 바이스는 횔덜린 탑을 구경시켜주었던 삼촌이 베를린에서 횔덜린의 정신질환을 치료했던 정신과 의사 아우텐리트의 직계후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1933년 그 삼촌이 괴테의 베르테르처럼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됨으로써 그에게 횔덜린 탑은 단순한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바닥모를 공포와 정신적인 억압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화석처럼 굳어지게 된다. 이처럼 바이스는 ‘시인 중의 시인’ 횔덜린의 삶과 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훨씬 전부터, 시인이 반평생을 정신착란의 징후 속에서 불우한 삶을 살았던 횔덜린 탑이 방사하는 어두운 이미지에 꼼짝없이 나포되고 만다. 바이스는 폴커 카나리스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횔덜린의 시를 알기 아주 오래전에 이미 탑 속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그 시인의 모습은 나의 환영 속에 유령처럼 출몰하곤 했다. 수십 년 동안 탑 안에 감금되어 외부 세계로부터 격리된 채, 오직 자신의 꿈 안에서만 살 수밖에 없었던 그 절박한 상황이 「횔덜린」을 구상하고 집필하게 된 심리적인 계기였다.” 이 대목은 ‘횔덜린 탑’의 이미지가 바이스의 문학세계에서 ‘창조적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읽힌다. 물론 이 심리적 외상이 그의 처녀작 「탑 Der Turm」(1948)을 싹트게 한 맹아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반적으로 탑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상징성을 구현한다. 우선 탑은 인간의 수직적 성향, 즉 신의 왕국에 접근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종교적인 건축물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제11장에 등장하는 노아의 후손들이 바빌로니아에 정착 한 후 ‘하늘에 닿기’ 위해 피라미드형으로 쌓은 바벨탑이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중세시대 위엄의 상징으로 교회 건축물에 높은 종탑이나 첨탑을 설치하는 일이 성행했던 것도 신의 곁에 다가서려는 인간의 수직적인 간구(懇求)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중세의 고탑을 구입해 10년간 자신의 거처로 삼은 시인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의 ‘발릴리 탑 Thoor Ballylee’도 천상과 지상의 변증법적 통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탑의 내부로 시선을 돌려보면 사정은 많이 달라진다. 외부로부터 격리된 탑은 인간을 감금하는 감옥으로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재 시인 횔덜린이 정신착란 증세로 반평생을 보냈던 곳도 탑이었고, 호프만스탈(Hofmannsthal)의 비극 『탑 Der Turm』(1927)의 주인공 지기스문트가 자신의 아버지 바질리우스 왕의 술책에 의해 세상과 격리된 채 고통스럽게 성장한 곳도 탑이었다. 또한 망망한 마르세유 바다만을 바라보며 분노를 삭혀야만했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억울한 징역살이를 한 곳도 이프 성(城)의 탑 지하 감옥이었고, ‘9일간의 여왕’으로 잘 알려진 비운의 영국 여왕 제인 그레이가 조롱(鳥籠) 안의 새처럼 갇혀 지내던 곳도 런던탑이었다. 물론 바이스의 「탑」도 이 목록에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바이스의 탑은 열쇠로 잠근 출입문을 제외하고는 사면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밀폐된 공간이다. “파블로라고 외치는 소리가 탑 안에서 무시무시하게 메아리친다. 사방으로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파블로, 파블로, 파블로!” 이처럼 소리가 어떤 장애물에 부딪쳐 반향 된다는 것은 탑의 사면이 벽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따라서 괴테의 탑이 언제든지 탑 위로 올라가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첨성대’를 연상케 한다면, 바이스의 탑은 옥상으로 올라갈 수도 없고 밖으로도 나갈 수 없는, 비유하자면 미셸 푸코 가 감시사회의 총체적 규율체계의 상징으로 제시한 ‘원형감옥’과 흡사하다.
파블로 : 모든 곳이 다 제한된 경계야, 내가 손을 대는 곳은 모두 경계야. 어떤 말도, 어떠한 감정도 모두 탑 속에 갇혀 있어.
탑은 파블로의 육체를 속박할 뿐만 아니라 그의 언어와 감정, 즉 논리적 이성과 비논리적 감각까지 마비시킨다. 탑은 파블로의 몸과 정신을 세상과 강제 격리시키는 일종의 ‘게토 ghetto’인 것이다.
둘째, 탑에서 전망하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빌헬름이 탑의 옥상으로 올라가 바라보는 풍경은 조화롭고 아름다우며 따뜻하다.
이곳은 완전히 거칠 것 없는 전망이 좋은 평면이었다. 모든 별들이 반짝이는 활짝 개인 밤하늘이, 바라보고 있는 빌헬름을 감싸고 안고 있었다. 그는 높은 천체가 이렇게 웅장한 것인지 살아생전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탑 안에 갇힌 파블로는 “천장에 있는 미닫이 창”을 통해만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좁은 창문을 통해 그가 ‘투시’하는 바깥세상의 풍경은 무질서하고 분열적이며 쌀쌀맞다.
나는 무수히 많은 지붕들을 보았다 - 지주(支柱)들을 보았다 - 가축들 - 연기 - 다채롭게 펄럭이는 천 조각 - 창문을 보았다 - 창문 뒤에 방 - 방 안에 사람들 - 누군가 옷을 벗었다 - 어떤 이는 넓은 붓으로 벽에 그림을 그렸다 -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놀고 있다 - 어디나 사람들 - 혼자든 무리지어 있든.
탑 ‘위’에서 빌헬름이 관찰하는 만유의 세계는 질서정연한 우주라면 탑 ‘안’에서 파블로가 좁은 창을 통해 재구(再構)하는 세상은 개별적이고 파편적인 “초현실주의적 콜라주들”이다. 빌헬름이 원근법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폭넓게 조망하는 ‘견자'라면, 파블로는 큰 것에서 작은 것, 풍경에서 사람으로 점점 시야를 좁히는 근시안자인 것이다.
셋째, 두 탑의 기능이 확연히 다르다. 빌헬름에게 탑은 고요한 정적 속에서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고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수도원과 같은 명상의 공간이다. 덧붙여 탑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관측할 수 있는 전망대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한다. 하지만 첫 번째 탈출을 감행하기 전까지 파블로가 살던 탑은 그의 정신을 억압하고 육체를 감금하던 감옥에 다름 아니다.

 

 

 

이 드라마에서 탑이 갖는 의미와 특징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보자.
1. 탑은 드라마 전체 사건이 진행되는 유일한 무대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탑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사고한다.
2. 탑은 사건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요 동인이다. 파블로는 탑으로부터 벗어난 후 다시 탑으로 되돌아오며 또다시 탑을 탈출한다. ‘탈출→귀환→새로운 탈출’이라는 사건의 변증법적 과정이 모두 탑을 계기로 진행된다.
3. 탑은 하나의 거대한 상징체계이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현실공간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이고 비유적인 가상공간이다. 그렇다면 탑은 무엇을 암시하는 상징적 공간인가?
유태인 출신으로 방직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와 스위스 출신으로 배우로 활동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바이스는 전형적인 시민계급의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부모와 규격화된 시민사회의 문화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 가족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그의 초기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요 테마였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와 인종에 대한 소속을 부인했듯이 나는 내가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는 언급에서 명징하게 나타나듯이, 바이스는 자신을 짓누르는 모든 외부 환경은 물론 가족이라는 가장 친밀한 정서적 공동체마저도 그것이 자신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철저히 부정하려 했다. 자전적인 소설 『부모와의 이별』(1961)에서도 이런 태도는 일관된다. “나는 대들 것인지 아니면 복종할 것인지를 늘 따져보면서, 내 엄마와 아빠라는 인물과 대결해 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나는 내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 길을 떠났다.”
주저 없이 가족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이와 같은 작가의 태도는「탑」에서도 규지(窺知)된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예외 없이 작가의 가족 구성원들을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우선 파블로는 화가 혹은 영화연출자 지망생으로서 자신의 꿈을 잠시 접은 채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방직공장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해야만 했던 작가 자신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그리고 서커스 단장은 권위적이고 기회주의자였던 아버지를, 그리고 이 탑의 여자 관리인은 어머니를 각각 상징하는 인물이다. 또한 극중 카를로 Carlo는 자신의 형을, 파블로의 애인 넬리는 바이스의 예술세계를 유일하게 인정해주고 지지해주었던 여동생 마르기트를 온몸으로 체현하는 페르소나로 읽힌다. 드라마에서 마술사에 의해 죽은 넬리는 1934년 12살의 나이로 요절한 바이스의 실제 여동생 마르기트의 운명과 많이 닮아 있다. 파블로에게서는 친부를 마음속에서 제거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모성마저도 파블로에게는 부정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여자 관리인: 너 뭐라고 애기하는 거니? 나는 너에게 늘 어머니와 같은 존재 였 어!
파블로: 하지만 당신은 내 어머니가 아냐.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어머니를 가지고 있 는 사람은 없어. 여기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어.
파블로의 이런 ‘여성혐오증 Misognie’적인 태도는 혈연적인 가족공동체를 거부하려는 바이스의 의지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파블로의 양아버지 구실을 자처했던 서커스 단장과 여자 관리인으로 구성된 ‘탑 공동체’는 작가가 그토록 부정하려 했던 전통적인 시민사회의 규범, 그 중에서도 특히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고 자유를 찬탈하는 시민사회의 권위주의적인 가족공동체에 대한 이미지, 요컨대 바흐친의 용어를 빌리자면 일종의 ‘크로노토프로 읽힌다.
파블로의 탈출은 두 차례 이루어진다. 파블로는 자신을 줄타기 연기자로 키운 서커스 단장의 전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탈출을 감행했지만, 막상 탑 밖의 세계에서도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 채 자신의 이름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탑 밖의 녹록치 않은 현실이 다시 파블로를 탑 안으로 귀환하게 만든다. 결국 ‘닌테 Niente (=Nichts)’라는 가명 아래 다시 탑 안으로 돌아온 파블로는 서커스 공연도중 자신을 꽁꽁 묶은 밧줄, 비유하자면 자기 자신 속에 잠재된 또 하나의 ‘탑’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두 번째 탈출에 성공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첫 번째 탈출이 파블로의 이름을 빼앗아 갔다면 두 번째 탈출은 그에게 이름을 되돌려 준 셈이다. 1962년 바이스는「탑」에 이 드라마의 내용을 요약한 「방송극을 위한 서막 Prolog zum Hörspiel」을 덧붙였는데, 그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그가 탑에서 해방된 후에야 비로소 그는 자기 자신을, 자신의 이름을 얻는다.
자신의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획득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첫 번째 탈출이 ‘탑 안’에서 ‘탑 밖’으로의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동, 즉 도주에 다름 아니었다면, 두 번째 탈출은 ‘비동일성 Nichtsidentität’의 상태에서 ‘동일성 Identität’의 성역으로, ‘무 Nichts’의 카오스에서 ‘실재 Sein’의 코스모스로 변역(變易)되는 정신적인 차원의 해방을 상징한다.
‘자아의 존재론’이란 화두를 붙잡고 참구한 철학자 피히테 J. G. Fichte는 칸트 철학의 한계를 자아를 유한하고 인간적인 주체로만 이해하는지점에서 찾았다. 즉 피히테는 자아가 언제나 타자에 의해서 제약되고 있는 상황을 불합리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피히테는 무엇보다도 먼저 ‘선험적인 관념론 transzendentaler Idealismus’으로부터 ‘물 자체 Ding an sich’의 개념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그에 의하면 ‘물 자체’란 인간의 의식 밖에 존재하면서 의식 내의 모든 표상들의 근원이 되는 절대적인 의미의 객관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개념으로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물 자체’는 자아의 존재론 속에 포섭되지 못하는 ‘타자’의 다른 이름이다. 여기서 피히테는 자아가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한, 그런 존재는 참된 존재일 수도 없고 경험과 인식의 최고 권좌에 오를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피히테는 자아를 타자의 간섭으로부터 구제함으로써 자아를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구속 받지 않는 “절대적 주체 Das absolute Subjekt”, 혹은 “무제약자 Das Unbedingte”로 승격시키려 했던 것이다. 물 자체에 의해 제약되는 이성이 참된 의미에서 완전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내가 자기 밖의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되지 않는 무제약적 주체일 때만, 나는 참된 통일과 하나됨 속에 있을 수 있다.
인용한 피히테의 말에 기대어 본다면, 오랏줄을 풀어헤치는 파블로의 두 번째 탈출행위는 “어두운 수렁 dunkler Schacht”(PWW. IV. 15) 속에서 “눈부신 광명 blendene Helle”의 세계로, 몽롱한 ‘무의식’ 상태에서 명징한 ‘자의식’의 상태로, 주체를 제약하는 타자의 패각(貝殼)을 깨뜨리고 “오직 내가 자기 밖의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되지 않는 무제약적 주체”로 거듭나는 존재론적 도약의 과정을 상징하는 철학적 퍼포먼스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탑은 자의식을 억누르는 폭압적인 ‘타자’의 메타포로 읽힌다. 파블로는 외줄타기 묘기를 선보이는 서커스 단원이다. 그 외에도 사자로 분장한 난쟁이, 속임수로 관중들을 현혹시키는 마술사, 맹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조련사 역시 모두 자신의 장기를 관객들 앞에서 펼쳐 보이는 무대 연기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는 자발적인 창조적 예술행위로 보기 힘들다. 특히 줄을 타는 파블로는 단장과 여자 관리인의 명령에 의해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내용 없는 역할연기”를 무의미하게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파블로가 탑으로 귀환한 후 자진해서 펼치는 탈출묘기, 즉 자신을 묶은 오랏줄을 정해진 시간 안에 풀고 나오는 연기는 예술적인 경지로 승화된다. 파블로가 보여준 필사의 몸부림은 더 이상 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숙련된 기술자의 쇼가 아니다. 갓난아기 탯줄을 자르듯이 밧줄을 풀어헤치고 뛰쳐나오는 파블로의 연기는 그를 타율적인 역할 연기자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예술가로 거듭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통과제의이다. 바이스는 자신의 예술관을 이렇게 피력한 바 있다. “나는 내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 나의 모든 작업은 해방을 위한 시도이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전력을 쏟는 파블로의 모습에는 예술을 삶의 본질이자 목적으로 확신하는 바이스의 치열한 예술혼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탑은 예술의 진정성을 시장의 상품성으로 교환하는 “사이비 예술체제”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바이스는「탑」을 완성하기 3년 전에 이미 파블로의 전신(前身)을 수묵화 「퍼레이드」속에 그려 넣은 바 있다. 서커스천막과 폐허로 둘러싸인 무대 위를 동물인간, 광대, 도둑떼, 해골인간 등이 어지럽게 뒤섞여 행진함으로써 한껏 죽음의 공포를 자아내고 있는 그림이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할 인물은 그림의 정중앙에 위치한 어릿광대이다. 코 위에 공작 깃털을 세우고 양팔을 벌려 몸의 균형(왼손에 든 천칭은 중심을 놓치지 않으려는 어릿광대의 의지를 반영한 오브제이다.)을 잡으려 애쓰는 어릿광대의 모습은 폭력과 파괴가 난무하는 사이비 예술체제의 한복판에서 진정한 예술의 실현을 위해 몸부림치는 파블로의 실존적 고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바이스가 진정한 예술이란 결코 안정된 일상의 평범한 삶 속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고립을 견뎌내고 고통의 산도를 통과함으로써만 얻어지는 시련의 산물이라고 확신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작가의 이와 같은 예술관은 1966년 프린스턴 대학의 연설문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창작활동 초기에는 나는 단지 내 자신의 존재만을 생각했다. [...] 가능하면 나는 오랫동안 내 자신을 은신처에 숨기려 했다. [...] 예술은 자발적인 고립에서 빚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관에 비추어 보면 탈출했던 탑으로 되돌아오는 파블로의 행동은 “자발적인 고립”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으며, 파블로의 전신을 옥죄던 오랏줄은 진정한 예술을 세상에 내놓기 위한 출산의 고통을 암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파블로에게 탑은 탈출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통해서만 벗어날 수 있는 영어(囹圄)란 점에서는 마땅히 ‘지양’되어야 할 부정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진정한 예술탄생의 모태란 점에서는 반듯이 ‘지향’되어야 할 긍정의 대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