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뒤렌마트 '베가 호의 탐험'

clint 2015. 11. 11. 08:31

 

 

 

“베가호의 탐험”(Unternehmen der Wega)〉(1955)에서는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계에서 평화의 절규가 울려오고 있다. 동서진영에 사는 지구인들은 자기 고향이 아무리 아름답다 할지라도 그에 만족치 못하고, 더욱더 넘은 공간을 점령하려고 하는 반면에, 금성에 사는 사람들은 죽음을 동반하는 사나운 날씨에 이리서리 휘몰리며 순간순간 가장 필요한 일만을 하고, 올바로 행동하는 데 온갖 정신을 집중하며 제한된 생활을 해가고 있다. 지구에서 온 방문객들은 금성 인들이 아무 편도 들수 없는 상황을 알면서도, 혹시 적국이 파괴 및 점령 작업을 할 때 그들을 이용하지 않을까 하여 금성에 폭탄을 떨어뜨린다. 이 우주비행 자들의 이야기는 과학적 허구와 평화주의 적 설교의 혼합으로 오늘날엔 현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 같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 1921~1990)의 '베가호의 탐험'은 이러한 과학소설의 뿌리 깊은 근원 가운데 하나인 유토피아 문학의 현대적인 변형을 보여준다. 뒤렌마트는 스위스 출신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서 자국 뿐 아니라 독일어권 문학에서도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작가이다. 그는 비록 전형적인 SF작가는 아니지만, 베르톨트 브레히트 못지않게 서사연극의 옹호자로서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전후 작품에 반영해왔으며<베가호의 탐험>는 이러한 의도를 유토피아적인 색채로 그려낸 사회풍자 희곡이다. 원래 유토피아 문학은 단순한 풍자문학의 한계에서 벗어나 신랄한 비난에만 머무르지 않고 나름대로의 대안적인 세계를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베가호의 탐험>에서 뒤렌마트가 제시하는 금성의 이상향 같지 않은 "신판 이상향"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희곡작가로서 첫 연극을 무대에 올렸을 때부터 논란에 휩싸였을 만큼 사회의 부조리에 첨예한 메스를 들이대온 뒤렌마트이기에) 그가 제안하는 이상향의 요절복통할만한 묘사에 정신없이 배꼽을 움켜쥐기 전에 먼저 약간의 역사적인 이해를 한다면 좀 더 작가가 시사하는 바를 잘 포착할 수 있으리라 본다.

 

 

 

원래 라디오 방송 대본용이었던<베가호의 탐험>이 집필되던 해는 미소 냉전으로 온 세상이 싸늘하게 식어가던 1954년이다. 그 무렵 미국 작가들 대부분이 표현하고자 하는 장르가 무엇이건 간에 메가시즘의 늪에 허우적대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데에 반해, 이 스위스 작가는 그로부터 5~6년 후면 냉전의 상징물인 베를린 장벽이 유럽 한복판에 세워지리란 사실을 내다보았던 것일까. 세상과 사회가 본질적으로 부조리하다는 인식을 평소 지론으로 삼아온 뒤렌마트는 미국인들 및 소련 인들과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도 오히려 한발 뒤로 물러서서 냉전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공허한지, 그리고 인간 본연의 심성으로부터 얼마나 일탈해 있는지 우스꽝스러운 상황전개와 인물설정으로 극명하게 과장하여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이 작가는<베가호의 탐험>를 빌어 냉전을 지탱해가는 어느 한쪽을 편들거나 비판하기보다는 양쪽 다 인류 전체를 피폐하게 만들고 만인을 우롱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고 조롱한다.
때는 미국과 소련의 양대 이데올로기를 축으로 태양계의 모든 인류가 반목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일촉즉발의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근 미래. 서방진영은 외교사절단을 보내 금성에 이주한 지구인과 그 후손들을 설득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획책한다. 금성의 두터운 구름은 적으로부터 중요한 군사시설을 감추어줄 뿐 아니라 불시의 공격에도 눈치 챌 수 없는 천혜의 전략적 군사거점으로 판단된 까닭이다. 그러려면 우선 금성 이주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골치 아프게도 이 이주민들은 죄다 추방당한 범죄자이거나 그 후손들이었다. 이 대목은 마치 호주의 초창기 개척이민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전략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된 서방 외교 사절단은 자기편을 도와 전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지구로의 귀국과 사면을 보장하겠다며 금성인들을 꼬드기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이미 금성에 적응한 이주민들은 새로운 가치와 이상에 맞춰 살아오고 있었던 탓이다. 이들은 인구가 이백만이 넘지만 하나같이 극단적일만치 무정부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 행성 전역에 삼삼오오 흩어져 산다. 그들에게는 정부도 없고 권력도 없으며 의회도 없고 지도자도 없다. 그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이따금씩 만나 서로 도와주고 살 뿐이다. 이것은 지구에서 태어난 인류가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각박한 금성의 환경이 이주민들로 하여금 권력투쟁이나 조직결성보다는 힘을 합쳐 당장 눈앞의 환경을 극복해나가는데 급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정은 실제로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가혹한 환경일수록 독재가 출현하기 쉽다. 하지만 풍자문학의 의도를 감안해서 이에 대한 사회학적인 정합성 문제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매번 바뀌는 금성 전권대표들과의 회담은 결국 결렬되고 만다. 이른바 금성인들은 서방연방과 함께 총을 드는 일보다는 고기잡이에, 아기 분만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지구인 식으로 자기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면서 싸우기보다는 비록 가혹한 환경이긴 하지만 십시일반해서 서로 도와가며 사는 현실에 만족하기에 서방 외교단의 유혹에 전혀 동요되지 않는다. 굳은 결심으로 저항하기는커녕 아무런 흥미조차 못 느끼는 것이다. 금성에서는 그 누구도 지구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지구인들은 금성인들을 꼬실만한 당근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금성인들을 동조세력으로 끌어들이는데 실패한 외교사절단은 본색을 드러내어 핵탄두를 금성에 겨눈다.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을 것이라는 금성인들의 주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혹여 소련의 편을 들어줄까봐 불안했던 것이다. 냉전시기에 제3세계 국가들을 미국이 군사/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 해당 국가의 정치체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소련과 적대적인 관계설정에만 염두를 두었던 현실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은 원조를 받는 국가가 독재나 권위주의 지배체제로 경직되어 있건 말건 소련과의 이데올로기 전쟁에 자기편으로 가담해주기만 하면 해당국가의 구조적 모순에는 눈을 감았다. 반대로 그 국가가 아무리 민주적인 체제라 해도 미국에 배치되는 노선을 보인다면 미국은 갖은 방해공작을 통해 정권을 무너뜨리려 들었다.
아무런 위해를 지구에 가하지 않았음에도 금성인들이 핵탄두 공격을 받는다는 결말, 그리고 그러한 선택에 대한 지구인들의 합리화("행여 소련쪽에 빌붙지 않게 해야 한다.")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원래 라디오 대본으로 씌어졌기에 대화체로만 구성된 문장은 이 작품의 해학을 더욱 강화해준다. 양측 대표단의 동문서답하는 대목은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는 핵무기에 반대하고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을 지지하는 등 세계 평화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베가호의 탐험>는 신랄한 정치풍자가 드문 미국 과학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진기한 작품이다.
한 가지 부연하자면 이 희곡은 실제 금성의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묘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뒤렌마트가 묘사하는 금성은 그 조건이 아무리 가혹하다한들 기기묘묘한 동식물들과 변화무쌍한 지각변동이 상존하는 생명이 존재하는 땅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탐사자료에 따르면, 금성 지각표면은 섭씨 400도 내외의 고온으로 물은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으며,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주류를 이루는 불모의 땅이다. 만약 이곳에 유형지를 건립하려다간 그 비용이 더 엄청나게 들 것이다. 하지만 이점은 너그러이 보아주자. 이 작품의 초점은 금성에 생명이 살 수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인간의 헛된 이데올로기 투쟁을 풍자하는데 있으니까. 더욱이 이 작품이 발표된 1954년만 해도 금성에 대해 천문학적 관측을 통해 알려진 바가 그다지 없었으며 어차피 뒤렌마트는 과학자가 아니라 작가인 만큼 그러한 오류가 작품의 본질을 가릴 정도로 크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보다 중요한 것은<베가호의 탐험>같은 작품은 어느 시대고 반복되는 당대 사상에 대한 풍자적인 시금석이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