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2년의 〈스트라니츠키와 영웅 (Stranitzky und der Nationalheld)〉에서는 이름 없는 어느 상이군인의 고통이 신문, 라디오 등의 매스 미디어에 의해 과장된 어느 정치인의 고통에 대치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불구가 된 과거의 축구선수 스트라니츠키는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웅과 접견함으로 해서 마침내 하나의 인정받는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희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무참하게 깨어지는데, 뫼베의 국가적, 사회적 행위란 단지 하나의 정치적 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로테스크하고 부조리한 희극적 요소는 뒤런마트의 문학세계에 있어서 코미디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방송극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방송극이란 믿기 어려운 영역의 사건을 안방에 있는 청취자들에게 귀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므로 무대 위에서 공연될 수 있는 연극과는 다르다. 즉 비공간적인 그 무엇을 언어의 암시력을 통해서 개개인의 청취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송극에서는 무대 위에서와 같은 대화의 성격은 전혀 없다. 그래도 對話(다이얼로그)란 말을 사용한다면, 이는 무한한 것과의 대화로서 공간을 초월한 저 편 세계의 요소까지를 울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적인 특성 때문에 방송극에 매력을 느꼈고, 자신의 재능을 현대의 기구로도 시험해 보았던 뒤런마트는<현대 문학의 의미에 대하여>(1956)라는 논평에서 연극과 영화와 방송극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영화와 텔레비전 에서는 열쇠구멍을 통해 구경하고, 극장에서는 요지경 속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면, 방송극에 있어서는 열쇠구멍이 없는 닫혀 진 문 옆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헌데 어떤 것이 더 훌륭하나 하는 질문은 쓸데없는 짓이다. 그것은 모두가 다 그 나름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방법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방송극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청취만 한다는 한 가지 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방송극의 커다란 가능성인 동시에 커다란 약점이기도 하다. 이런 방송극에 반하여 연극의 장점은, 또한 영화 나 텔레비전의 장점은 언어가 직접적인 매개체로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클라이맥스로 도달된다는 데 있다. 연극은 방송극보다 감정을 훨씬 더 고양시켜 준다. 세상 사람들은 방송극에서는 청취에 한정되고, 영화에서는 그림에 한정되어 있다. 이 두 경우 에 모두 너무나도 은밀한 언행이 요구되고 있다. 영화에서 사람들이 옷을 벗는 것을 구경한다면, 방송극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뒤런맛트의 작품을 희망하는 수천 개의 극장이 있을 뿐 아니라 그외에도 신문사, 출판사, 잡지사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 등이 수없이 많다. 그의 작품은 여러 해 전부터 가지가지의 형태로 이 지구를 맴돌고, 그의 언어는 공중을 날아다니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읽고 보고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1946년(25세), 바젤로 이사, 이듬해에 여배우(로티 가슬러)와 결혼했고, 1948년 그의 명성을 높인 희곡<로물루스(Romulus) 대제>를 썼다.
이어 희곡<<미시시피 씨의 결혼>>(1950), 방송극<<당나귀 그림자 재판>>(1951) 등으로 일약 드라마와 방송극문학사에서 일대 선풍을 일으켰다.
1952년 노이샤텔로 이사했는데, 이 해에<<미시시피 씨의 결혼>>이 뮌헨에서 초연되어 국제적인 명성을 높였다. 그는 희곡 이론서<<연극의 제 문제>>(1954), 희곡<<노부인의 방문>>(1954)을 썼다.
베른시 문학상 (1954), 전쟁맹인들의 방송극상 (1957), 프릭스 이탈리아 및 로잔느 객석 문학상(1958), 만하임시 쉴러 연극상(1959), 뉴욕비평가상(1959), 등 수상으로 연극계의 세계적 인사가 된 그는 스톡홀름. 프라하. 마드리드. 런던. 도쿄 등 세계 각지에서 무대에 오르는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은 작가로 군림했다. 특히 쉴러 상 수상 연설은 브레히트 연극론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 과학자의 양심을 다룬 걸작<<물리학자들>>(1961)을 창작한 뒤, 제4회 러시아 작가회의 참가(1967), 베른시 대 문학상(1969) 수상, 필라델피아 탬플 대학 명예박사 수여 (1969), 이스라엘에서 명예교수직 얻음(1974), 오스트리아국가상 및 칼 추크마이어 메달 수상(1984) 등 고령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활동했다.
뒤렌마트가 추구하는 문제는 현대사회와 인간의 존엄성 옹호이다. 그는 문학과 정치의 분리를 주장하면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둘 다 신랄하게 비판한 작가이자, 비인간화 현상에 대하여 가장 날카롭게 지적하는 문명 비판적 시각을 갖춘 극작가였다.
프리츠 마르티니는<<독일문학사>>에서 뒤렌마트를 이렇게 평했다.
브레히트를 수용하고, 시대와 시민을 비판하고, 인도적이며 도덕적인 충동을 사람에게 주고, 또한 괴담과 그로테스크로써 부조리의 세계를 통찰한다.......그는 환상이 풍부했기 때문에 극을 만들거나 연출함에 있어서 매우 자유로웠고, 가끔 패러디를 서서 핵심을 부각시켜 준다. 그는 풍부한 착상에 넘친 작품을 써서 방송극에 자극을 주었고, 또 훌륭한 희극을 써서 현대 연극에 실험의 영역을 초월한 실례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현대사회의 위험을 이렇게 갈파했다.
“이래서 우리들을 위협하는 것은, 이미 신이나 정의나 제5교향곡의 경우처럼 운명이 아니고, 교통사고이며, 부실공사에 의한 댐의 붕괴이며, 원자폭탄 공장의 폭발이며....... 기폭장치의 스위치 조작 잘못이다. 이 같은 사고의 세계로 우리들의 길은 통해 있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뒤렌마트 '경멸스런 인간과의 야간 대화' (1) | 2015.11.11 |
|---|---|
| 뒤렌마트 '베가 호의 탐험' (1) | 2015.11.11 |
| 데릭 월코트 '마지막 카니발' (1) | 2015.11.11 |
| 데릭 월코트 '비프스테이크야 치킨이 아니라구' (1) | 2015.11.10 |
| 데릭 월코트 '푸른 나일강의 지류' (1) | 201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