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모처의 어느 병원. 이 곳에는 진정한 웃음의 전파자이며 전직, 유명개그맨이라 주장하는 한 남자와 전직 수상임을 자처하는 또 한 남자가 입원중이다. 일명 개그맨과 수상. 같은 병실에 입원한 이들은 웃음에 대한 상반된 견해로 인해 여러 가지 갈등을 겪으면서도 서로 떨어져 있지 않으려는 이상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치료를 맡은 여의사와 간호사들은 입원과 퇴원, 재입원을 반복하는 개그맨과 수상에게 최면치료 및 상담치료, 역할 놀이 등을 시행하며 이들을 치료하려 한다. 하지만 이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갈등은 점점 더 심해진다. 이때 매니저임을 주장하는 사람까지 나타나 병원은 혼란에 빠져들고, 의료진은 궁리 끝에 이들에게 전기치료를 시행하려 하는데....
시대가 변할수록 사회는 점점 삭막해지고 사람들은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 아니 웃음은 넘쳐나지만 그 웃음이 과연 우리가 즐거운 마음으로 즐 길 수 있는 웃음이던가? "개그맨과 수상"은 대중의 웃음을 갈구하는 개그맨과 대중의 비웃음을 두려워하는 수상이 같은 병원에 입원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블랙 앤 레드' 코미디이다.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이 벌이는 해프닝을 통해 웃겨야 하는데 웃기지 못하는 사람과 웃기고 싶지 않은데 웃긴 사람 상황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 본다.
<개그맨과 수상>은 대중들을 웃기려 하나 전혀 웃음을 주지 못하는 개그맨과 자신은 진지하나 입만 열었다 하면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수상이 웃음에 대한 콤플렉스로 같은 정신병동의 같은 병실에 입원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일종의 블랙&레드 코미디다. 더이상 웃음을 줄 수 없음에 괴로워하는 개그맨은 입 큰 개구리 따위의 철지난 레퍼토리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재밌죠’라고 묻는다. 그러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위협을 느낀 개그맨은 아이디어 노트에 새로운 개그 소재를 메모하며,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웃어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반면에 개그맨보다 더 개그맨 같은 수상은 철지난 레드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Be the Reds’라고 새겨진 옷을 입은 붉은 악마들을 혐오하고, 심지어는 ‘6.25는 무효다. 다시 한판 붙어보자’라는 웃지 못할 냉전식의 연설을 반복한다. 국민들의 비웃음소리를 환청으로 듣던 수상은 급기야 자신의 애국적()인 연설장이 비웃음의 도가니로 전락하는 악몽에 시달린다. 웃음을 갈구하고, 웃음을 두려워하는 상반되는 두 인물-극중 ‘여의도 브라더스’로 묶어서 지칭된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풍자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조금이라도 웃기지 않으면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견디질 못하는, 일종의 ‘웃음강박증’ 혹은 ‘유머중독증’을 진단하며, 웃음의 본질에 대하여 자그만 물음을 던져보는 작품이라 하겠다.
작가의 글 - 김재엽
문민정부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던가.... 언제부턴가 내게 가장 많은 웃음을 선사한 TV프로그램은 단연 9시 뉴스’였다. ‘문민’이라는 이름의 대통령이 전직 쿠데타 정권의 수장들을 차례로 감옥으로 인도하자, 쿠데타정권의 우두머리는 검은 양복의 똘마니들을 집앞에 불러놓고, 역사적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픽션에 가까운 '성명서'를 발표하며 국민들을 웃기게 만들었다. 그 뒤, 문민이라는 이름의 대통령은 국가경제의 위기에 무능력하게 대응하다가 원조쿠데타의 좌장인 '제너럴 박'에 대한 향수를 부활시키는 그로테스크 코미디를 연출했다. 또 천신만고 끝에 국민의 정부를 열어젖힌 세계적인 평화주의자는 '아기 돼지 3형제를 잘못 키운 탓'에 단단히 레임덕에 걸려 있다. 레드콤플렉스에 시달리며 힘들게 쌓아온 평생의 업적을 한 '큐'에 날려버리게 된 그는, 얼마 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코리아 팀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들에게 빨간 모자를 흔들며 허무한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어휘력이 떨어지는 어느 후보는 무료한(?) 국민들을 위해, '빠순이' 파동으로 매우 어설픈 자신의 유머감각을 발휘했다. 이처럼 9시 뉴스의 한 꼭지를 맡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출현과 컴백 그리고 변신들은 웬만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웃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의 유머 감각 때문에 피해를 받고 있는 조국의 개그맨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어느 개그맨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부터였다. 제대로 웃기지도 못한 채, 기나긴 무명시절을 자살로 마감한 그 개그맨의 기사를 읽고 있을 때, TV에서는 '4대 천왕' 이라는 부제가 붙은 특집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는데, 소위 잘나가는 개그맨들 4명이 프로그램 전체를 독점하고 있었다. 대중들의 인기는 곧 웃음이고, 그 웃음은 곧바로 권력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게 아닐까. TV나 영화 같은 대중적인 매체뿐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만남의 자리에서 도 웃음은 술자리의 테이블을 장악하는 기이한 권력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일상의 자리에서 조차 서로가 서로를 웃기려고만 하고, 웃기지 못하는 사람의 언어는 무시되며, 좀 더 빠른 웃음의 쾌감을 갈급 하는 분위기가 번져갔다. 웃음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일상의 작은 틈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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