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두 병사가 동반 자살한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의 제목은 사진작가 마리오 자코멜리 (Mario Giacomelli, 1925~2000)의 작품 제목 ‘나에게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I have no hands caressing my face, 1968)’를 인용한 것이다.
군대에서 3일 먼저 휴가 나온 현태는 휴가 첫날을 맞이하는 주영을 위해 부대 앞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마중 나온다. 주영과 현태는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함께 탈영하기로 약속한 사이다. 두 사람은 군대 밖의 이곳저곳을 오가며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을 마주하는데…… 미용실에서 짧은 머리에 물들이고, 타투점에 들러 각각 가장 하고 싶은 문신을 새긴다. 그리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싸움이 벌어지고, 도망치고... 주영은 이사간 아버지 집을 찾아가나 집 밖에서 기다리는 아버지는 집이 좁아서 변명을 하는데, 새엄마와 그 딸이 차지한 집에 주영의 자리는 없어진 것을 느낀다... 휴가나온 그에게 보이는 건 군인들만 보이는 듯, 이리저리 방황하다... 다시 현태를 만나러 그의 누나 집으로 향한다...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는 휴가를 나온 두 명의 군인 현태와 주영이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을 마주하는 이야기 속에서 삶과 죽음, 사회, 정체성 등 우리 사회에 대한 비유, ‘인간’과 ‘위로’에 대한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품은 2014년 8월 부대에서 휴가 나온 두 명의 청년의 자살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단다. 사람들은 분명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오늘도 매일의 뉴스에서 군대의 폭력과 집단 획일의 강요, 병원 간호사들의 ‘태움’ 등의 사회 구조의 고질적 집단 폭력으로부터의 문제점들로 선택한 젊은이들의 죽음을 듣는다. 작품의 제목,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는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가장 먼저 사건을 지나치고 있는 우리에게 ‘당신은 타인의 말을 들을 귀와 전달할 위로의 손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
작가의 말 - 윤미희
‘위로’라는 단어 하나로 저는 이 작품을 설명할 수는 없다 여깁니다. 연출님은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있다’로 만들려고 한 듯 합니다. 하지만 작가인 저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자 함이 더 중요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지만 죽을 수밖에 없었던,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유일하게 쓰다듬어주는 손마저 잘라버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불편하고 불편할지라도 이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했고 진짜 ‘나’의 모습을 대면했어야 했습니다.
윤미희 작가는 '상상해볼 뿐이지', '투명한 집', '나를 사로잡는 촌스러운 감정들' 등의 작품을 집필하였고 다른 작품들의 드라마투르그로도 활동하고 있는 차세대 극작가이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김지나 연출과는 2016년부터 드라마터그로 만나 ‘이주’를 화두로 한 작품 세 편을 함께 올리기도 하였다. 자살 기사를 접한 작가는 몇 년 동안 청년이 남긴 몇 줄의 유서를 가슴에 품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를 통해서 폭력과 집단성, 외로움에 대해 진정성 있는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김지나 연출의 말
때로 남이 전하는 위로는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면 위로인 지도 모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위로는 ‘말’로서만 전달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아직 위로를 전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타인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그 사람 또한 나를 볼 수 있고, 그 서로의 공기 속에서 ‘혼자’의 고독이 아님을 감각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김지나 연출은 연극이 사회의 현상을 가져와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작의 과정에서부터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객과의 올바른 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내일로의 삶으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말하면서 이 공연을 통해 사회 속 사건을 직시하고 원인과 반성을 꾀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타인’에 대한 위로의 노래이자 ‘나’를 위한 믿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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