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영무 '별에서 들리는 소리'

clint 2018. 9. 15. 12:16

 

 

 

그의 말과 행동은 진실일까 아니면 진실은 말과 행동 너머에 있는 것일까.

극단 로얄씨어터의 별에서 들리는 소리> (작 김영무, 연출 임수택)는 아내의 한숨 소리에서 이미 결혼의 파탄을 예지하고 이혼을 결심한 한 남자의 비극적 행로를 통해 진실과 위선의 현실에 극적 메스를 들이댄다.

김정우는 라디오 방송사의 음향효과 맨으로 남달리 예민한 청각의 소유자이다. 심지어 연꽃 터지는 소리까지 듣는다는 그는 어느 날 새벽에 아내 안지수의 한숨소리를 듣고는 이혼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아내의 한숨소리에서 자신들의 결혼생활이 이미 절망적인 국면에 빠져들어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느닷없이 이혼을 선언한 그를 비웃는다. 특히 아내의 오빠이자 정신과의사인 안준호는 김정우가 성우 홍다미나 잡지사 여기자인 박진애와 불륜관계에 있는 것처럼 뒤집어씌워 김정우의 이혼 결정이 독선에서 나온 것임을 부각시키려 한다.

연극은 라디오 스튜디오의 모습과 별 밤 분위기로 사실성을 뒷받침했으나, 연기자들의 대사가 엉기고 극적 긴박감이 부족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작품의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시사점을 던져주기도 한다. 밖에서 볼 때 ‘10년을 잘 살아온 부부가 어느 날 이혼을 한다면 이를 지켜본 사람들에 의외로 보일지 모르지만 부부간의 일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되새겨 준다. 개에게 돌을 던지면 돌을 물지만 호랑이에게 돌을 던지면 돌을 던진 사람을 문다고 했던가. 현실론자들은 돌만을 탓하지만 초인 김정우는 개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김정우를 정신병동에 가두는 게 현실이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원인이 있고 물질과 말과 행동이 나타나기 전에 마음이 있다는 점을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다. <별에서 들리는 소리를 보고, 별이 소곤대는 소리를 듣듯이 상대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줄 알게 된다면 더할 나위없는 소득일 것이다

 

 

 

 

 

별에서 들리는 소리는 주인공의 고백체 연극이되, 방송용 드라마와 하등 다르지 않다. 드라마의 진행은 주인공이 등장해서 관객들을 마주보며 친절하게 사건을 설명하고, 배우들은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다시 주인공이 등장해서 관객들에게 사건의 결과를 확인시키는, 소리인 말로 하는 설명에 그림자인 동작이 덧붙여지는 방식이다. 소리에 미친 주인공 음향효과 전문가가 아내와 이혼을 결심하고, 아내의 오빠는 정신과 의사로서 동생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자 있다고 의심해서 추궁하고, 남편을 잃은 주간여성지 기자인 여인이 등장해서 주인공을 유혹해서 정사를 벌이고, 장모는 딸과 사위 사이에서 이랬다저랬다 하고, 주인공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성우인 젊은 여성이 등장해서 사건을 복잡한 것처럼 꾸민다. 극중에 주인공이 얼마나 소리에 예민한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버스 속, “승객 여러분 큰일 났습니다. 운전기사님, 빨리 차 좀 세워주세요. 이 버스 엔진 소리가 이상합니다. , 정류장에 다 왔군요. 여러분, 이번 정류장에서 하차하십시오. 이 버스 엔진은 고장이 났단 말입니다. 제 말을 믿고 목숨들을 부지하십시오. 여러분!" (그러나 승객들의 비웃음 소리만 확대되어 들여오고, 버스가 재출발을 하는 소리 들렸다가 잠시 후 광하고 다른 차와 부딪치는 소리 들려온다)

이렇게 작가가 말하고 싶은 소리의 감각은 단순히 입말에 머물고 만다. 그러나 그녀와 담소를 나누다 말고 저는 엉뚱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녀 입에서는 분명 업무와 관련된 말들만 쏟아지고 있었지만그녀의 몸은 욕정에 불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런 지문은 작가가 소리를 입말이 아니라 마음의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작가는 소리에 대해서 이야기와 주장을 애매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립문자를 언급하는 이 연극은 소리의 의미가 단순해면서 흔한 멜로드라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는 빛을 잃고 마는 것이다.

드라마의 맹점은 끝부분에 이르러 커진다. 장면의 끝에서 갑자기 흰 가운을 입은 정신병동의 남자 간호사들이 등장해서 주인공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워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연극의 끝 장면은 관객들에게 매우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 연극과 극장이 관객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는 교실과 같아졌기 때문이다. 범인은 우리들 자신이고, 정직하게 소리를 듣고자 하는 인간이 있지만 사회가 폭압적으로 그것올 허락하지 않고, 정직하게 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사회는 얼마나 거짓 소리들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강압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빠른 결론에, 너무나 흔한 귀결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깊이가 없고, 연출은 무대와 연출을 통하여 그것을 보충하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했고, 배우들도 밋밋했다. 우리 연극은 이래서 격을 잃고, 관객을 잃고, 가벼워진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이런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대에는 희곡이 씌어진 대로 별의별 음향기기들로 가득 들어차있어야 했다. 그러나 무대 한쪽 구석에 우리들이 흔히 집에다 갖출 수 있는 음향기계들만이 보일 뿐이다 이 때부터 관객들이 지니는 소리에 대한 기대는 줄어든다. 다시 말해 방송 드라마 효과담당이고, 자타가 공인하는음향전문가의 소리감각과 관객들의 소리감각은 비슷해진다. 소리가 사라지고 인물들끼리 얽힌 사적인 사건만이 전개될 뿐이다. 연출은 이런 부분을 소홀히 하고 있었다. 작가는 음향기기를 배경으로 한 주인공을 전문인으로서의 채취만 물씬 풍긴다.”라고 쓰고 있는데, 실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주인공이 자주 마시는 양주와 들고 있는 술잔은 관객들의 귀가 아니라 시선을 그곳에 집중하게 한다.

또 다른 문제는 희곡이 문학적 성찰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방송국에서 음향효과를 담당하는 이가 극중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이 인물의 사생활을 펼쳐 보여준다. 그가 갑자기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말한다. 주인공의 아내의 한숨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한숨소리가 이혼의 사유가 되는 셈이다. 추궁하는 아내에게 주인공은 어차피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격일 테니라고 말한다. 대사의 논리문제를 떠나서 인물들의 대사는 꼭두새벽에 이혼타령" (아내의 대사 가운데)처럼 불쑥 튀어나올 뿐 삶에 대한 문학적 성찰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성찰이 없는 대사는 희곡의 대사가 아니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소음일 뿐이다. 대신 공연 내내 지하 소극장은 위층의 음악소리로 울렸다.

극중 내용처럼, 주인공이 야생동물들의 울음소리를듣고, “화장실에 갈 때도 녹음기를 갖고 가고”, “지렁이가 기어갈 때도 마이크를 들이대는 이라면, 연출은 공연을 통해서 의미를 초월하는 소리에 대해서 더 깊은 성찰을 해야 했고, 이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 탓에 연극은 흔한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내의 오빠가 서로 싸우는 멜로드라마가 되었고, 기껏해야 외곬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소외 받는 다라는 점을 우격다짐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제는 너무 식상한 것이 아닌가?

연극은 너절한 교훈이 아니지 않은가? 연극은 듣기 전에 더 잘 보아야 하고 보여주어야 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연극은 테아트르(theatre) 이고, 덧보기이고, 테오리(theory)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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