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태석은 역사적 소재를 즐겨 다루는 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는 자기만의 문법으로 재해석하기를 즐긴다. 즉,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 있을 법한 역사를 보여준다. 그 방법의 하나는 ‘역사’와 ‘설화’를 결합하는 것이다 사실로서의 역사와 허구로서의 설화가 만남으로써 익숙한 이야기는 관습적 의미망에서 벗어나 낯설어진다 이러한 오태석 특유의 역사적 상상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 〈여왕과 기승〉이다. 이 극은 1969년 1월 국립극단 제53회 공연작으로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진순이 연출을 맡았고, 장민호, 최불암, 백성희 등이 출연하였다.

이 작품은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여러 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된 모티프를 이루는 것은 지귀(志鬼) 설화이다.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 때 지귀라는 자가 선덕여왕을 사모하다 상사병에 걸렸다. 여왕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지귀를 불렀다 그러나 여왕을 기다리던 지귀는 탑 아래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자 여왕은 팔찌를 벗어 지귀의 가슴에 놓고 갔다 잠에서 깨어 팔찌를 발견한 지귀는 여왕이 다녀갔음을 알았다. 사모의 정에 못이긴 그는 그만 탑을 불태우고 화귀(火鬼)가 되었다. 지귀설화에 더해 이 작품에는 신라 기승(奇增)인 혜공의 설화와 선덕여왕의 모란꽃 설화 등이 동원된다. 작가는 이들 설화를 변용하고 교직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는 크게 두 가지 내러티브가 교차한다. 하나는 지귀의 사랑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자가 설화를 변주한 것이라면 후지는 역사적 사실을 가공한 것이다 이 두 이야기가 이중의 플롯을 형성하며 극 속에서 전개된다. 전자의 이야기에서 지귀는 용왕의 딸인 세어녀와 맺어진다. 세어녀는 죽으면서 자신이 금가락지 속에 깃들일 테니 이를 여왕에게 바치라 한다. 그러면 여왕이 지귀에게 반해 부군으로 맞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귀는 아내를 잊지 못해 그녀의 묘를 떠나지 않는다. 반지는 여왕의 손을 거쳐 엉뚱하게 신하 염종의 손에 굴러 들어가게 된다. 결국 반지를 되찾은 지귀는 세어녀와 함께 불꽃 속으로 사라진다.

후자의 이야기는 삼국의 정치적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선덕여왕은 백제의 침략으로 국운이 위기에 처하자 당나라 대신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한다. 당에 우호적인 대신들은 여왕의 판단을 금지환의 요술 탓으로 단정하고 지귀를 죽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지귀의 반지를 얻게 된 신하 염종은 왕권을 꿈꾸며 여근곡에서 모반을 획책한다. 그러나 결국 모반은 탄로 나고, 염종과 반역자들은 처단된다.
작품에서 두 내러티브를 이어주는 매개물은 ‘금가락지’이다 금가락지로 인해 사랑의 화살표는 지귀에서 선덕여왕으로, 다시 염종으로 옮겨 다니다 결국 지귀에게로 돌아온다. 이러한 과정은 또한 왕권에 대한 욕망의 화살표가 진행하는 방향과 동일하다 부마를 꿈꾸는 지귀의 욕망은 국권을 유지하려는 선덕여왕의 염원으로, 다시 왕권찬탈을 획책하는 염종에게로 전이되었다가 지귀에게로 돌아온다. 여기서 금가락지는 마치 큐피드의 화살처럼 몸에 닿자마자 사랑과 욕망을 일으키는 마법적인 도구로 기능한다.

작가는 이처럼 금가락지라는 매개물을 통해 설화 속의 인물들을 역사의 현장으로 불러낸다. 그 과정에서 현실과 꿈, 이승과 저승, 사실과 허구의 경계는 와해된다. 신화적 인물인 세어녀가 지상으로 하강하는가 하면, 죽은 백제 성왕이 이승에 등장하며, 지귀는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다. 이에 맞춰 극의 전개 또한 인과관계에 얽매인 엄격한 플롯 대신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내맡겨진 구조를 취한다.
결국 작가는 설화와 역사의 만남을 시도함으로써 당대의 정치현실을 패러디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신라의 역사를 ‘있었던’ 역사가 아니라 ‘있어야 할’ 역사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당 태종에게 원군을 청하자는 대신들에게 선덕여왕은 ‘다른 민족을 불러서 한 민족의 칼을 세워야만 되겠소?’라고 답한다. 이러한 여왕의 태도는 작가의 역사관을 함축적으로 대변한다. 이민족의 힘으로 통일과업을 이룬 신라의 파행적 역사를 꼬집고 교정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AD 642년 신라의 국운은, <복부에 비수>를 맞을 만큼 절박한 위기에 처한다. 서변 40여 성이 타고 대야성(섬천)이 무너지고, 당항성(남양)이 여제 연합군에 둘려 쌓이고... 안으로는 비담, 염종이 반역을 꾀한다. 이를 감당해야 하는 주역은 여인 선덕여왕. 죽을 날자를 예언했는가하면, 자장법사를 당에 보내어 불을 펴게하고, 매해 사찰을 짓다시피하는가 하면 황룡사 9층탑 첨성대 등을 쌓는... 슬기로우나 한편 비현실주의자, 어찌보면 점성가에 가차운 여인이 그 주역이었다는 점은 망국의 주역으로서는 적역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십 수년후, 이 망국이 삼국을 통일했으니, 이 여인은 하늘에서 과연 무엇을 보았기에 첨성대를 지으라 고명하였던가? 당대 혜공이라는, 삼태기를 쓰고 하루같이 취해 돌아가는 기승이 있었다. 그러나 이루어 놓은 업적으로 석의 계열에 오른 명승, 이 승에게는 아들처럼 끌고 다니는 지귀가 있었다. 혜공이 도괴 직전에 놓인 나라를 구하려고 나선다. 즉 그의 신통력을 발휘해서 동해의 힘을 빌어오기로 한다. 그러나 그 제물로 지귀를 바치기로 약조한다. 이 약조에 따라 동해는 세어녀를 보낸다. 당초는 지귀의 처가 되나 나흘만에 죽음을 당해 선덕여왕의 지환이 되어, 선덕여왕을 위기에서 구한다. 신라는 마침내 숨을 놀리고 백제가 기울기 시작한다. 그러나 혜공은 당초 동해와 맺은 약조를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즉 아들처럼 이뻐하던 지귀를 생화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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