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허선혜 '먼지 회오리'

clint 2018. 6. 15. 08:07

 

 

 

먼지 회오리는 운동장에서 일어나는 먼지 회오리를 뜻하는 말이지만 내면에서 불어 닥친 돌풍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회오리에 휩싸이는 순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등나무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던 정연은 먼지 회오리가 멈출 때까지 선생님과 야자타임을 하거나 함께 노래하기도 하고,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는 호진과 샤프심을 부러뜨리기도 하고, 호진에게 방송으로 랩을 하게 시키기도 한다. 그 랩을 들으며 실컷 운 뒤에야 먼지 회오리가 멈추고, 시계를 본 정연은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무심하게 지나칠 먼지 회오리는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잠시 유예하고 방황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정연의 친구인 희정과 진은 먼지 회오리에 관심이 없지만 그들도 가슴 속이 답답하고, 이유 없이 난리 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을 읽으며 학창시절에 억압당하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한 작은 방법이 고작 학교 내부에서 소박하게 노는 것으로만 이루어졌던 것도 생각났다. 운동장에서 잠시 생겼다 지나가는 먼지 회오리처럼 이러한 회오리는 가슴 속에서도 잠깐 스쳐 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외면만 한다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지도 모른다. 차라리 정연처럼 회오리를 한없이 바라보며 뭐라도 해야 돌아갈 용기가 생길 것이다.

먼지처럼 작은 것들이 한데 모여 용솟음치듯 차오른다. 내면속 회오리가 불연 듯 일어나는 그들 마음 속 먼지 회오리이다.

 

 

 

 

작가의 글

 

고등학생 때, 야자가 한창인 해질 녘이면 매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등나무 벤치에 앉아 있곤 했다. 그러다 이따금 운동장에 이는 먼지 회오리를 봤다. 그건 회오리 같기도 하고 그저 먼지 날림 같기도 하면서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 시절 내 가슴속에는 그런 것이 자주 일었다. 움직이는 무언가가 가슴속을 쉴 새 없이 간지럽혀서 아주 작은 딴 짓(혹은 미친 짓)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 회오리의 에너지는 분명 일상을 사는 에너지와는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그때 그 회오리바람을 따라가 보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가슴속엔 먼지 회오리가 없다. 멍하니 바라볼 운동장도 없다.

 

 

 

 

1991년 겨울 안양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주최한 제1회 청춘나눔연극제에서 희곡 햄스터 살인사건으로 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청소년희곡을 쓰며, [오문오방 프로젝트] [시어, 헤엄치다] 등 문학과 연극을 매개로 한 대안 공연에도 참여했다. 현재 소규모 창작 그룹 나비꼬리에서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공연의 모토를 교감으로 삼고 그것이 최우선 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