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세례명 클라미디아`는 경제적 위기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 속 흔들리는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을 이야기한다.
이주영의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작품은 한 자매의 가족사이면서 가난한 시대의 생활사를 그리고 있다. 가난한 가족에게 한 구성원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또 당연시한다. 이 작품은 가족 안에서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으며 그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가족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세례명 클라미디아`는 어느 한 자매의 이야기로, 가난한 구두닦이 아버지 때문에 학창시절이 창피했고 어려운 집안 살림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가족 몰래 술집에서 돈을 벌어 언니의 대학등록금, 생활비, 아버지의 병원치료비도 냈던 동생과 집안에서 남보기 창피스러워 하고 동생 덕분에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 평범한 주부가 된 언니의 2인극이다.

극의 시작부터 그들은 자매 사이가 맞을까 싶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로 관객들에게 묘한 긴장감을 준다.
거침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언니를 공격하는 동생 수남, 의아할 정도로 동생이 퍼붓는 공격에 담담하게 대응하는 언니 수희. 이렇게 두 자매의 이야기는 공연 내내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하며 새로운 극의 묘미를 선사한다.

심사 평
금년 희곡 부문 응모작품 수가 작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그에 따라 소재도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가족'을 소재로 쓴 희곡이 가장 많았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경제 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경제 위기에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것이 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경의 '남편 세탁하는 날'은 부인이 보신탕 식당을 운영하여 생계를 꾸려나가고, 무직자인 남편이 입신양명을 위해 공부를 하는 설정을 통해 희곡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공부는 허울일 뿐 결국 이 부부의 갈등은 남편이 세탁기 안에 들어가고, 부인이 그 위에 걸터앉는 장면에 이르게 된다. 이 장면의 극적인 효과는 흥미를 끌었지만 돌발적인 놀라움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김삼진의 '지게'는 치매 걸린 노파를 전 가족이 한 등장인물에게 짐 지워 놓고, 그 사람의 고통을 모른 척하는 설정을 갖고 시작한다. 자칫 상투적이 될 수 있는 소재를 작가는 노파의 방이 비어 있었다는 기발한 반전으로 극의 재미를 순식간에 격상시켜 놓았다. 그러나 지문을 완성하지 않는다거나 대사가 난삽한 결점이 있었다.
이주영의 '세례명 클라미디아'는 자매의 가족사이면서 가난한 시대의 생활사를 구축했다. 가난은 간혹 한 가족 구성원의 성공을 위해 다른 가족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당연시한다. 이 작품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결할 때 극적 긴장의 고조가 압권이었다. 등장인물의 대사들도 감칠맛 있었다. 장면 변화가 많은 단막희곡들이 범람하는 요즘, 하나의 장면으로 극을 구축해나간 정통적인 형식이 오히려 새로웠다. [임영웅(연출가)] [이강백(극작가·서울예대 교수)]

이주영/ 당선 소감
최근 몇 년간 아빠에게 먼저 전화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통화해봐야 집세와 제사 이야기가 고작인데, 그나마도 서로에게 마음 상할 말들로만 꾹꾹 채워서 삼십 분 같은 삼 분을 넘기곤 했습니다. 얼굴을 보는 일도 명절 때뿐이어서 "…과일 먹을래?", "됐어요…" 하고 나면 다시 멀뚱멀뚱 텔레비전만 보게 됩니다. 아빠와의 사이가 어색해진 것은 아마도 중학생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세상의 모든 불행은 아빠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믿을 지경이었습니다. 아빠를 웬만큼 이해하게 된 지금도 살가운 말을 나누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오늘은 거의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드렸고, 아빠는 퉁명스럽게 대답하셨습니다. 어쩐지 정답게만 들려서 응석을 부리고 말았습니다. 이사를 하고 자장면을 먹다가 당선 소식을 들었는데 손이 떨려서 젓가락질은 힘들었지만, 마른 단무지나 춘장 특유의 냄새가 유난히 달콤했습니다. 그만큼 맛있는 저녁이 또 없을 것 같습니다. 운동화 끈을 질끈 매야겠습니다. 동국대학교 선생님들, 희곡분과 선배님들과 후배들, 늘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 할머니, 주철이…. 그리운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얼른 뛰어가서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하는데 아직은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이 얼떨떨함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면 염치불구한 일이 될까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희곡을 공부하면서 2008년 한 해는 정말이지 제게 선물 같은 한 해였습니다. 이른 나이에 당선됐다는 걱정이 들지 않도록 앞으로 더 열심히 쓰고 배우겠습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려산 '눈부신 비늘' (1) | 2018.04.13 |
|---|---|
| 박만호 '청진기' (1) | 2018.04.13 |
| 강월도 '인조인간' (1) | 2018.04.12 |
| 곽병창 '강건너 안개 숲' (1) | 2018.04.12 |
| 조해일 '갈 수 없는 나라' (1) | 2018.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