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는 권세가에게 잡혀간 청년을 구출하기 위해 대신 권세가의 딸이 납치되고,
그 처녀를 놓아준 청년은 죽을 고비를 넘겨서 광대가 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진 현대판 광대놀이극이다.
발탈, 각설이타령, 엿장사의 짓소리, 이야기 시합, 판토마임 등 즉흥적인 놀이와 판소리가 곁들여진 작품이다.
코러스를 통한 새로운 시도는 탈을 과감하게 부각시켜 인생의 다양한 이미지와 무언의 서사화를 만들어낸 점이라 할 수 있다. 죽음과 삶 그리고 광대의 세계를 교묘하게 교차시켜서 관객에게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는 작품이다. 줄거리에 얽매이지 않고 광대들, 이른바 패거리, 잡동사니들의 삶을 접목시킨 불균형 속의 균형을 갖춘 색다른 구성의 묘가 있다.

극단 자유가 84년 <바람 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로 완전히 전통적인 연극에서 벗어나 새롭고 열린 무대로의 실험적 작업을 계속해온 선상에서 꾸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실험적인 작업은 금년(92년)에도 석양을 나는 새들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들의 실험은 스토리를 해체하여 장면들을 몽타쥬 수법으로 배열하고 役의 창조를 해당 배우에게 의존하는 대신 집단 창작을 통해 구축하며 광대의 존재와 의미를 강조, 연극을 그들이 노는 한판놀이의 구조를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근저에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라는 정신적 태도가 깔려있다. 햄릿 역시 죽음 앞에선 인간의 광기를 주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김정옥은 그의 작품들에서 집요하게 한국무속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무당을 등장시켜 한국의 굿판과 서구적 연극의 충돌과 만남을 시도한다. 자유극장의 연극은 현대적 세련미가 특징이다. 본시 한국적 소재와 형식이 아닌<햄릿>을 어떻게 한국적인 의상과 행동으로 전처럼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선보일지 자못 기대되는 바이다.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뜨려 - 유민영 교수· 연극평론가
문예회관 로비에 들어서면 상복을 입은 광대들이 분을 잔뜩 바르고 끼리끼리 둘러앉아 장기를 두는가 하면 윷도 놀며 시시덕거리다가 아는 구경꾼이라도 들어오면 이를 하얗게 내놓고 웃는다. 개막시간도 안되었는데 이게 무슨 짓거리냐는 생각이 들어 구경꾼들은 초임서부터 당황한다. 구경꾼들이 모이기도 전에 연극은 시작된 것이다. 구경꾼들은 광대들의 짓거리부터 보다가 시간맞춰 객석을 찾아들어 가면 광대들은 그제야 뒤따라 들어온다. 캄캄한 객석에 북소리가 들려오면 뒤에서 누군가가 살해당한다. 불이 커지면 무대는 상가처럼 텅비어 있다. 누군가 창으로 자리걷이굿을 한다. 죽은 님을 그리는 애절한 창이다. 그리고 권세가의 횡포가 시작된다. 당초 왜 죽고 죽여야 되었는가가 실연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시끌시끌하고 희극적이다. 인생은 광대짓이고 희극적으로 표현하겠다는 金정옥의 계산에 따른 것이다. 발탈놀이가 시작되고 각설이가 객석에서 동전을 구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엿장수가 공짜엿을 분다. 그뿐이 아니라 옛날 방귀시합이야기와 박정자, 김금지가 팬터마임으로 엮는 '욕의 美學'은 관객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각종 유행가들이 불러지는 속에 주인공이 처형되지만 그는 광대로 분신할 뿐이다.
이상과 같이 플롯이 없다시피한 연극을 보고 있노라면 죽음의 신을 찬양하는 시골 축제에서 놀이꾼들이 행렬을 지어 소란스런 야유와 익살을 퍼붓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고전희극의 원형을 연상케 된다. 그런데 그것이 완전히 한국의 민속과 생사관으로 바꾸어져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대본과 연출이 안보이고 배우만 보인다는 점에서부터 기존 연극의 틀을 근본적으로 뒤엎는다. 그만큼 즉흥적이고 우러나오는대로 엮어나갔다는 점에서 분명히 분방하고 생명력이 넘친다. 사실 예술은 비논리적인면이 강하다. 특히 우리의 고전예술이 더욱 그렇다. 김정옥은 불교와 탈속이 혼합된 죽음관을 갖고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의 시공속에 있다고 본 점에서 그렇다. 사실 매우 추상적인 죽음의 문제를 연극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연극이 그동안 꺼려왔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극단 자유가 도전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중앙일보 1984. 2. 20)

창작노트
(……) 나의 연극 인생은 허풍을 떨고 허세를 부리는 데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연극은 멋대로 허장성세를 부릴 수 있다는 데에 매력이 있는지 모른다. 종래의 연극적 틀, 기성의 형식을 깨는 새로운 연극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연극을 만드는 우리들 자신과 관객들을 위해서 허구한 구호를 내세워야 했다. 연극이란 연출자 혼자 멋대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연출자의 뜻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연기자와 뒷스태프, 무대미술, 조명 등이 대본을 기본으로 해서 공동으로 집단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비슷한 창조적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고 이탈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 자신을 위해 구호가 필요한 것이다. 만드는 사람만이 아니라 관객을 위해서도 구호는 필요했다. 관객은 새로움을 기대하면서도 새로운 연극을 대할 때 일단 경계한다. 새로우면서도 뭔가 의미 있는 창조라는 것을 내세워야 한다. 어떻든 우리는 1978년<무엇이 될꼬하니>를 연습하면서 마치 데모를 하는 사람들처럼 구호를 외치고 내세울 필요가 생긴 것이다. 사실 우리는<무엇이 될꼬하니>를 연습하면서 그 제목처럼 우리의 연극이 무엇이 될 것인지 불안했던 것이다. 종래의 틀과 형식을 깨고 자유로워지자, 극장의 형식이 주는 구속을 거부하고 희곡이 주는 구속마저도 거부하자, 그러나 자유를 원하고 새로움을 추구할 때 우리는 더욱 불안해지고 더욱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불안을 달래고 관객을 속이거나 세뇌하기 위해서 구호가 필요해진 것이다.
처음에 우리가 내세운 구호는 다음 다섯 가지 어설픈 구호였다.
1. 이번 작품은 워크숍 형식으로 연습한다.
2. 연습 과정에서 제기되는 발언들을 기록해둔다.
3. 가장 연극적인 연극을 만들도록 연구한다.
4. 이 작품은 작가, 연기자와 연출, 스태프들이 합동으로 만드는 집단창조이다.
5. 반사극(反史劇)(실험적이며 미래적인)이다.
6. 연기자들은 관객과의 새로운 공간, 시간 접근을 통해 연극적 체험을 한다. (……)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김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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