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친구, 가족, 모든 것에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남자는
‘암흑전설 영웅전’이라는 제목의 게임을 시작한다.
빛의 제국의 황제가 되어 악의 제국 암흑성국을 정벌하고 빛의 제국의 통일을
이루는 것을 줄거리로 갖고 있는 이 게임은 소심하고 유약한 남자에게
차츰 잃어버린 정체성과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러나 동시에 남자를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으로 위태롭게 내몰며
그의 내면에 쌓여있던 폭력성을 게임이라는 가상세계에 무차별로 쏟아붓게 만든다.
마침내 게임 속의 자신의 아버지마저 살해한 남자는 게임 속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를
동일시하며 기어이 자신의 제국을 지키기 위해 게임 속에 뛰어들어 버린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과 파괴의 잔상 뿐.
남자는 현실의 폭력과 가상의 폭력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폭력은 그 자체로서 동일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지만
결국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파괴만이 남은 게임 속에 갇혀버리고 만다.

컴퓨터게임을 소재로 한 사이버 세계를 거론한 최초의 연극 작품이다.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교차해 무언가 강력한 이미지를 전달한 '암흑전설 영웅전(연출 최용훈)'이 그 작품이다. '암흑전설 영웅전'은 컴퓨터게임을 소재로 한 사이버 세계를 거론했다는데 점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현실 속에서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컴퓨터게임에 매몰돼 사이버 중독으로 인한 현실도피, 그 속에서 사이버 게임을 통한 영웅이 탄생한다. 이것은 사이버 대리 만족의 극치를 이룬다. 바로 그 주인공이 현실 세계의 작가 지망생이다. 그는 결국 현실 세계에서 개발한 컴퓨터를 통해 사이버 세계의 게임을 즐긴다. 그리고 가상세계의 암흑의 황제가 된다. 디지털시대 1과 0으로 대변되는 가상세계의 무희는 현실 세계의 창을 동경하고 그리워한다. 그는 가상세계보다 현실 세계가 나을 것이라고 갈망한다. 현실 세계의 작가 지망생인 주인공 컴퓨터 게임머는 컴퓨터 가상세계의 무희를 좋아하게 된다. 사이버 게임에서 전개되는 청와 장군의 악랄함, 백와 장군의 강렬한 이미지가 두 장군의 이미지를 대조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군사들의 업그레이드 장면, 국운의 업그레이드 장면이 관객들에게 독특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게임 점수가 올라갈수록 연극의 종막이 올 것 같은 긴장감 속에 연극의 흥미는 더해간다. 게임이란 가상의 세계는 매력적이면서 암담한 미래를 점치게 한다. 컴퓨터 중독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유혹을 주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게임은 현실 세계의 통제와 억압으로 억눌린 욕구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해방구라는 측면도 있지만 가상세계에 도취된 현실의 인간은 윤리라는 것, 도덕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 가상세계의 살인은 아무것도 아니게 진행된다. 최근 사이버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계좌번호를 알아내 현금을 빼낸 것이며, 각종 정보를 해커를 통해 알아내는 신종 범죄 수법들. 이 연극을 통해 사이버 범죄의 제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현실 세계와 가상세계는 톱니바퀴처럼 밀접하게 맞물려가고 있다. 현실세계는 가상세계를 창조했고 가상세계는 현실 세계를 재창조해 간다. 현실 세계의 폭력파괴는 가상세계마저 폭력과 파괴가 난무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현실이 이 한편의 연극을 통해 깊이 통찰했다. 최초로 선보인 현실 세계와 가상세계를 풍자한 '암흑전설 영웅전'은 우리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가상현실을 통해 다시 한번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작가의 글 - 차근호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는 매력적이다. 현실 세계의 통제와 억압으로 억눌린 욕구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해방구이며 우리들에게 멋진 환상을 주는 마술상자이기 때문이다. 게임 안에서 우리들은 황제도 되고, 용맹한 장군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사기꾼도, 또 때로는 살인 청부업자가 되기도 한다. 한 편의 영화처럼.. 우리들은 게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행위에 대해 현실 세계의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우리들은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는 서로 다른 세상이며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살인, 파괴는 현실의 나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행위에 불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임은 말 그대로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스럽고 지극히 상식적인 듯한 우리의 믿음은 지금 위험한 도전을 받고 있다. 가상과 현실의 벽이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 속의 적을 현실의 적으로 간주하여 게이머를 폭행하는 것도, 가상의 세계에서 사용하 는 사이버머니를 교묘하게 훔쳐내어 현실 세계에서 사고파는 일도, 게임 속의 캐릭터를 청부 살해하는 것도 더이상 특이한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 서로 다른 세상으로만 여겼던 현실과 가상의 세계는 우리들의 믿음과는 달리 잘 짜여진 톱니바퀴처럼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현실 세계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했고, 가상의 세계는 현실 세계를 재창조하고 있다. 마침내 현실 세계의 폭력과 파괴는 가상의 세계마저 폭력과 파괴가 난무하는 곳으로 만들었고, 이제는 가상의 세계가 현실 세계에 또 다른 폭력과 파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가상세계는 결코 물자체처럼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현실 세계와 얽혀있으며, 현실 세계의 연장 선상에 존재하고 있다. 현실 세계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거울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가상의 세계에 비추어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세상의 주인이며 지배자? 또는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절 대자? 아니면 아무도 거역치못할 위대한 정복자? 어쩌면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그토록 증오하고 몰아내고 싶은 현실 세계의 누군가를 닮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들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는 불합리한 현실 세계를 가상의 세계에 그대로 재현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상세계는 분명 마술상자이다. 그 상자에는 무궁무진한 마술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자에서 무엇을 꺼낼 것인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테크놀로지의 신대륙인 가상세계가 유토피아가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암흑세계가 될 것인지 이 또한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과 판단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21세기의 시험이자 기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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