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지하 '나뽈레옹 꼬냑 '

clint 2018. 4. 3. 13:02

 

 

 

 

화려하고 으리으리하기 이를 데 없는 마마의 집.
대학동창인 시엄마, 통뼈, 오만평이 친목계를 위해 마마를 기다리며 한바탕 수다꽃을 피우고 있다. 남편이야기, 사업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의 푸념을 늘어놓는 그들, 굳이 할 필요 없어 보이는 묘한 심리전이 시작되기에 이른다.
바람피우는 남편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집안에 장식된 온갖 귀한 물건들에 대해 저마다의 평을 늘어놓고 벽에 걸린 ‘삐까소’의 그림을 보며 드러내지 않아도 될 온갖 무식을 까놓는다. 그러던 중 기다리던 마마가 등장을 하고 그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세 여인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마마에게 비벼대기 시작한다....

 

 

 

 

 

무대는 대학동창인 30대 여성 5명의 친목계 모임.

모회사 사장부인인 오만평·공무원부인인 시엄마·육군장교부인인 통뼈는 고관부인인 마마네 집에 모여 방송국 프로듀서부인인 선녀를 기다리고있다. 통뼈와 시엄마는 상대방남편의 외도를 비방하기도하고 엉터리지식을 뽐내면서 서로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오만평은 마마네 집의 호화로운 가구와 실내장식에 마음을 뺏긴다. 이윽고 마마가 등장, 네 여인은 선녀남편의 바람피운 일을 화제에 올리면서 눈치를 보아가며 부정 청탁해 놓은 일의 처리를 위해 마마의 비위를 맞추느라 급급하다.
잠시 후 선녀가 등장,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음을 알리면서 신문 한 장을 전해준다. 마마남편이 강변숙치정살인사건에 관련됐음을 아는 순간 축처진 카이제르수염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다. 흐느끼는 마마를 선녀만이 위로할 뿐, 오만평·통뼈·시엄마는 언제 부탁을 했었느냐는 듯 조롱하며 떠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1시간30분간 공연되는데, 독재자로 일컬어지는 역대 대통령의 얼굴 특징을 모자이크해서 만든 대형초상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풍자적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이번 공연 기획한 조종원씨는 『권력층의 비리와 허구성·사회의 부정부패를 강력히 풍자하는 한판의 굿판』이라고 설명하고 『부권사회로 오염된 여성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여성들에게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하도록 하자는 의도』라고 말했다.

 

 

김지하(金芝河.1941.2.4∼ )
시인. 본명 김영일(金英一), 필명 김형(金瀅). 호 노겸(勞謙). 전남 목포 출생. 중동고등학교 졸업, 1959년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 입학, 1966년 졸업. 1964년 대일(對日) 굴욕 외교 반대 투쟁에 가담, 첫 투옥 후 1980년 출옥 때까지 투옥, 재투옥을 거듭하여 장장 8년여 동안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냈다.
1969년<비>,<황톳길>,<가벼움>,<녹두꽃>,<들녘>등을 [시인]에 발표하며 등단. 1975년 아시아ㆍ아프리카 작가회의(로터스-LOTUS) 특별상, 1981년 국제시인회의(Poetry International)의<위대한 시인상>을 수상, 1985년 미국 명예인권실천박사, 1993년 서강대학교 명예문학박사.
1995년 9월 17일자 일간지에 김지하 시인은 고통과 수난, 압박의 상징이었던 과거의 '지하'란 이름을 버리고 '김형'이라는 필명(筆名)을 사용한다고 하며, 새롭게 태어난 모습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1999년 이후 명지대 인문대 문예창작학과 석좌교수.
노벨문학상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으며, AA 작가회의 로터스(Lotus) 특별상(1975), 위대한시인상(세계시인회)(1981), 오스트리아 브루노크라이스키 인권상(1981), 이산문학상(1993), 제14회 정지용문학상(2002), 제10회 대산문학상 시부문(2002), 제17회 만해문학상(2002), 대산문학상(2002), 제11회 공초문학상(2003),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 골드메달(2004), 제10회 ‘시와 시학상’ 작품상부문<유목과 은둔>(2005), 제10회 만해대상 평화부문(2006) 등 수상.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 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본명은 영일(英一)이며, 지하(芝河)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을 안고 있다.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 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池學淳)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ㆍ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ㆍ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되었고, 같은 달 2년 동안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복학해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64년 6월 [서울대학교 6ㆍ3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4개월의 수감 끝에 풀려난 뒤, 1966년 8월 7년 6개월만에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번역과 학생 연극에 참여하는 한편, 1969년 11월 시 전문지 [시인]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저항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사상계] 5월호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담시<오적(五賊)>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오적>으로 인해 [사상계]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의 발행ㆍ편집인이 연행되었고, [사상계]는 정간되었다.
김지하는 이때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국내외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석방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희곡<나폴레옹 꼬냑>, 김수영(金洙暎) 추도시론<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하였고, 1970년 12월 첫 시집<황토>를 발간하였다. 1971년 이후에는 천주교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계속 저항시 발표 및 저항운동에 전념하면서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4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주일 뒤 무기 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4년 사면 복권되고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1970년대 저작들이 다시 간행되었고, 이 무렵을 전후해 최제우(崔濟愚)ㆍ최시형(崔時亨)ㆍ강일순(姜一淳) 등의 민중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이름하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이때 변혁운동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시집으로<애린><검은 산 하얀 방>과 최제우의 삶과 죽음을 담은 장시집<이 가문 날에 비구름>, 서정시집<별밭을 우러르며>등이 있다.
1990년대에는 1970년대의 활기에 찬 저항시와는 달리 고요하면서도 축약과 절제, 관조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주었는데,<일산 시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하였고, 1994년<대설, 남>과 시집<중심의 괴로움>을 간행한 뒤, 1998년에는 율려학회를 발족해 율려사상과 신인간운동을 주창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민족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70년대 내내 민족문학의 상징이자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으로서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사면과 석방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로, 복역 중이던 1975년에 아시아ㆍ아프리카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을 받았고, 1981년에 세계시인대회로부터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위의 저서 외에 시집으로<꽃과 그늘>이 있으며, 산문집으로<생명><율려란 무엇인가><예감에 찬 숲 그늘><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등이 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형진 '대가'  (1) 2018.04.04
김은성 '시동라사'  (1) 2018.04.04
김지하 '금관의 예수'  (1) 2018.04.03
선욱현 '의자는 잘못없다'  (1) 2018.04.01
황석영 '장사의 꿈'  (1) 2018.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