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의 안일 추구와 보복 - 연우무대의<장사의 꿈>우리 관념으로 ‘장사(壯士)’라고 하면 민중의 영웅을 연상하게 된다. 그의 꿈은 장사 한 사람의 꿈이 아니라 그에게 위탁된 민중의 꿈을 뜻한다. 그런데 연우무대의 장사는 혼자 꿈꾼다. 그 꿈은 이기적이다. 그래서 민중의 꿈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이기적인 장사는 자신의 꿈의 실현에 혈안이 되었다가 처참하게 현실에서 패배해 버리고 만다. 민중의 영웅이 민중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인 안일에 몰두해서 자동차 정비공, 목욕탕 때밀이, 떠돌이 약장수, 그리고 남창 노릇까지 하다가 결국 삶을 끝맺는다는 이 이야기 전개는 ‘장사’를 한 개체로 보느냐, 아니면 공동체의 영웅이라는 상징으로 보느냐 하는 작가의 현대적 안목에 미치는 문제제기가 될 수 있다. 동시에 과거의 영웅을 끌어내려 오늘날 시민사회의 한 개인으로 탈바꿈시켜 그의 꿈이 왜곡되는 사회상에다 초점을 맞추어 ‘선발’이라는 형식도 가능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장사라고 했을 때 우리의 소박한 설화관념은 탈세속적인 민중의 소망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대체로 장사 전설은 아기장수 설화로서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초인적 영웅의 후일담으로 변형된다.
아기장수는 대체로 비극적으로 맷돌에 짓눌려 죽고 그것도 대역의 엄포에 겁먹은 부모의 손에 목숨을 뺏긴다. 그런 전설에는 압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가난한 민중의 꿈이 한이 되어 서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석영(黃晳映) 원작의<장사의 꿈>은 말하자면 그러한 민중의 영웅을 이그러뜨림으로써 또 다른 충격을 주려고 한다. 그 장사는 공동체의 영웅이 아니라 단순히 범인 가운데서 뛰어난 개인에 불과하다. 뛰어난 개인이라 할지라도 현대의 상황은 영웅의 탄생을 허용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때를 잘못 만나서 태어난 장사는 이미 장사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범인들보다도 더 처참하게 낙하한다.


이 낙하의 비극을 빌어 우리는 현대의 신화를 보는 것이다. 현대의 신화는 영웅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 평범한 사람의 낙하가 이미 현대의 비극이니까…. 황석영을 빌려서 ‘장사’비극의 현대판을 볼 때 그 장사의 개인적인 편력에서 비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단순히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의 궤도를 서사적으로만 받아들이게 되는 우리는 그 점에 있어서 불만스럽다. 소설의 서사성이 극 스타일로 옮겨졌을 때 서사적 양식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 전개는 잘못하면 단순히 ‘장돌뱅이’의 한낱 때묻은 구연술의 복사판으로 끝날 위험이 있다.
시장바닥의 구연술을 갖고 있는 친근감과 스타일이 갖는 공연장 안에서의 현장감과 즉흥성 같은 것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런 탓으로 마당극 양식이 쉽사리 약장수 스타일로 저질스러워질 때 그 한계를 지키게 하는 것으로 우리는 작가정신이나 예술가정신을 든다. 이야기의 재미에 끌려든 관객과 그 분위기에 흥겨워진 연기자들이 그대로 어울려지면 마당극의 서사적 구성이 갖는 ‘거리’의 비판정신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우무대의 팀들은 적절한 장면 교환으로 몰입을 차단한다. 그 장면들의 복합에 있어서 김명곤의 변신술은 놀라운 경지를 보여주는데 10여 가지의 인물이나 기능으로 바뀌는 능력은 말하자면 ‘파우스트’의 성취를 돕는 ‘메피스토’ 같은 다양한 변신기능과 상통하는 것이다. 파우스트를 파우스트답게 만드는 것은 메피스토의 협연이다. 그렇게 되면 그가 주연인지 파우스트가 주연인지 그 구별은 명백하지 않다. 파우스트 종속설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만큼 김명곤에 밀려서 장사인 임명구가 그의 성격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장사’의 성격이 뚜렷치 않다는 것은 이야기의 설화성에도 원인이 있다. 뿐만 아니라 민중의 소망을 체현하는 장사가 아니라 개인의 안일과 영달만을 꿈꾸다 떨어져 나간 이 현대적 영웅의 모습은 무성격의 낙인으로 보복 받게 되어 있다. 그만큼 성격이 선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임명구는 재질이 있고 부드럽다. ‘장사’가 되기 위해서 그는 발성법의 훈련 그리고 체능의 절도 있는 수련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황석영의 단편소설인 '장사의 꿈'은 81년, 84년 두차례에 걸쳐 임진택 연출에 김명곤과 임명구의 출연으로 무대에 올려져서 숱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관객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새로이 올리면서 원작의 배경인 1960년대를 80년대 후반으로 끌어올리는 창작과정 속에서 초연정하고, 6.29선언 직후의 사회 상황을 반영하면서 몇 개 역할의 성격을 바꾸기도 하여 새롭고 시의성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30년 전 빼빼 마른 젊은 시절의 광대 김명곤이 신촌 굴레방 다리 밑 애오개 극장에서 보여준 명연기는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바닷가 청년이 서울로 올라와 겪는 인생 역정을 그린 황석영의 소설을 직접 각색해 그 많은 등장인물을 소화해내며 연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에 관객들은 찬사를 보냈다. 1985년에는 금보라와 임성민이 출연하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아직까지도 많은 극단에서 새로 각색한 1인극으로 또는 배역 조정을 해 공연하고 있지만 김명곤의 '한바탕 놀이판'에는 못미친다는 평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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